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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관 편집장 May 13. 2022

비밀번호

자동차의 발전 속도에 따라 일반 차 키에서 스마트 키로 바뀐 지가 10년이 훌쩍 지났다. 일반 열쇠 모양의 키로 자동차 문을 여닫고 시동을 걸곤 하다가 스마트 키로 바뀌니 아주 편리했다. 문제는 보관 상태였다. 이전의 자동차 열쇠는 남성들의 경우 보통 허리 춤에 열쇠 고리를 연결해두면 잊어버릴 염려가 없었다. 그런데 스마트 키는 둥글면서도 타원 모양의 것으로 손에 쥐기는 좋았는데 자칫 잘못하면 하수구 같은 곳에 빠져버리거나 떨어뜨릴 경우 회수하기가 쉽지 않았다. 여름날 무더위에 주전 바닷가에서 맛난 식사를 한 일행들과 함께 필자는 낚시를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그럴 때면 누가 먼저 물고기를 잡을까 내기를 하지 않아도 내심 '내가 더 빨리 더 큰 물고기를 잡아야지' 하는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필자도 낚시에 정신이 팔려 언제 물고기를 잡나 노심초사 기대만발이었는데 '아뿔사' 주머니 속에 둔 스마트 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청바지 오른쪽 주머니 쏜살 같이 빠져나와 물에 품덩 잠수해버렸다.


'어이쿠야'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꼬 하면서 걱정했는데 그래도 물길이 깊지 않아 얼굴을 수면에 대고 물 속을 쳐다보니 저 아래 바닥에 새까만 열쇠가 보였다. 그래서 소매를 걷어 올리고 바지 춤을 걷고 조바심을 냈다. 눈에는 보여도 내 키 높이만 한 곳에 있고 필자는 수영도 못하는 터에 또 전자 기능이 탑재됐기에 물에 잠기면 고장 나버렸을까 하다가 할 수 없이 안전을 위해 포기하게 됐다. 그래서 일행 중에서 청년 하나가 예비 키를 가져오려고 시내의 사무실까지 자기 차로 달려갔다. 사무실 앞에서 비밀번호를 차례대로 불러주고 별표를 누르라고 시켰더니 겨우 문을 열고 들어가서 또 책상 몇 번째 서랍 어디에 있다고 하니 찾아서 가지고 왔다. 그 후 나중에 예비 키를 하나 더 만들 때도 전속 서비스 센터의 까다로운 등록 절차를 거치고 10 여 만원의 비용을 따로 또 치러야 했다. 그 일은 필자에게 열쇠의 소중함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컴퓨터가 나오고 개인 PC를 사용하다가 노트북을 거쳐 이제는 스마트폰이 개인 컴퓨터 못지 않은 기능을 발휘한다. 기술은 날마다 진보하며 우리에게 편리한 기능을 제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신기술은 또 다른 제약을 가하는데 바로 보안 성능에 관한 것이다. 나 혼자 잃어버린 열쇠야 혼자 개인적으로 열쇠를 찾으면 문제를 풀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복잡다단한 사회 구조상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 있어 서로 간에 잘 소통하지 않으면 자칫 미로 속에 길을 헤매듯 혼란한 상황과 마주치게 된다. 가령 해커들이 은행에 침투해 보안 기능을 무력화한다면 이는 은행 측의 보안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나아가 고객으로 등록한 개개인의 신상 정보는 탈탈 털리고 만다. 서로 편리하기 위해 보안 기능에서 잠금 장치를 할 때 비밀번호는 필수적이다.

돈이 오가는 금융 계통에서 비밀번호는 아주 중요하며 세금을 정산하는 국세청의 비밀번호 같은 경우 허술한 비밀번호는 허용해주질 않는다. 필자는 아주 오래 전 대출을 위해 여러 곳을 수소문하다가 한 업체를 통해 대출을 진행했다. 10 여 년 전이라 보이스피싱 같은 범죄를 잘 모를 때 필자는 눈 깜작할 사이에 보이스피싱을 당했다. 그나마 큰 금액이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안도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요즘 용어로 대환 대출을 미끼로 사기를 치는 것이었는데 "더 많은 금액을 대출하기 위해서 그러니 우리가 말하는 금액 얼마를 계좌로 붙이라"는 것이었다. 이제 보이스피싱에 대한 보도는 하도 많아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만큼 됐지만 문제는 보이스피싱의 끊임 없는 진화에 있다. 요즘에는 사기를 치는 방법이 교묘해서 검찰청이나 은행을 사칭하면서 보안 문제가 생겼으니 시키는 대로 따라하라 하면서 가짜 앱을 깔게 한다. 그 앱을 스마트폰에 깔기만 하면 보이스피싱 업체에서 나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는 물론 주소록과 비밀번호까지 탈탈 털어가게 된다. 그래서 이제는 지켜야 할 비밀번호도 더 많아졌다.



근대에 들어서며 과학 문명의 발달과 기술의 현대화는 인류에게 편리함을 증진 시킨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화석 연료와 편리한 문명의 가속화로 지구온난화를 불러왔다. 기온이 올라 빙하가 녹아 내리고, 작물의 재배지가 변경되며, 생태계의 급속한 변화로 동식물의 생태 환경이 열악해지고 전염병이 창궐해졌다. 근래 전염병은 종 간의 전파를 넘어 다른 동물에서 사람에게 전파되니 질병의 위기인 것이다. 과거 비문명적인 것은 낙후된 것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이제는 자연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삶의 질을 높이는 척도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이카 붐에서 이제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요 올레길 탐방하는 걷기 운동이 유행하다가 요즘 트렌드는 맨발로 황토길 걷는 체험이 큰 유행이 되고 있다.

필자의 부모들이 살아 있을 때 시골의 집성촌을 떠나온 그분들에게 울산의 옆집 사람들은 이웃 사촌이었다. 담장을 사이에 두고 옆집에서 파전을 넉넉히 요리해 전해주면 아이들에게 먹이라고 과일 몇 개라도 나누고 했었다. 대문의 보안도 허술했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가는 삶이었어도 마을의 이웃 간에 인정이 있었고, 마음 만은 넉넉했다. 그 이웃사촌들은 아파트 문화가 형성되고 거의 모두 자신들의 자리를 떠나갔다.


https://youtu.be/p3eISOvpXlo


새 정부가 출범하며 취임 연설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를 강조했다. 서로 간의 자유를 위해서 반지성주의를 넘어서며 자유민주주의로 평화를 이룩하자고 말했다. 북한 비핵화를 전제로 대대적 경제 지원도 약속했다. 비밀번호가 없어진 청와대는 국민의 품 속으로 돌아왔다. 구두가 닳도록 일하고 싶다는 새 정부가 아무쪼록 부국강병과 태평성대의 세월을 선사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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