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없을 때도 작동하는 구조
저는 '경제적 자유'라고 하면 얼마 전에 종영한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건물주인 김 부장 친구와 나누는 대화 장면요.
경제적 자유를 이야기할 때, 종종 특별한 사람들을 떠올리지 않나요? 예로 사업에 크게 성공한 사람, 투자로 큰 수익을 낸 사람, 혹은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이 바뀐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자극적이고, 때로는 부럽고, 때로는 멀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는 저렇게는 못 할 것 같다......."는
저 역시 그랬습니다. 경제적 자유라는 단어는 늘 나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개념처럼 느껴졌습니다. 재능이 있거나, 운이 좋거나, 처음부터 다른 출발선에 서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그 이야기를 ‘구경’만 했습니다. 참고는 했지만, 진지하게 나의 문제로 끌어들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경제적 자유를 이룬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니, 공통점이 하나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특별히 더 똑똑해서가 아니라, '다르게 일하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재능이 아니라 '시스템'이 그들을 버티게 하고 있었습니다. 돈이 매달 들어오는 파이프라인을 구축했다는 것이죠.
이번 브런치 제목은 '경제적 자유를 위해 굴을 파는 사람'이죠. 제가 생각나는 '굴'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즉 굴을 파는 일은 언제나 눈에 띄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주변 사람들의 삶은 그대로 흘러가고, 출근과 퇴근, 월급과 회식이 반복됩니다. 그 사이에서 굴을 파는 사람은 조용히 자기 시간을 떼어냅니다.
하루에 30분, 혹은 주말의 몇 시간. 그 시간은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합니다. 성과로 바로 이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시간을 “굳이 안 해도 되는 일”로 분류합니다. 당장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죠.
그러나 굴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보이지 않는 시간, 보이지 않는 노력, 보이지 않는 축적. 굴을 파는 사람은 그 시간이 언젠가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움직입니다. 그 믿음이 없으면 굴은 시작조차 되지 않겠죠.
"시스템은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경제적 자유를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한 방”은 없었습니다. 대신 작은 시도가 반복되었습니다. 글을 쓰고, 기록을 남기고, 경험을 정리하고, 실패를 수정하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이 쌓여 있었습니다.
오히려 시스템은 ‘의도하지 않으면 만들어지지 않는 것’에 가깝다고 봅니다. 하루하루는 우연처럼 흘러가지만, 반복은 구조를 만듭니다. 같은 방향으로 반복된 행동은 어느 순간부터 자동으로 굴러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에너지를 써야 움직이던 것이, 나중에는 관성으로 돌아갑니다. 이 지점이 바로 시스템의 시작입니다. 경제적 자유는 이 시스템이 일정 수준 이상 작동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현실적인 목표가 됩니다.
굴을 파는 사람들의 공통점
제가 만났거나 관찰해 온 ‘굴을 파는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큰 그림을 완성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를 명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 했던 일, 실패했던 프로젝트, 성공했던 방식들을 하나씩 꺼내어 언어로 정리했습니다. 그 경험이 누구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했고, 어떤 형태로 남길 수 있을지를 생각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부족한 상태로 시작했고, 반응을 보며
수정해 나갔습니다. 그래서 속도는 느렸지만 방향은 분명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빠름이 아니라 지속 가능성이었습니다.
"시스템은 나를 대신해 일합니다."
굴을 파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언젠가 내가 직접 뛰지 않아도 굴이 역할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시스템이란 결국, 내가 없을 때도 작동하는 구조를 의미합니다.
월급은 내가 일할 때만 발생합니다. 내가 멈추면 월급도 멈춥니다. 반면 시스템은 다릅니다. 한 번 만들어진 구조는 시간이 지나도 흔적을 남깁니다. 글은 남고, 자료는 쌓이고, 관계는 이어집니다. 이 흔적들이 모여 나를 대신해 가치를 만들어냅니다.
이 지점에서 경제적 자유는 더 이상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시스템이 조금이라도 돌아가기 시작하면, 선택지가 생깁니다. 모든 선택을 월급 하나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그 상태가 바로 경제적 자유의 실체에 가깝습니다.
굴을 파는 일은 외롭지만, 가장 현실적인 선택입니다.
솔직히 말해 굴을 파는 일은 외롭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고, 주변의 공감도 쉽게 얻기 어렵습니다. 어떤 날은 내가 잘 가고 있는지조차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을 파는 사람들은 멈추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굴을 파지 않으면, 결국 남이 만든 길 위에서만 살아가게 된다는 사실을요. 그 길은 편해 보이지만, 언제든 통제권을 잃을 수 있는 길입니다.
굴을 파는 일은 불안해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관리하기 위해 선택하는 일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불안해하는 것보다, 작게라도 준비하며 불안을 다루는 쪽이 훨씬 건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만의 굴은 나만의 방식으로 파야 합니다
중요한 사실 하나는, 굴의 모양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입니다. 누군가는 글로 굴을 파고, 누군가는 강의로, 누군가는 제품이나 서비스로 굴을 팝니다. 어떤 굴은 수익으로 이어지고, 어떤 굴은 기회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공통점은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과 시간, 그리고 생각이 연결된 구조'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남의 굴을 그대로 따라 파는 순간, 그 굴은 내 것이 되지 않습니다. 나의 삶과 맞닿아 있지 않으면 시스템은 오래 유지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굴을 파는 일은 결국 자기 이해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무엇을 해왔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반복할 수 있는지를 솔직하게 바라보는 일입니다. 이 과정이 없으면 시스템은 겉돌게 됩니다.
오늘의 한 삽이 내일의 선택권이 됩니다
경제적 자유는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죠. 그것은 매일의 선택이 쌓여 만들어지는 결과입니다. 오늘의 작은 한 삽, 오늘의 기록 하나, 오늘의 정리 하나가 내일의 구조가 된다고 봅니다.
지금 당장은 아무 변화가 없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굴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랍니다. 어느 순간, 아주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연결됩니다. 그 연결이 선택권을 만들고, 선택권이 삶의 방향을 바꿉니다.
저는 오늘도 굴을 팝니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고, 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멈추지 않으려고 합니다. 시스템은 멈추지 않는 사람에게만 언젠가 모습을 드러내니까요.
글을 마치면서 저에게 질문을 해봅니다.
- 내가 이미 반복해 온 경험 중, 구조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 그 경험을 남기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행동은 무엇일까?
"굴은 한 번에 뚫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파기 시작한 사람만이, 언젠가 출구를 만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