시련을 넘어 다시 빛나는 이름
나와 닮은 연예인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도저히 답을 못 하겠다.
그래서 닮고 싶은 연예인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한창 감성이 피어나던 중학교 2학년 시절,
나는 한 친구를 만났다.
일본 혼혈이었던 그 친구는 내 평생의 취향을 바꾸어 놓았다.
한국 대중문화를 제대로 접하기도 전에, 일본 문화에 먼저 눈을 뜬 것이다.
때는 2002년.
1998년부터 일본 문화가 단계적으로 개방되었지만,
여전히 정식 수입되지 않는 콘텐츠들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어둠의 경로'를 통해 야금야금 콘텐츠를 찾아보곤 했다.
그나마 케이블에서 NHK 방송을 볼 수 있었기에,
우리는 주말 저녁이면 ‘소년구락부’를 보기 위해 TV 앞에 앉았다.
인기가요, 뮤직뱅크보다 더 기다려졌던 시간이었다.
일본 문화는 주류가 아니었기에,
어렵게 구한 콘텐츠들은 너무나 소중하며 애틋했고, 더 열정적으로 소비되었다.
그 시절, 수많은 일본 연예인을 좋아했지만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좋아하는 단 한 명의 스타가 있다.
바로 모닝구무스메의 리드보컬, 고토 마키.
그녀는 13살의 어린 나이에 데뷔하자마자 전성기를 맞았고,
순식간에 일본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
그러나 모닝구무스메를 졸업한 이후, 그녀에게 닥친 시련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솔로 앨범의 부진, 동생의 잇단 비행으로 인한 이미지 추락,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비관한 어머니의 자살.
어릴 적 아버지 또한 사고로 잃었던 그녀는 부모 모두를 떠나보내야 했다.
그녀의 잘못은 하나도 없었지만,
2011년 활동 중지를 선언하며 무대에서 사라졌다.
이후 결혼과 출산으로 평범한 삶을 사는 듯 보였지만,
몇 년 뒤, 게임을 통해 만난 남성과의 외도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며
또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조금씩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유튜브 채널을 열어 취미생활인 게임에 대한 열정과 소소한 일상을 공유했고,
다른 추가 채널에서는 커버곡과 커버댄스를 선보이며 여전히 녹슬지 않은 실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무대 위로 돌아왔다.
독보적인 존재감은 여전히 빛났고,
그녀는 점점 더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새 앨범을 내고,
사진집을 발매했으며,
콘서트 무대에서도 팬들과 만났다.
무엇보다도 반가운 건, 그녀가 친한(親韓) 연예인이라는 점이다.
2005년 싱글 앨범에는 한국어 버전을 수록했고,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세차례 내한 공연도 열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는 한복을 입은 사진,
한국 음식과 화장품에 대한 콘텐츠도 종종 올라온다.
그리고 바로 몇 달 전(!)에도 한국을 다녀갔다.(!!)
그녀의 내한 공연에 직접 가지 못한 것은 평생의 아쉬움으로 남지만,
이제는 멀리서 조용히 응원하고, 팬으로서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느낀다.
화려한 전성기 뒤에 찾아온 연달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감당해야 했던 운명의 굴레 속 고통에서,
오로지 실력으로 다시 일어선 그녀의 모습은
단순한 ‘재기’가 아니라 ‘회복’의 서사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를 더욱 단단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다.
그녀의 삶은 내게 큰 귀감이 되었고,
내가 여전히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자신의 커리어와 아름다움을 지키며 꾸준히 나아가는 그녀,
곳찡(그녀의 애칭)은 여전히 나의 슈퍼스타이며, 워너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