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 성령으로 잉태돼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은 영이시라 몸이 없다. 몸이 있을 필요도 없는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이 아가페인데 그 아가페의 현현(顯現)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육신을 입은 구세주로 드러났다. 얼마나 극진한 사랑이었기에 그분은 사람이 되었던가. 이 비밀을 알아가는 것이 신앙의 자세이며 참 신앙은 그 분의 헌신 때문에 자발적인 기쁨을 표출한다. 스데반처럼 기뻐서 봉사하며, 바울처럼 감사해서 헌신하며, 베드로처럼 주님의 일이라 발 벗고 나선다.
성전에서 거룩한 척 기도했던 바리새인처럼 위선을 떤다는 것은 신앙의 교만이자 잘못된 신앙의 표본이다. 반면 성전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참회한 세리처럼 낮아진 자의 기도와 그의 진심을 하나님은 기꺼이 받으신다.
신앙의 가장 근본적이며 본질적인 자세는 ‘코람데오’ 즉 하나님 앞에 선 나의 모습이다. 교회에서 인정받기위해, 목회자와 성도들의 칭찬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를 알 때 참된 신자가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 우리처럼 사람이 되어 오셨고, 사람으로 호흡하며 사람으로 삶의 현장에서 사람들과 부대꼈기에 그 분은 위대하다. 원래도 그 분은 위대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거룩한 분이셨지만 인생으로 오셔서 나사렛 예수로 불리셨기에 위대하다.
묵묵히 겸손과 순종의 본을 보이시며 종국에는 십자가에 희생제물이 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더더욱 위대하다. 그 바꿀 수 없는 유일무이한 진실된 사랑의 의미를 아는 자는 그 분의 음성에 순종하지 않을 수 없고, 아까워 못 드릴 인생의 소유물이 없다. 소제처럼 순전한 것이 예수님의 일생이었고, 번제처럼 뜨거운 열정이 예수님의 삶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십자가에서 자신의 심장이 찢어지는 희생을 감수할 만큼 예수님은 우리를 아끼신다. 에바다농아교회 변애경 사모는 성경을 읽으며 잠잠히 묵상하며 이런 예수 그리스도를 섬세한 터치로 묘사했다.
박정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