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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토끼 May 20. 2020

나는 정말 '내 집'을 살 수 있을까?

집 없는 집순이들, 소리 질러~

나는 '집순이'다. 집순이란, 집 밖이 아닌 집 안에서 마음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즐거움을 찾는 존재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므로 집순이인 내게 집은 아주 중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최상의 집이란 일단 교통이 편리하고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진 곳에 자리 잡아 안전하고도 쾌적한, 널찍한 장소여야 마땅하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널찍한 장소'란 대목에서 나의 집은 일단 탈락이다. 나는 작년에 새로 이사를 했는데, 내가 원했던 '지하철역이 가깝고 계단마다 CCTV가 설치된 풀옵션의 신축 빌라'란, 결국 그 앞의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대신 '비싸면서 좁은 것을 감수하기로 암묵적으로 동의한 집'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사를 결정하고 난 다음에야 깨달은 탓이다.


지금 내가 사는 집은 '콧구멍만 하다'는 관용 표현을 갖다 대면 좀 억울하고, '손바닥만 하다' 하면 영 아니라고 잡아뗄 재간이 없는, 딱 그만큼의 공간이다. 처음엔 답답해서 하루빨리 새 집을 알아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었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사한 지 일 년만에 나는 이 '손바닥'에 정이 듬뿍 들었다. 더더군다나 요즘은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나의 집순이 기질 또한 진가를 발휘하는 중이다. 쉽게 말하자면, '집에서 오래 안 나가기 대회'가 열린다면 나는 전 세계까지는 아니더라도 한중일 3개국 내에서는 1등을 할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가끔 내가 도대체 집에서 혼자 무얼 하는 건지 궁금해한다. 며칠 전만 해도 엄마는 먼저 전화를 걸어 뭘 하느냐고 물으시곤, 그냥 집에 있다는 내게 타박하듯 말씀하셨다. "넌 주말에 데이트도 안 하는구나." 이쯤 되면 다들 얼마간은 궁금해할 것이다. 내가 엄마 말마따나 주말에 데이트도 안 하고 도대체 집에서 혼자 무얼 하는지.


집순이인 나의 취미는 당연히 '집에서 혼자 놀기'다. 우선 나의 가장 만만한 놀잇감은 책이다. 나는 집 근처 도서관의 우수 회원이면서 동네 책방의 단골손님, 인터넷 서점의 VIP 고객이다. 책장에 '신상'을 꽂아 놓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 나의 독서 취향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한 우물 파기'.


나는 어떤 한 권의 책이 마음에 들면 그것을 쓴 작가의 모든 작품을 탈탈 털어내듯 찾아 읽는다. 그래서 내게는 제발 무병장수해서 오래오래 책을 써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작가들의 명단도 따로 있다. 코난 도일이 셜록 홈스 시리즈를 백만 권쯤 써놓고 죽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원통해 한 적도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집에서 혼자 놀 때, '넷플릭스'도 빠질 수 없다. 특히 코로나19로 근 한 달간 재택근무를 했던 나는 그사이 편당 40분이 넘는 드라마가 20편 이상 이어져 있는 미드를 7시즌이나 정주행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사실 여기서도 내 집요한 성격이 드러나는데, 나는 영화든 드라마든 어떤 배우가 마음에 들면 그가 출연한 목록이 바닥날 때까지 주야장천 보고 또 본다.


요즘엔 배우 리암 니슨이 나오는 액션 영화에 푹 빠져 있는데, 거의 일흔에 가까운 그가 기차와 기차 사이 지붕을 뛰어넘고 빌딩의 벽을 타고 불 속을 헤치면서 순식간에 총알을 장전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존경스럽기 그지없다. 그래서 요즘은 그분의 무병장수 또한 두 손 모아 비는 중이다.


이처럼 출근할 때를 제외하면 하루의 대부분을 집에서 보내다 보니 요즘 내 최대 관심사는 '내 집 장만'이다. 내가 그간 살아왔던 집의 면면을 떠올려보면, 단언컨대 '내 집 장만'에 대한 나의 로망은 생존 본능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제일 처음 혼자 살았던 집은 보증금 백만 원에 월세가 십 팔만 원이었다. 지금이야 말 할 것도 없고 그 당시 시세로도 매우 싼 편이었다. 그러나 어른들 말씀대로 뭐든 싸면 다 이유가 있다.

