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이 안정이라는 착각에서 깨어난 날
최근 종영한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로 시작해 봅니다.
어느 누군가에게는 그저 현실 공감 드라마 한 편이었겠지만, 제게는 이상하게도 오래 남더군요. 특별한 반전이 있어서도 아니고, 자극적인 사건이 있어서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너무 익숙해서, 너무 현실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서울에 자가가 있고, 대기업 부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 많은 분들이 한 번쯤 꿈꿔봤을 “성공한 직장인”의 상징 같은 설정입니다. 드라마는 대신 우리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모른 척했던 일상을 조용히 보여줍니다. 회의실의 공기, 관계의 거리, 실적의 압박, 그리고 매일 반복되는 출근길의 무게 같은 것들 말입니다.
저는 특히 한 장면이 오래 남았습니다. 주인공이 아무 일도 없는 듯 출근을 준비하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회사로 향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평범함이 오히려 무거운 마음을 들게 합니다. 그 장면이 제 삶의 어느 부분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죠.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속은 조금씩 말라가는 사람의 표정 말입니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난 뒤에도 마음이 계속 불편했던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이야기 속 김 부장을 보면서 동시에 제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회사에서 역할을 맡고, 책임을 다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왔습니다. 바쁘게 사는 동안에는 그 삶이 안정이라고 믿었습니다. 월급이 들어오고, 일정이 돌아가고, 성과가 쌓이면 ‘나는 잘 살아가고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이 가능한 거죠.
하지만 연차가 쌓이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확신이 서서히 약해졌습니다. 월급이 들어오는데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고, 성과를 내는데도 미래가 선명해지지 않았습니다. 일이 많아질수록 삶이 줄어드는 느낌이 듭니다. 무엇보다 마음이 자주 조급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조급함은 늘 같은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나는 언제까지 여기서 필요할까?'
익숙한 출근길이 어느 순간에는 낯설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전과 같은 길을 걷고, 이전과 같은 시간에 회사 셔틀을 타고, 이전과 같은 표정으로 회사로 향했는데도 마음속에서는 질문이 계속 반복됐습니다.
정말로 이 삶이 안정일까?
지금 내가 서 있는 바닥이 단단한 땅일까?
아니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얇은 판자 위일까?
회사에 도착해 하루의 루틴을 시작하면 그런 생각은 잠시 잠잠해집니다. 해야 할 일이 있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고, 사람들과 맞춰야 할 일정이 있습니다. 일은 그렇게 사람을 현실로 붙잡아두는 힘이 있습니다. 바쁘다는 건 종종 ‘잘 살고 있다’는 착각의 감각을 줍니다. 적어도 멈춰 서서 생각하지 않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매일 루틴은.. 일정표는 빼곡했고 회의는 연달아 이어졌습니다. 저는 평소처럼 업무를 정리하고, 구조화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시장과 고객, 경쟁사의 변화를 분석하고, 리스크를 분류하고, 일처리 방향을 제시합니다. 익숙한 일이고, 해온 시간만큼은 자신 있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요즘 임원이 모인 회의실의 공기는 조금 달랐습니다. 내용보다 분위기가 먼저 읽혔습니다. 사람들의 표정이 이전보다 굳어 있었고, 말의 온도는 낮아져 있었습니다. 조직이 흔들릴 때 회의실은 늘 비슷한 신호를 보냅니다. 말은 정제되어 있는데 감정은 예민해지고, 논리는 차분해 보이지만 마음은 급해집니다.
올해 초 임원회의 중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조직 효율화가 필요합니다.” 너무 흔한 표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그 말이 ‘전략’이 아니라 ‘통보’처럼 들리더군요. 효율화는 결국 누군가의 역할이 줄고, 자리가 바뀌고, 때로는 조직 밖으로 밀려나는 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문장을 듣는 순간 드라마 속 김 부장의 표정이 떠올랐습니다. 성공한 직장인의 표정인데도 어쩐지 불안이 묻어 있던 표정. 겉으로는 단단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빠르게 흔들림을 감지하는 표정. 그 표정이 그날의 회의실 공기와 묘하게 겹쳤습니다.
커피 한 잔 앞에서 질문이 또렷해졌습니다
회의가 끝난 뒤 저는 습관처럼 커피를 마시러 사내 카페에 갔습니다. 회사에서 커피는 기호라기보다 ‘숨’에 가까운 역할을 합니다. 커피 나오는 시간을 기다리면서, 그 짧은 멈춤이 때로는 조급한 마음을 피할 수 없게 만듭니다.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속 질문이 더 또렷해지는 것입니다. 나는 언제까지 여기서 필요할까. 질문은 회사에 대한 질문 같지만, 곧 삶 전체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됐습니다. 내 삶의 기반이 지금 이 회사 하나뿐이라면 나는 정말 안전한가. 월급이라는 한 줄의 파이프라인만 붙잡고 살아가는 인생은 괜찮은가.
그때 저는 제 불안의 정체를 조금 더 분명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두려운 것은 단지 일이 많아서가 아니었습니다. 통제권이 없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상황이 바뀌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불안이었습니다. 내가 내 삶의 방향을 선택하고 있다는 감각이 약해진 상태였습니다. (대부분 직장인 분들도 같은 생각이라고 봅니다.)
