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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길고양이를 입양해 온 독일대학생

유나의 한국 유학기

by 문맹

낯선 도시에서 시작된 유학 생활

독일 루르대학교 보훔에서 한국학과 미디어학을 복수 전공한 유나 (Yuna)는 2023년부터 성균관대학교 교환학생으로 서울에서 1년을 보냈다. 독일에서 한국으로 떠나기 전 그녀가 품었던 기대는 비교적 전형적이었다. 새로운 문화와 언어, 학문적 도전, 그리고 다양한 국제적 인연들. 그러나 서울에서의 시간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확장되었다.

유학 생활의 첫인상은 낯설고도 강렬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서울은 거대한 빌딩 숲과 끊이지 않는 인파, 분주하게 움직이는 지하철과 밤에도 꺼지지 않는 불빛의 도시였다. 독일의 느긋한 대학 생활에 익숙했던 그녀에게 서울의 리듬은 처음엔 숨 가쁘게 다가왔다. 하지만 곧 그 속도에 몸을 맞추어 가며 새로운 세상을 배우기 시작했다.


성균관대학교의 명륜 캠퍼스는 그녀에게 한국의 전통과 학문을 동시에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고즈넉한 한옥 건물 사이로 오가는 학생들의 발걸음, 조선 시대 성리학의 중심지로서의 역사가 살아 있는 강의동은 유학 생활에 무게감을 더했다.


혜화에서의 운명 같은 만남

서울에서의 일상은 강의실과 도서관, 친구들과의 모임으로 채워졌지만, 어느 날 문득 혜화동의 거리에서 운명 같은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가 특유의 활기 속, 길모퉁이에서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대부분의 길냥이가 그렇듯 재빨리 도망칠 줄 알았는데, 이 녀석은 오히려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다가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조심스레 앉아 간식을 내밀자 고양이는 주저하지 않고 받아먹었다. 낯선 외국인에게도 마음을 내어주는 듯한 태도에 유나는 마음을 빼앗겼다. 그날 이후, 혜화동을 지날 때마다 그 고양이는 어김없이 나타났다. 꼬리를 세우고 달려오며 귀여운 울음소리로 인사하는 모습은 어느새 일상의 소중한 풍경이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불안이 커졌다. 겨울이 다가오자 서울의 기온은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졌다. 어느 날 밤, 차가운 골목에서 고양이가 자동차 엔진 밑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 유나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따뜻함을 찾아 택한 자리였지만, 언제든 위험한 죽음의 공간이 될 수 있었다.


그 순간, 단순히 먹이를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 아이를 반드시 집으로 데려가야겠다. 그리고 언젠가 독일까지 함께 돌아가야겠다.”

한국의 길고양이 현실

이 경험은 단지 개인적 연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한국의 도시 곳곳에는 수많은 길고양이가 살고 있다. 일부 지자체와 동물보호단체가 TNR(포획·중성화·방사)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모든 고양이를 포획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많은 길고양이들이 겨울 추위와 교통사고, 먹이 부족으로 힘겹게 생존한다. 일부는 캣맘·캣대디라 불리는 주민들의 보살핌을 받지만, 여전히 사회적 시선은 엇갈리고, 체계적인 보호 시스템은 부족한 실정이다.

이 현실을 가까이서 체감한 유나는 단순한 동정심을 넘어 책임감을 느꼈다. 한국에서의 교환학생 생활은 학문적 도전뿐 아니라, 생명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을 묻는 시간으로 확장되었다.


입양과 긴 행정 절차

길 위의 고양이를 데려와 가족으로 삼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특히 독일까지 데려오기 위해서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다. 동물병원에서의 건강검진과 중성화 수술, 예방접종은 기본이었다. 이어서 마이크로칩 삽입과 EU 인증 광견병 항체 검사까지 진행해야 했는데, 혈액 샘플을 해외 실험실로 보내야 했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몇 주가 걸렸다.

모든 서류와 검사가 유효한 기간 안에 맞아떨어져야만 출국이 가능했다. 일정과 절차를 놓칠 경우 다시 처음부터 반복해야 했기에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재정적 어려움과 공동체의 연대

무엇보다 큰 고민은 비용이었다. 학생 신분으로 감당하기에는 수술비, 예방접종비, 항체 검사비, 이동장 구입비, 항공사 반입 비용까지 부담이 적지 않았다.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유나는 고양이의 사연을 공개적으로 알리기로 했다.


