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게 섬세함을 동반한 표현과 사유

나만의 장점 시 만들기 2

by 운아당

지독하게 섬세함을 동반한 표현과 사유로 시를 쓴다는 것은 결국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이 느끼고, 더 오래 바라보고, 더 쉽게 단정하지 않는 일입니다.

단순히 표현을 화려하게 만드는 기술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작은 감정 하나를 함부로 소비하지 않고, 사소한 장면 하나도 끝까지 따라가 보는 태도입니다.

시는 대개 큰 사건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주 작은 이상함에서 시작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웃고 있는데 눈이 젖어 있는 사람, 다정한 말인데 어딘가 차가운 목소리, 떠난 사람보다 남겨진 컵 하나가 더 크게 보이는 저녁, 괜찮다고 말한 뒤 너무 빨리 돌아서는 어깨.

지독하게 섬세한 시인은 이런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장면을 설명하지 않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존재의 떨림까지 듣습니다.

예를 들어 평범한 시선은 이렇게 씁니다.

“그는 슬퍼 보였다.”

하지만 지독하게 섬세한 시선은 슬픔이라는 이름을 바로 붙이지 않습니다.

“웃는 동안에도 그의 손은 컵 가장자리만 오래 만지고 있었다”

이 차이가 중요합니다. 앞의 문장은 감정을 해석한 것이고, 뒤의 문장은 감정이 스며 있는 몸의 흔적을 보여준 것입니다.

좋은 시는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지나간 자국을 보여줍니다.

지독하게 섬세한 표현은 크게 세 가지 특징을 가집니다.

첫째, 추상어보다 구체어를 붙잡습니다.

외롭다, 슬프다, 불안하다, 괴롭다 이 말들은 틀리지 않지만 너무 빠릅니다. 이 단어를 쓰는 순간 독자는 자기 식으로 대충 이해해버립니다.

그래서 섬세한 시는 외로움을 이렇게 바꿉니다.

“불을 켜 놓고도 자꾸 다른 방의 인기척을 듣게 되는 밤”

불안을 이렇게 바꿉니다.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이 문고리를 몇 번이나 만지고 가는 새벽”

슬픔을 이렇게 바꿉니다.

“다 버렸는데 한 사람의 말투만 서랍 맨 뒤에 남아 있었다”

이처럼 추상어를 감각으로 바꾸는 힘이 섬세한 표현입니다.


둘째, 감정보다 결을 봅니다.

같은 슬픔이어도 다 같은 슬픔이 아닙니다.

어떤 슬픔은 울음으로 오고 어떤 슬픔은 무표정으로 옵니다. 어떤 슬픔은 말이 많아지고 어떤 슬픔은 물건을 자꾸 제자리에 놓게 만듭니다.

지독하게 섬세한 시는 감정을 대강 묶지 않습니다. 그 감정이 어떤 결, 어떤 속도, 어떤 온도로 오는지를 봅니다.

예를 들어 “그리움”을 쓰고 싶다면 그냥 그립다고 하지 말고 그리움이 몸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봐야 합니다.

자꾸 같은 골목을 돌아보게 하는가, 버린 번호를 외우고 있는가, 없어진 사람보다 남아 있는 습관이 더 아픈가,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지는 것이 아니라 더 선명해지는가.

이 질문을 따라가면 그리움이라는 한 단어가 당신만의 결을 갖게 됩니다.


셋째, 단정하지 않고 끝까지 머뭅니다.

섬세함은 재빨리 의미를 정리하는 능력이 아니라 의미가 생기기 전의 떨림 속에 머무는 능력입니다.

보통 사람은 금방 말합니다.

“이건 사랑이었다.” “이건 상처였다.” “이건 배신이었다.”

하지만 시인은 조금 더 오래 머뭅니다.

정말 사랑이었는지, 사랑이 되고 싶었던 외로움이었는지. 정말 상처였는지, 내 기대가 깨진 자리였는지. 정말 배신이었는지, 서로의 두려움이 다른 방향으로 도망간 것인지. 이런 식으로 하나의 감정을 고정된 이름으로 닫지 않고 그 안의 여러 층을 함께 바라보는 것, 그것이 섬세한 사유입니다.

그래서 깊은 시는 정답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열어 둡니다.

예를 들어, “나는 그를 미워한 것이 아니라 끝내 이해받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문장은 감정을 한 번 더 안쪽으로 데려갑니다. 이때 독자도 자기 마음을 다시 보게 됩니다.

지독하게 섬세한 사유는 사물 하나를 볼 때도 다르게 작동합니다.

보통 사람은 사물을 사물로 봅니다. 하지만 시인은 사물 안에 감정의 그림자를 봅니다.

예를 들면 빈 의자는 그냥 빈 의자가 아닙니다.

누군가 떠난 뒤 생긴 모양일 수 있고,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자세일 수 있고, 아무도 앉지 않았지만 오래 체온을 기억하는 자리일 수 있습니다.

창문도 그냥 창문이 아닙니다.

