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자리 동료가 한숨을 쉰다. 혹시 나 때문일까? 안 풀리는 일이 있나?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갑자기 한숨 소리를 듣게 되면 괜스레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처럼 신경 쓰이기도 한다. 무슨 문제가 생겼나 싶은 생각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서 표정을 살피게 되기도 한다.
혹은 그런 적이 있는가? 요 며칠 표정이 어두운 동료가 있다. 무슨 걱정이 있는 건지, 건강이 안 좋은 건지 모르겠다. 별로 친하지도 않고 업무적인 접점이 없어서 말을 몇 마디 해보진 않았지만, 혹시나 동료가 힘들어서 회사를 나가게 될까 봐 걱정도 된다. 하지만 같이 하는 업무가 없어서 갑자기 기분이나 상태를 물어보기도 조금 부담스럽다.
팀장이나 관리자 직급이라면 더더욱 신경 쓰이는 일이다. 팀원들이 사무실에서 한숨을 푹푹 쉬고, 며칠 내내 표정이 어둡다면 그들을 관리하고 케어해야 하는 팀장 입장에서는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할 수밖에 없다. 대체 왜 그러는가? 무슨 일이 있는가!? 업무적인 문제인가, 회사생활이 문제인가, 아니면 그냥 개인적인 문제인가?
매일의 기분 점수를 적고 하루를 회고하여 다른 팀원들이 볼 수 있는 곳에 공유했다. 기록들이 쌓이면서부터는 여러 인사이트들도 생겨났다. 무엇보다 기분 점수를 파악하면서 얻게 된 이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내 기분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그냥 감으로만 기억하고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면 아무런 의미도 없이 지나갔을테지만, 숫자로 적고 느낌을 글로 남기면 하루의 의미가 생긴다. 오늘이 나에게 유독 힘들었던 하루인지, 왜 그랬는지, 내 고민은 무엇인지를 한 달이 지나고 나서도 기억할 수 있다. 내가 어떨 때 기분이 안 좋은지, 무엇때문에 기분이 안 좋아지는지도 알 수 있다. 모르고 지나쳤으면 평생 몰랐을 것들이다.
기분 점수를 숫자와 그래프로 보게 되면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된다. 안다고 끝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어진다. 내가 요즘 막연히 괜찮다고만 생각했는데 실제 기분 점수를 보니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었다면, 다른 행동을 취하게 된다. 컨디션을 다시 높이기 위해, 휴식을 조금 더 취하기 위해, 삶에 다른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뭔가 해보게 된다.
다른 동료의 상태도 이해하게 된다. 저 사람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기분이 더 안 좋았구나, 지난 6개월 중에서 지금이 가장 안 좋은 시기였구나, 그래서 더 예민한 모습을 보였구나, 이런 생각들을 해볼 수 있게 된다. 상대방의 상황을 모르면 그냥 내 상황에서만 내가 받은 스트레스를 중심으로 상대를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는 감정의 골이 좁혀지지 않는다.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기분 점수는 의미가 있다.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사일로 현상(Silo Effect)을 미리 방지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사일로 현상이란 팀과 팀 간에 각자 울타리를 치고 서로 협력하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다른 팀의 사정을 이해해주려 하지 않으며 각자의 업무 리소스나 이익만을 따지게 되는 게 사일로 현상이다.
나는 이런 일이 시작되는 이유가 다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데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했다. (참고 : 다른 팀이 무슨 일 하는지 왜 알아야 돼?) 물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서로 소통의 접점 자체가 적어지면 사일로 현상도 심해진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서로의 업무나 생각, 고민들을 알 수 있게 만드는 소통 창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션에 간단한 사내 게시판을 만들고 양식을 올렸다. 누구나 자유롭게 그날 하루에 대한 기록을 일기처럼 적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 여기서 레드 플래그(Red Flag)란 사업/업무의 적신호가 될 만한 모든 요소를 말한다.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든가 업무적으로 막히는 지점이 발생했다거나, 개인적으로 업무 집중력이 떨어졌다거나 등등 적신호가 될 만한 모든 것들을 자유롭게 적는다.
이러한 양식에는 몇 가지 이점이 있다.
기분&컨디션 점수 : 1~5점 척도로 매겨서 나중에는 데이터를 모아볼 수 있다. 내가 기분이 안 좋았던 날이 언제이고, 한 달 동안 기분이 어땠는지 돌아보기에 좋다.