SNS에 올린 사연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불러왔다. 성균관대의 유학생 친구들, 한국 친구들, 심지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후원금을 보내왔다. 후원 메시지에는 “저도 길냥이를 돌본 적이 있어 공감된다”, “작은 생명을 위해 힘을 보탭니다” 같은 따뜻한 글귀가 가득했다.


“단순히 비용을 모은 게 아니라, 이 고양이와 저의 이야기에 공감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가장 큰 힘이 되었어요.”


그 응원은 단순히 경제적 문제 해결을 넘어, 낯선 타국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주었다.


실내에서 배우는 새 삶

출국을 앞두고 고양이는 실내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유로운 거리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창가를 오래 바라보거나 집안을 서성이기도 했다. 그러나 곧 따뜻한 담요 위에서 낮잠을 즐기고, 책상 옆에서 유나의 공부를 지켜보며 ‘골골송’을 들려주는 존재가 되었다.


유학생활의 고단함 속에서, 고양이는 새로운 가족이자 위로가 되었다. “책상 옆에서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났어요. 제가 외국에 있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든든했죠.”


긴장 속의 비행

마침내 출국 당일, 유나는 고양이를 위한 이동장에 집 냄새가 밴 담요를 깔았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독일행 항공기에 오르자, 작은 울음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불안과 긴장이 섞인 소리였지만, 유나에게는 곁에 있다는 증거였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곁에 있다는 사실이 느껴졌어요. 힘들어도 끝까지 함께 가겠다고 다짐했죠.”

비행 12시간 동안 이어진 긴장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하면서 비로소 풀렸다.


독일에서 이어진 동행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이동장을 열자, 피곤에 지친 고양이가 눈을 껌뻑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제 안전하다는 사실이었다. 지금은 독일의 햇살 아래에서 장난감을 쫓고, 창가에서 햇볕을 즐기며, 가끔은 길고양이 시절의 야성미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제 유나의 집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한국과 독일을 잇는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다. 고양이는 한국에서의 시간을 영원히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학문과 현장 경험, 그리고 성장

물론 한국에서의 유학은 고양이와의 인연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성균관대학교에서 한국 문학과 언어를 공부하며 역사와 전통의 깊이를 체험했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과 인공지능 강의에서는 이론과 실무를 연결했고, 제일기획 본사 견학은 광고 산업의 현장을 체감하게 해 주었다. UX 디자인 수업을 통해 디지털 미디어와 사용자 경험의 중요성을 배웠다.


또한 독일 연방가족부가 지원하는 독일-한국 청년 네트워크 활동에 참여하며 양국 청년 간 문화 교류를 도왔다. 국제적 프로젝트를 함께 추진하며 문화적 소통의 중요성을 실감한 경험은 앞으로의 진로에도 큰 자산이 되었다.


“호기심과 감사함이 저의 가치입니다”

유나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로 ‘호기심’과 ‘감사함’을 꼽았다.

“호기심은 낯선 환경에서도 배우고 도전하게 하는 힘이 되었고, 감사함은 불확실한 순간에도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않게 해 줬어요.”


앞으로 그는 외교관으로서 한국과 독일, 국제 사회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다. 동시에 글로벌 미디어와 디지털 분야에서도 전문성을 발휘하고 싶다고 말한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문화적 소통은 제 삶의 중심이 될 거예요.”

잊지 못할 한국의 풍경

유학 생활 동안 그는 수많은 문화적 경험을 했다. 경복궁의 고즈넉한 풍경,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한국사의 깊이, 인사동의 공예품 가게와 전통 찻집, 동대문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모든 풍경은 유나의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을 한국의 기억으로 남았다. 특히 한국 음식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다. 김치찌개와 불고기 같은 대중적인 메뉴는 물론, 독일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간장게장의 깊은 맛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유나의 한국 유학은 교환학생이라는 틀을 넘어, 삶의 태도를 바꾸는 특별한 경험으로 남았다. 한 마리 길고양이를 통해 책임과 사랑, 그리고 연대를 배웠고, 학문과 문화, 국제 교류 속에서 자신의 길을 모색했다.

서울 혜화의 골목에서 시작된 작은 인연은 이제 독일의 일상 속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 여정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한국 유학의 진짜 성과는 지식보다 사람과 생명, 그리고 그들과의 연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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