안과 밖이 서로 닿지 못한 채 마주 보는 얇은 벽, 비 오는 날엔 세상이 우는 표정을 대신 받아내는 얼굴, 떠나고 싶은 마음과 머물러야 하는 마음이 동시에 기대는 곳.

이처럼 섬세한 사유는 사물에 의미를 억지로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 속에 이미 숨어 있던 인간의 상태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시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감정의 이름을 바로 붙이지 않는 것입니다.

슬프다 싶으면 곧바로 슬프다고 쓰지 말고 질문해야 합니다.

이 슬픔은 어디에 먼저 나타났는가. 눈에 왔는가. 손끝에 왔는가. 목소리에 왔는가. 식욕이 없어지는 쪽인가. 괜히 청소를 하게 되는 쪽인가. 누군가를 붙잡고 싶은가. 아니면 혼자 있고 싶은가.

이런 질문들이 감정을 한 문장에서 한 장면으로 바꾸어 줍니다.


두 번째는 자신의 반응을 의심 없이 받아 적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서운했다면 바로 “서운했다”에서 멈추지 말고 더 들어가야 합니다.

나는 왜 서운했는가. 그 사람이 나를 무시해서인가. 아니면 내가 기대를 숨긴 채 기다렸기 때문인가. 나는 정말 그 사람에게 화가 난 것인가. 아니면 내 안의 외로움이 먼저 깨어난 것인가.

좋은 시는 사건보다 사건이 내 안에서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봅니다. 그래서 시는 사실 기록이 아니라 의식의 진술에 가깝습니다.


세 번째는 말을 줄이는 대신 감각을 늘리는 것입니다.

“나는 몹시 상처받았다”보다 “그 말 이후 숟가락이 그릇에 닿는 소리조차 크게 들렸다”가 더 강합니다.

설명을 줄이고 몸, 사물, 소리, 빛, 거리, 온도, 침묵을 늘려야 섬세한 시가 살아납니다.

지독하게 섬세한 표현은 결국 이런 데서 나옵니다.

남들이 지나간 표정을 오래 보는 사람, 아무렇지 않은 말의 균열을 듣는 사람, 사라진 것보다 남아 있는 흔적을 더 아파하는 사람, 감정을 크게 말하지 못하고 작은 습관으로 앓는 사람, 자기 마음조차 쉽게 정의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이 쓰는 시는 목소리가 크지 않아도 깊습니다. 왜냐하면 독자는 큰 주장보다 자기 안에서도 이름 붙이지 못했던 감정을 정확히 건드려 주는 문장 앞에서 더 오래 멈추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지독하게 섬세함을 동반한 표현과 사유란 감정을 크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지나가는 길을 끝까지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리고 시란 그 길 위에 남은 작은 발자국들을 조용히 보여주는 언어입니다.

예를 들어 마지막으로 비교해 보면 이렇습니다.

평범한 문장 “나는 외로웠다”

조금 더 섬세한 문장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으면서도 자꾸 컵 속 얼음 녹는 소리만 들렸다”

사유까지 들어간 문장 “외로움은 혼자인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내 침묵의 뜻을 묻지 않는 자리에서 더 선명해진다는 걸 그날 나는 알았다”

이 마지막 문장쯤 가면 표현만 섬세한 것이 아니라 그 감정에 대한 사유까지 깊어집니다.


문보영의 「막판이 된다는 것」은 시간의 끝자락에서 인간 마음이 얼마나 미세하게 흔들리는지를 붙잡는 시입니다. 이 시의 섬세함은 막판을 단순히 “끝”이라고 말하지 않고, 끝이 가까워질수록 더 선명해지는 감정의 결을 보여준다는 데 있습니다. 다 끝나간다는 사실 앞에서 생기는 초조함, 붙들고 싶은 마음, 이상하게 더 또렷해지는 감각을 아주 조용한 시선으로 드러냅니다. 즉, 이 시는 막판이라는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끝을 앞둔 존재의 떨림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지독하게 섬세합니다.


김기택의 「껌」은 아주 하찮고 흔한 사물 하나를 끝까지 따라가며, 그 사물 속에 인간의 집요함과 잔여감각을 발견하는 시입니다. 껌은 원래 별것 아닌 물건이지만, 김기택은 그것의 질감, 달라붙음, 늘어남, 버려진 뒤의 모습까지 집요하게 들여다봅니다. 이때 섬세함은 사물을 예쁘게 꾸미는 데 있지 않고, 사물의 성질을 끝까지 밀고 가서 인간 존재의 어떤 모습과 닿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즉, 「껌」은 작은 사물 하나를 통해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감각과 존재의 비밀을 드러내기에 지독하게 섬세한 시의 좋은 예가 됩니다.


두 시 모두 공통적으로, 큰 말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는 시간의 끝에 선 마음을, 다른 하나는 사물에 스민 존재의 성질을 끝까지 놓치지 않습니다. 바로 그 점에서 “지독하게 섬세한 표현과 사유”의 좋은 본보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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