그날 진행한 업무 : 내 업무일지이기도 하고, 누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 수 있어서 도움이 된다.
오늘 하루에 대한 회고 : 말 그대로 다이어리여서 개인적인 일이나 업무적인 고민 등을 다채롭게 볼 수 있다.
레드 플래그 : 그 사람의 고민이 뭔지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이 스트레스받는 건 업무적으로 일이 잘 안 풀릴 때가 많다.
회고 다이어리는 단순히 다른 사람의 고민을 엿보는 것 외에도 '회고와 성장'이라고 하는 좋은 기능을 한다. 알고케어는 이전에 없던 길을 가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물어보거나 배울 수가 없다.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으며 알아서 처음 걷는 길을 학습하고 성장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회고 문화가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다. 매일, 주간, 월간, 분기, 반기, 연간으로 회고 루틴을 가졌다. 회고 다이어리는 그중 하나다.
어쨌든 매일 이렇게 자신의 기분이나 컨디션, 고민을 기록하다 보면 데이터가 쌓인다.
처음엔 월간 회고에서 위와 같이 단순한 내용만 확인했다.
누가 기분이 가장 좋았는가?
누가 기분이 가장 안 좋았는가?
누가 많이 적고, 누가 적게 적었는가?
이런 것들을 다 같이 재미로 봤다. 사실 무슨 대단한 인사이트가 있거나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기 때문에 다 같이 재미로만 참고했다.
다만, 조직관리 차원에서 나의 의도는 동료의 지난 한 달이 어땠는지, 어떤 동료에게 더 지지와 응원이 필요할지 알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자신의 기분 점수를 돌아보면서 내가 기분이 안 좋은 날은 어떤 날인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기분 점수를 더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각자가 잘 알기를 바랐다. 나 스스로 더 만족스러운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내 스타일이 어떤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히 감으로 아는 것보다 그래프를 활용하면 보다 정확히 알 수 있다. 단순히 개인의 한 달 평균점수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한 달 동안 기분 점수 추이를 보면, 기분이 확 안 좋았던 날이 며칠인지 확인해서 그날의 회고를 읽어보면 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알아가고, 배려할 수 있다.
나아가서 팀 전체의 기분 점수 평균도 내봤다. 혹시나 우리 팀의 기분 점수에 어떤 경향성이 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만약 어떤 변수가 있다면 그 변수를 통제해서 구성원의 만족도나 컨디션을 높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처음에는 특별한 경향성을 알기 어려웠다. 시간이 많이 쌓여야 데이터가 의미 있어지기 때문에 몇 달에 걸쳐서 계속 분석해봤다. 무엇이 우리 팀을 힘들게 하고, 또 신나게 만드는가?
가장 처음에는 미팅이나 회의 숫자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모든 직장인들이 회의가 많으면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알고케어도 초기 스타트업인지라 논의하거나 의사결정지을 것들이 많아서 2021년에는 한창 회의가 많았다. 그래서 미팅 수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미팅이 많다고 해서 팀 기분 점수가 낮아지지는 않는다. 평소에 미팅이 많은 날에는 다들 지치고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던 걸 되돌아보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히 미팅이 기분이나 컨디션에 영향을 끼칠 것 같은데!
그래서 몇 달 동안 미팅과의 상관관계를 더 뜯어본 결과, 미팅 수 보다는 미팅의 질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서로 건강하게 협업하고 좋은 결과가 나온 미팅이 있으면 기분 점수가 높고, 문제점만 발견되거나 의견이 잘 모아지지 않은 날에는 기분 점수가 낮았다.
미팅의 질은 매일매일 기분 점수에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라 특별히 미팅의 질이 높거나, 낮았던 날에서만 드러났다. 매일의 기분 점수는 비정기적인 미팅이 아니라 '요일'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 (아래에 계속)
우리는 한창 월요병을 앓았던 시기가 있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대체로 요일에 따라서 눈에 보이게 차이가 드러나고, 특별히 기분이 좋거나 나빴던 때에는 여러 사람이 참여한 회의가 질이 높았는지 낮았는지에 영향을 받았다.