월급이 들어오는데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성과를 내고 있는데도 미래가 선명해지지 않았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열심히 살고 있었지만, 동시에 어디로 끌려가는지 모르는 상태인 거죠.
공감은 생각보다 생활 속에서 먼저 찾아왔습니다. 그날 오후 부모님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평소처럼 별일 아닐 거라 생각했고, 평소처럼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통화 내용이 끝나고 나서 마음이 묘하게 무거워졌습니다. “요즘 허리가 좀 안 좋다”, “병원을 가야겠다” 같은 말들이었지만, 저는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은 늘 “괜찮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그 “괜찮다”는 정말 괜찮다는 뜻이 아닐 때가 많다는 걸요. 그 말은 자식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의미일 때가 많고, ‘지금은 버틸 수 있다’는 의미일 때도 많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부모님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 한쪽이 조용히 무거워집니다.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인생은 회사 하나의 변수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요. 회사도 흔들리고 건강도 흔들리고, 가족의 삶도 흔들리는 시기가 어느 날은 동시에 찾아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때 내게 선택권이 없다면, 삶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월급'은 안정이 아니라 ‘계약’ 일 수 있습니다. 항상 저는 월급을 조금 다르게 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월급은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반입니다. 그러나 월급이 곧 안정과 동일한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월급은 내 시간을 주고 돈을 받는 계약입니다. 내가 멈추면 월급도 멈춥니다. 내가 흔들리면 그 계약도 흔들립니다.
월급이 주는 안정감은 때때로 착각을 만들어냅니다. 월급이 들어오니 ‘괜찮다’고 생각하고, 지금은 바쁘니 ‘나중에 준비하자’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우리는 준비를 미룹니다. 그러나 월급이 있는 동안 준비하지 못하면, 월급이 흔들릴 때는 더 준비할 수 없게 됩니다.
월급에 대해 깨닫게 된 점은. 월급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월급을 인생의 전부로 착각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요. 내 삶이 오직 한 줄의 파이프라인에만 연결되어 있다면, 그 파이프가 흔들리는 순간 삶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적 자유는 돈이 아니라 '선택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경제적 자유를 숫자로만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 원치 않는 일을 억지로 하지 않을 수 있는 힘,
- 가족을 위해 시간을 꺼내 쓸 수 있는 힘,
- 부모님의 병원 일정 앞에서 눈치 보지 않을 수 있는 힘,
- 건강이 무너질 때 삶 전체가 같이 무너지지 않는 힘 말입니다.
선택권은 존엄과 연결됩니다. 선택권이 없는 삶은 사람을 작아지게 합니다.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고, 말하고 싶어도 참아야 하며, 떠나고 싶어도 남아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면 사람은 점점 자신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경제적 자유는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존엄을 지키는 문제였습니다.
저는 조용히 '나만의 굴'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회사 밖에서도 통하는 나를 만들겠다고요. 거창한 창업이나 큰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출구 하나는 준비해야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굴을 파는 일’이라고 부르고 싶었습니다.
굴은 처음엔 보잘것없습니다. 느리고, 성과가 바로 보이지 않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작은 한 삽이 쌓이면 길이 되고, 길이 이어지면 출구가 된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저는 조용히 굴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해온 일을 정리했고, 제가 잘했던 방식을 문장으로 남겼습니다. 보고서 구조를 템플릿으로 만들고, 기획자의 사고 프레임을 시장의 언어로 바꾸어보려 했습니다. 작은 글을 쓰고, 작은 실험을 해봤습니다. 느렸고 서툴렀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저는 적어도 ‘가만히 불안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용히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경제적 자유는 돈이 아니라 존엄이라고 봅니다.
저는 오늘도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여전히 책임을 다하고 싶고 성과를 내고 싶습니다. 다만 동시에 회사 밖의 나를 준비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와 제 가족을 지키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경제적 자유는 먼 미래의 목표처럼 보이지만, 실은 오늘의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오늘의 작은 선택이 내일의 구조를 만들고, 그 구조가 쌓여 언젠가 선택권이 됩니다. 그래서 경제적 자유는 언젠가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준비한 사람이 얻게 되는 힘이라고 믿습니다. 반복 속에서도 굴을 파는 사람만이 결국 출구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저는 믿고 싶습니다.
저는 오늘도 굴을 팝니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시작했기 때문에, 그리고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 저는 제 삶의 출구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출구에서 저는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끝까지 나를 잃지 않았다고. 월급이 끊겨도 무너지지 않는 삶의 구조를 만들었다고. 그리고 그 구조가 결국 저와 가족의 시간을 지켜주었다고 말입니다. 그것이 제가 꿈꾸는 경제적 자유의 모습이니까요.
글을 쓰면서, 다이어리에 적어봅니다.
- 경제적 자유를 원하는 진짜 이유는?
-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미래?
- 오늘부터 파기 시작할 작은 굴?
작아도 충분합니다. 느려도 괜찮습니다. 굴은 파는 사람에게만 기회가 찾아오니까요.
경제적 자유를 위한 여정 시작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