그 집은 현관문을 열면 제일 먼저 타일이 깔린 부엌이 나오는데 그 한쪽 벽에 샤워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밥을 짓고 국을 끓이면서 그 옆에서 샤워까지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그 획기적인 멀티공간이라니. 물론 볼일은 마당에 설치된 공중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놀랍게도 불과 십몇 년 전 이야기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그 전에는 혼자 살아 본 적이 없었고, 비싼 학비와 생활비를 계산한 결과 자취방이 그저 싸면 좋은 것으로 착각했다. 나는 그 집에서 자그마치 일 년을 버텼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긴 일 년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 고생은 최대한 안 하는 게 좋다.


그로부터 몇 년 지나서, 취직을 하고 형편이 좀 나아진 뒤에 전셋집을 보러 다녔다. 그때 아현동 일대에서 맞닥뜨렸던 집도 잊을 수가 없다. 부엌 싱크대 옆에 칸막이가 있고 비밀스레 커튼이 쳐 있기에 이건 또 뭔가 싶어 가만히 들춰 보았더니 떡하니 변기가 있던 집. 근처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을 위해 싸게 내놓은 집이라 자랑스레 말하던 집주인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세상에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집들이 차고도 넘치게 많은지, '내 집'이 있는 사람들은 쉽게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대학가나 고시학원들이 늘어선 동네에서는 더하다. 값이 싸다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운, 장판 밑이며 벽지 사이가 곰팡이로 푸르뎅뎅한 반지하방, 땡볕이 그대로 내리쬐어 한여름에는 숨이 턱턱 막히는 옥탑방, 방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콧구멍의 반의반만 한 관짝 같은 방들.


물론 내가 최대한 싼 집을 찾아 헤매던 십몇 년 전에 비하면 상황은 많이 나아졌겠지만, 우리는 각종 매체를 통해서 청년들의 주거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는 '월급 백 팔십만 원 받으면서 내 집 마련에 성공했어요'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인기를 끌었다. 아니 어떻게? 놀라서 클릭을 해봤더니 정답은 간단했다. "아빠가 사줬어요."

맥이 탁 풀리면서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났다. 댓글의 면면도 나와 비슷했다. 부럽다, 좋겠다, 역시 그러면 그렇지 하는 자조 섞인 웃음들 속에서 어쩐지 씁쓸해졌다. 대한민국 집값 비싼 거야 어제오늘 얘기도 아니지만, 보통의 월급쟁이가 게다가 나처럼 혼자 벌어 혼자 사는 1인 가정의 가장들은 대체 어느 세월에 집을 사나 싶다.


내 핸드폰 속에는 '나중에 집을 사면 이렇게, 이렇게 꾸며 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모아놓은 인테리어 관련 사진들이 꽤 여러 장 있다. 베란다에는 근사하게 커피 테라스를 만들어야지. 제일 큰 방은 서재로 꾸미고 일인용 소파도 하나 놓아야지. 혼자 온갖 상상의 날개를 펼치며 히죽히죽 웃다 보면 어느 순간 자괴감이 밀려온다. 나는 정말 죽기 전에 온전히 내 힘으로 내 집을 살 수 있을까?


 '내 집 장만'을 위해 삶의 질마저 포기하고 싶진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흔한 말로 어떻게 밥만 먹고 사나? 가끔은 고기도 사 먹고 더울 땐 시원하게 맥주도 한 잔 마셔야지. 한 달을 부지런히 일해 월급을 받으면 기분 전환 삼아 예쁜 옷도 한 벌쯤은 사고, 육아로 지친 친구를 불러내 분위기 좋은 데서 밥도 한 끼는 사고 싶다.

집이라는 것이 그렇게 사람 노릇 해가면서 인색하지 않게 살아도, 근면한 삶의 대가로 언젠간 누구든 살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것이 되려면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걸까? 그저 꿈 같은 이야기라 할지라도, 나를 포함한 세상 모든 집 없는 집순이에겐 지금 희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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