위에서 좌측의 그래프를 보면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를 하다가 사무실 출근이 다시 많아졌을 때 월요병이 한창 심했다. 사람들이 오랜만에 회사에 출근해서인지 적응을 잘 못하는 기색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면서 출퇴근이 익숙해지고 나니 일주일의 중간인 수요일/목요일이 굉장히 하락세를 띄기 시작했다. 지치고 피곤한 수목에는 점수가 낮아졌다가 금요일마다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처음에는 요일에 따라 팀원들의 기분&컨디션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나 고민했다. 월요일에는 지루한 회의를 피한다든지, 화요일에 워크샵이나 아이디에이션 회의를 잡는다든지 등등 전체 컨디션을 보정할 수 있는 액션 아이템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요일에 따른 차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은 요일에 따른 점수 차이가 거의 없어졌다. 첫 번째 이유로 추측하는 것은 이렇다. 위 그래프를 전사에 공유하고 나니 사람들이 요일별 자신의 기분을 신경 쓰기 시작했다. 월요병이 있다는 걸 알고 나서는 월요일에 스스로를 다독이고 동기 부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자기 컨디션을 뭔가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지 운동을 하거나 취미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두 번째 이유로 추측하는 건 근속연수다. 회사가 창립된 지도 1년이 지나면서부터는 반년, 1년 이상 다닌 구성원들이 늘어났다. 회사생활과 라이프스타일이 익숙해지고 루틴해지다 보니 요일에 따른 차이를 크게 느끼지 않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구성원들의 기분 점수를 높이기 위해 다른 변수를 찾아야 했다.
어느 날 문득 팀 전체의 기분 점수 그래프와 비슷한 사람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특히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많이 하는 팀원은 다른 사람들의 기분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 그래서 그래프를 겹쳐보았다.
몇 명을 비교해보니 실제로 유사성을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주인공은 프로덕트 디자이너 팀원이었다. 알고케어의 모바일 앱에는 헬스 R&D 팀의 의약학적 콘텐츠도 들어가고, 개발팀의 개발도 필요하고, 마케팅팀의 커머스 기능도 얽혀있기 때문에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협업이 많다. 그래서인지 팀 전체의 기분과 유사한 경향성을 보였다.
인과관계가 어떻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녀가 팀원들의 기분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아서 팀 전체의 기분을 따라가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녀가 기분이 좋거나 나쁠 때 주변에 표현을 많이 해서 동료들이 영향을 받는 것일 수도 있다. 아마 둘 다 상관이 있지 않을까 싶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느 구성원의 기분이나 의사표현이 팀 전체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중심인물의 기분 점수를 더 신경 써서 챙긴다든지, 그의 기분 표현이 동료들에게 악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주의한다든지 등등, 우리가 더 잘 지내기 위한 인사이트들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조직은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위와 같은 경향성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특히 인원이 많아지면서 미팅의 수나 종류라든지, 요일이라든지, 특정 개인의 기분 점수 등 어느 것과도 비슷하지 않은 경우가 생겼다.
그래서 최근에는 팀 전체의 기분 점수 그래프를 해석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가만 보니 회고 다이어리 문화 자체의 이슈가 있었다. 요즘 들어 회고를 작성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회고를 거의 적지 않은 날에는, 회고를 자주 쓰는 사람의 기분 점수가 팀 전체의 점수로 표현되었다. 즉, 회고 작성 수에 따라 팀 전체의 기분 점수 표현이 다르게 드러났다. 이제는 팀의 기분 점수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팀 기분 점수를 통해 팀의 경향성을 읽어내기보다는, 특이점이 있는 날을 캐치하여 그날의 어떤 개인에게 이슈가 있었는지를 파악하기에 더 용이해졌다. 대체로 회고 작성 수와 기분 점수가 비슷하지만 다른 날이 있고, 그날에는 뭔가 평소와 기분 점수가 특이하게 달랐다는 의미가 된다. 위에서처럼 회고 작성 수와 차이가 나는 날짜를 쉽게 캐치하여 그날의 이슈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팀 기분 점수와 비교하는 게 큰 의미가 없고, 각자 개개인의 기분 점수를 세밀하게 살펴보는 게 더 의미 있어졌다.
개인의 기분 점수를 팀 평균과 비교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1~5점 척도라고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2점이 '그저 그런 평균'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4점이 '그냥저냥 괜찮은 날'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중간 기준을 다르게 잡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점수와 비교하는 게 좋다는 걸 알았다.
이는 누군가의 업무 만족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잘 드러내 준다. 특히 인원이 늘어나다 보니 서로 말도 몇 마디 못 해보고 몇 주가 훌쩍 지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래서 저 옆 팀의 사람이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를 알기가 어렵다. 그럴 때 기분 점수는 꽤나 도움이 된다.
