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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Jun 04. 2019

봉준호는 부끄럽고 배리나가 자랑스럽습니다

*이 글에는 영화의 전개와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봉준호가 난리다. 황금종려상 수상도 모자라 8분간 기립 박수가 이어졌다더니 관련 기사가 연일 쏟아진다. BBC는 <기생충>을 보면 '비명을 지르고, 손뼉을 치고, 손톱을 물어뜯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국내에서는 봉준호 자체가 '장르'라는 평도 나온다. 대서특필이다. 세계적인 촬영감독도 봉준호를 "군주로 치면 성군, 장수로 치면 덕장이며 지장이다"라고 말했다.


뿌듯했다. 황금종려상보다 주 52시간을 지켰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헬조선'이 만연한 사회에 봉준호의 업적이 가져올 변화를 기대했다. 이코노미스트 특파원 다니엘 튜더는 한국을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라고 정의했다.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정착을 이루느라 한국이 희생해야만 했던 가치를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성과에 슬픔이 들러붙지 않는 사회가 가까워지는 듯했다.


봉준호가 과거 씨네21에서 했던 인터뷰가 재조명됐다. 그는 "좁고 긴 이미지를 무척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마더>의 골목과 <살인의 추억>의 능수로, <괴물>의 하수구가 너무 좋고, <설국열차>를 찍으며 성적 흥분에 미칠 것 같았다"며 "터널은 질이고 기차는 남근이다"를 흥분의 이유로 들었다. 이어서 "촬영 현장에서는 섹스가 막혀있으니 식욕으로 풀어야 한다"며 "예민할 때는 죄 많고 힘없는 사람 또는 고양이라도 죄책감 없이 패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마더>의 촬영 중 원빈에게 김혜자의 가슴을 만지라고 시켰다. 김혜자의 동의와 사전 합의는 없었다.


국격을 드높인 '우리' 봉준호에게 8년 전의 인터뷰는 흠이 되지 않는 듯하다. 영화를 '너무' 잘 만들었나 보다. 면죄와 관용이 참 쉽게 이루어진다. 표현의 자유가 불쾌함을 불러일으키라는 뜻은 아니지만 예술계에서는 흔히 허용된다. 검정치마가 그랬고 이외수도 그랬고 강동수도 그랬다. 새로운 대한민국, 관용과 혁신, 포용 국가의 희망찬 미래는 바로 예술계에 있었다.


봉준호는 영화를 찍을 때 '못 한 포대 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못이 53개 필요하다'라고 말한다고 한다.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라는 별명의 까닭이다. 그가 공들여 포착했을 순간이, 영화를 짓는 데 필요한 나사의 개수까지 계획하는 감독이 지닌 인식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가 중시하는 세계관이 굴절된 성적 욕망 안에 갇혀있는 건 몹시 비탄한 일이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기뻐하는지가 그 사람의 정신세계를 가장 투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래도 8년 전이니 갱생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니었다. <기생충>도 똑같았다. 그의 영화에서 여성의 역할이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없음은 뻔했다. 영화는 가난을 축으로 남성과 여성을 대등하게 매기는 듯 보이지만 여성을 가난보다 더 아래로 소외시켰다. 영화를 이끄는 인물은 남성인 기우(최우식 분)가 되지만 여성인 기정(박소담 분)은 영화의 절정에서 죽는다. 결국 아버지와 아들의 유대가 영화의 결론으로 묘사된다. 또한 영화에서 박사장(이선균 분)은 아내인 연교(조여정 분)를  "청소도 못 하고 요리도 못한다"고 평가한다. 아내의 역할을 가사노동으로 한정 짓는 표현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지점이 '되어야 하는 세상'이 아니라 '된 세상'이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비판의식은 담겨있어야 했다.


봉준호 감독은 포스터의 다리에 어떤 뜻이 담겨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모르면 안 된다. 무지가 곧 가해이기 때문이다. 여성혐오는 대다수 남성의 의식과 무의식에 침투하여 작동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약자가 서로의 파이를 빼앗는 행태를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는 것으로 비유하는데 기정은 그 방법으로 자신의 팬티를 박사장의 차에 벗어둔다. 운전기사가 고용인의 차에서 성관계를 맺었다는 오해를 일으켜 기존의 기사를 쫓아내기 위해서다. 팬티를 벗는 장면의 묘사는 불필요할 지경으로 자세하다. 한편 기우가 미성년자인 과외 제자와 연애하는 장면에서는 비판이 전혀 없고 '그럴 수 있다'는 의도가 묻어 나온다. 박사장과 연교의 애무 장면 또한 과장되어 적나라하게 나온다. 영화의 불필요한 장면은 모두 남성 감독이 지닌 굴절된 성적 욕망으로 관철된다. 봉준호 감독이 여전히 여성을 성적 흥분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다는 뜻이다.


봉준호가 여전히 모르고 있는 문제의 답은 간단하다.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윤리관을 되새겨 보자. 대상이 여성일 경우에만 쉽사리 위반되기에 익숙해져 있을 뿐 그릇된 문화가 맞다. 남성들의 성 담론에서 여성은 물화(物化)하기 십상이다. 성에 국한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일상에서는 '김치녀'와 '된장녀', '맘충'이 대표적이다. 영화계에서도, 문학에서도 예시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불법촬영범죄도 여성의 몸을 '사냥감', 혹은 '전리품'으로 여기는 데서 기인한다. 봉준호는 유해한 남성성을 또 한 번 공고히 다졌고, 봉준호'들'은 그와 함께 늙어가고, 자라고, 또 태어나고 있다. 유튜버 배리나는 이를 고발했다. 온갖 조롱과 음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치관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월드 인 이모션(World in emotion)' OECD포럼에 패널로 참석하여 "우리나라에서 몰카가 많은 이슈가 되고 있고 일반인 여성들도 몰카에 많이 노출이 되었다"며 "몰카를 본 자들은 방관하고 경찰도 잡지 않았다. 잡았다고 하다라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다"라고 말했다. 해당 발언 이후 배리나가 '국격을 깎았다'는 비판이 쇄도했다.


봉준호가 부끄럽고, 그를 면죄한 한국 남성들과 그들을 주축으로 이루어진 한국 사회가 원망스럽다. 국격을 깎은 건 배리나가 아니라 봉준호'들'이고 한국 남성들이다. 국격을 높이기 위해 발언한 배리나가 자랑스럽다. 배리나의 용기가 가져올 변화를 기대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상황은, 언론이 다뤄야 할 앞으로의 문제는, 여전히 여성혐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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