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머문 곳 #192
어떤 음악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어떤 음악은 끝에서 비로소 넓어진다.
슈베르트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D.960은
후자에 가깝다.
종결이 아니라 확장,
격정이 아니라 고요.
1828년, 생의 마지막 해에 완성된 이 작품은
놀라울 만큼 차분하다.
조급함도, 과장도 없다.
대신 넓은 시간과 깊은 숨결이 있다.
Molto moderato.
첫 음이 울리면, 이미 시간의 속도가 달라진다.
낮은 음에서 반복되는 미세한 떨림 위로
선율이 길게 뻗어 나간다.
그 선율은 서두르지 않는다.
머물며, 생각하며, 스스로를 확장한다.
형식은 고전적이지만
공간은 완전히 낭만적이다.
Andante sostenuto는
마치 고요한 밤을 걷는 듯하다.
짙은 어둠 속에서도
음은 사라지지 않고 오래 남는다.
정적이 음악을 지배하지만
그 안에는 깊은 긴장이 숨어 있다.
이 악장은
슈베르트가 남긴 가장 내밀한 고백처럼 들린다.
Scherzo는
잠시 바람이 스치는 순간처럼 지나간다.
“con delicatezza”라는 지시어처럼
섬세하고 투명하다.
이 짧은 숨 고르기 덕분에
마지막 장은 더욱 단단해진다.
Allegro ma non troppo.
빠르지만 과하지 않다.
이 소나타는
폭발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조용히, 그러나 확신에 찬 걸음으로
자신의 세계를 정리한다.
D.960은
끝이 아니라 여백이다.
그 여백 속에서 우리는
슈베르트의 마지막 시간을 듣는다.
00:00 슈베르트 – 피아노 소나타 제21번 내림나장조 D.960 I. Molto moderato
19:54 슈베르트 – 피아노 소나타 제21번 내림나장조 D.960 II. Andante sostenuto
30:41 슈베르트 – 피아노 소나타 제21번 내림나장조 D.960 III. Scherzo: Allegro vivace con delicatezza
34:49 슈베르트 – 피아노 소나타 제21번 내림나장조 D.960 IV. Allegro ma non troppo
연주: Paul Pitman
음원: Musopen (Public Domain)
감상 링크 : [https://youtu.be/WQiK5X2Q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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