하지만 회고 참여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팀 전체의 기분 점수를 알기 어려운 점은 역시 아쉬운 일이다. 그리고 개인의 기분 점수를 분석할 때도 회고 작성 수가 적다면 평균을 내는 의미가 별로 없기 때문에 의미가 흐려지기도 한다. 그래서 회고 참여율을 높이는 게 최근의 이슈였다.
그래서 최근에는 회고 다이어리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업데이트를 자주 했다.
회고 다이어리가 익숙하고 오래된 문화가 되어가는 것 같아서, 다시 주목을 끌어보고자 이름을 바꿨다. 실은 팀원들이랑 술을 먹다가 아이디어를 얻었다. 누군가 소의 위장이 4개인 걸 알고 있냐고 물어봤다가 반추동물이 유머 소재로 떠올랐다. 우리도 매일 회고를 하지 말고 반추를 하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리뉴얼을 강행했다. 실제로 한 건 없고 이름과 이미지만 바꾸며 전사에 반추록 작성을 리마인드했다.
이외에도 회고 다이어리 참여율을 높이기 위한 방법들은 이것저것이 있었다. 솔루션을 찾기 위해 문제 원인을 먼저 분석해야 했는데, 참여율이 낮아진 데에는 사람 수가 늘어난 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회고 다이어리는 내가 쓰는 재미도 있지만 다른 사람의 회고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른 회고에 들어가서 코멘트도 달고, 댓글도 달고 서로 소통하는 재미가 있다. 애초에 자기 혼자 쓰는 진짜 일기라면 각자 프라이빗 페이지에 쓰면 된다. 그게 아니라 회고 다이어리를 공개 사내 게시판에서 쓰는 이유는 서로 소통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인원수가 많지 않을 때는 아래와 같이 서로의 회고에 코멘트를 자주 달았다. 실제적으로 일을 덜어주거나 개선해줄 수도 있고 위로/공감해줄 수도 있는 좋은 창구였다. 무엇보다 드립을 던지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인원이 많아지니까 회고의 수도 많아져서 모든 회고를 다 읽어볼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아무도 내 회고를 읽지 않으니 쓸 이유가 별로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다음으로 시도한 건 팀 묶어보기였다. 노션에 새롭게 추가된 기능인 Group 기능을 활용했다.
사람이 많아서 모든 회고를 다 보기 어렵다면? 우리 팀원의 회고만 모아서 보자. 라는 생각에서 수정했다. 그러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미 대세는 기운 것일까? 보이는 게 큰 상관이 없다면 내용을 더 알차게 바꿔보기로 했다.
회고 다이어리의 템플릿 내용은 그전부터 이미 끊임없이 수정되고 개선되어왔다. 가장 최근의 회고 양식은 아래와 같다. 물론 모든 사람이 반드시 양식을 따라야 하는 건 아니고, 이미 각자 자기들 편한 대로 쓰고 있었다. 그래도 템플릿을 만들어놓으면 대체로 따라서 썼던 것 같다.
최근 손보고 있던 건 업무 달성도와 칭찬하기였다. 업무 달성도는 단순히 일기처럼 회고만 적는 게 아니라 스스로 그날의 효율을 정량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도록 안배했다. 전에는 KPT나 4Fs 같은 회고 양식도 사용해봤는데 그러한 방식은 매일 적기에 공수가 많이 들어서 자유로운 회고 양식을 유지하되, 업무 달성도만 추가한 것이다.
서로 소통거리를 늘리기 위해 칭찬하기 기능도 템플릿에 추가했었다. 칭찬하기 문항은 처음엔 그냥 백지에 자유롭게 적는 방식으로 시범 운영을 해보다가, 사람들이 잘 적길래 노션의 테이블 데이터베이스 기능을 활용해 바꿨다. 사람들이 그냥 자기 회고 다이어리에다가 일기 쓰듯이 다른 사람에 대한 칭찬을 적으면 이러한 모든 칭찬들이 하나의 테이블 데이터베이스 안에 아카이브 된다. 나중에 월간 회의 시간에 한 달 동안 모인 칭찬들을 몰아보면서 소회 했다.
하지만 이전까지는 칭찬하기를 적으려면 대상자가 누구인지 태그를 걸어야만 했기 때문에, 칭찬을 적을 때마다 받는 사람에게 알림이 갔다. 이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테이블 데이터베이스 기능을 도입하고 나서는 작성률이 급격히 감소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개선했다.
