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 피아노 소나타의 출발점 – 슈베르트

음악이 머문 곳 #185

by 생각의 정원

음악이 머문 곳 #185


낭만주의 피아노 소나타의 출발점 –


슈베르트 (D.537 · 568 · 575)



낭만주의 음악은
언제나 격정적인 감정과 자유로운 형식으로만 기억되곤 한다.
그러나 그 시작은 의외로 조용했고,
많은 경우 확신보다는 질문에 가까운 소리였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듣고 있으면
작곡가가 이미 낭만주의의 문턱에 서 있으면서도,
아직 그 문을 완전히 열지는 않은 순간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고전주의의 형식을 벗어나려는 움직임과
그 안에 남아 있는 균형과 절제가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나란히 존재한다.

이번 글에서는
낭만주의 피아노 소나타 시리즈의 첫 편으로,
슈베르트의 세 작품
D.537, D.568, D.575를 중심에 놓고
그 조심스러운 출발을 따라가 본다.


생각이 음악이 되기 전의 소리 – D.537


a단조 소나타 D.537은
젊은 슈베르트의 불안과 망설임이 그대로 스며 있는 작품이다.
형식은 소나타이지만,
그 안의 음악은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선율은 자주 방향을 바꾸고,
긴장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이 소나타에서 슈베르트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지만,
아직 그 말을 끝까지 밀어붙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음악은
완성보다 사유의 흔적에 더 가깝게 들린다.


균형 속에 머무는 서정 – D.568


E♭장조의 소나타 D.568에서는
음악의 표정이 한결 밝아진다.
형식은 안정되고, 선율은 부드럽게 흐른다.

하지만 이 작품 역시
단순히 고전주의로 되돌아간 음악은 아니다.
긴장 대신 여백이,
극적인 대비 대신 호흡이 느껴진다.

슈베르트는 이 소나타에서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머무는 시간을 허락한다.
그 점에서 이 음악은
낭만주의가 반드시 격렬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형식 안으로 모여드는 힘 – D.575


B장조 소나타 D.575에 이르면
슈베르트의 음악은 분명히 단단해진다.
리듬과 구조가 또렷해지고,
악장 전체를 관통하는 추진력이 생긴다.

특히 마지막 악장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는
이전 작품들과 확연히 다르다.
여기서 슈베르트는
생각하는 작곡가를 넘어,
그 생각을 형식 속에 담아낼 줄 아는 작곡가의 얼굴을 보여준다.


낭만주의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번에 함께 들은 세 곡은
낭만주의 피아노 소나타의 완성형이라기보다는,
그 출발점에 가까운 음악들이다.

그러나 바로 그 미완의 감각 때문에
이 음악들은 오래 남는다.
결론보다 과정이,
확신보다 질문이 우리 귀에 머문다.

낭만주의 음악은
언제나 크게 말하지 않는다.
어떤 순간에는 이렇게,
피아노 앞에서 혼자 생각하는 소리로
조용히 우리 곁에 머문다.


트랙리스트


Franz Schubert
Piano Sonata No. 4 in A minor, D.537


Franz Schubert
Piano Sonata No. 7 in E-flat major, D.568


Franz Schubert
Piano Sonata No. 9 in B major, D.575
(Piano: Paul Pitman / Public Domain)



감상 링크 : [https://youtu.be/Rk89Hx5I0-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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