내 일기장에 그냥 느낀 점을 적기만 하면 된다. 다른 사람에게 알림이 가지도 않고 나 혼자만 볼 수 있다. 나중에 월간 회의 때에만 공유가 된다. 적는 부담은 훨씬 줄어들었다. 하지만 회고 참여율을 높이는 데에는 크게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아무래도 템플릿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회고를 작성하는 방식 자체를 쉽고 간편하도록 뜯어고쳤다.
찾은 방법은 개인화와 자동화였다. 다른 사람의 회고를 읽는 것으로 유인을 주는 게 아니라, 더 쉽고 편하게 만듦으로써 참여율을 높이고자 했다. 기존에는 회고 다이어리를 작성하려면 노션에서 회고 다이어리 페이지를 들어와서 템플릿을 불러오고 작성해야 했다. 하지만 긱봇이라는 자동화 툴을 통해 각자에게 DM(Direct Message)로 회고 다이어리 양식을 보내주었다. 거기서 그냥 채팅하듯이 입력하면 자동으로 기록된다.
다만 긱봇을 이용하면 통계를 내기가 불편하기 때문에 자피어라는 다른 자동화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았다. 긱봇은 슬랙 DM으로 정해진 템플릿을 정기적으로 보내주는 프로그램이고, 자피어는 슬랙에서 입력된 값을 자동으로 노션의 정해진 테이블에 기록해주는 프로그램이다. 도입 방법을 참고한 것은 다음 아티클이다.
확실히 정해진 시간에 자동으로 알림을 보내주고, 쉽고 편하게 입력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니까 참여율이 높아졌다. 그리고 개인 DM에서 작성하다 보니까 일기 쓰듯이 적는 기분이 들면서 부담도 더 적어졌다. 도입한 지 아직 며칠 되지 않았기 때문에 경과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어떻게 해야 서로 더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더 건강한 조직이 될 수 있을까. 고민은 항상 남아있다.
직장을 바라보는 관점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현대 사회에서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점차 없어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직장의 의미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일은 일이고 생활은 생활이라고 여기던 워라밸 문화도 점차 변하고 있다. 일과 생활을 분리하지 않고, 내 인생에서 일의 의미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흐름이 확산된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이라는 공간도 마찬가지다.
직장에서 어떤 기분으로 생활하는지는 정말 중요하다. 내가 스스로 더 행복하게 회사를 다닐 수 있도록, 동료들과 더 건강한 관계로 지낼 수 있도록 자신과 서로의 기분을 신경 써주는 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려면 알아야 한다. 나의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나는 어떨 때 힘들고 어떨 때 기쁜지를 알아야 한다. 어떤 업무가 나와 잘 맞고, 어떤 업무 방식이 내게 더 편하며, 무엇이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지 곰곰이 고민해봐야 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고민을 알기는 쉽지 않다. 저 사람이 나 때문에 화가 난 건지, 나를 답답해하는 건지,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지, 아니면 어떤 힘든 일이 있는지, 개인적인 고민이 있는지 아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다짜고짜 물어보기에도 민감한 주제이고, 눈치껏 파악하기에는 일에 치여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럴 때 회고 다이어리는 꽤나 도움이 된다. 기분 점수를 트래킹 하는 것도 좋다. 사실 방법은 뭐가 됐든 상관없다. 회고 다이어리가 아니더라도 좀 더 자기 자신과 동료들에게 관심을 갖고 정성을 들이면 된다. 정답은 없기 때문에 각자의 팀에 맞는 방식을 계속해서 찾아나가고, 개선하면 될 것이다.
우리 팀은 회고 다이어리를 통해 더 건강한 조직이 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회고 다이어리조차 회고(a.k.a. 반추)하면서 개선해나간다. 다른 수없이 많은 업무 프로세스들, 방법론, 규칙, 문화들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사람끼리 모였기 때문인지 다들 그냥저냥 하던 대로 하는 꼴을 못 보고, 스스로 만족하지 못해서 항상 더 나은 방법을 찾는다.
어떤 방식이 우리에게 잘 맞을지, 더 좋은 방법이 있을지, 아직 완벽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완벽'이란 정해진 하나의 답이 있는 게 아니라 추구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좋은 방식들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쨌든 이러한 경험담이 다른 고군분투하는 업계 동료 분들께도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