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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Jan 21. 2021

<모노노케 히메>

生きろ。(살아라.)


지브리의 모든 작품 중에서 가장 진중하고도 무게감 있는 대작.


어릴 적 봤던 영화 중 충격을 중심을 순위로 두자면 <모노노케 히메>가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시간상으로는 <모모노케 히메>가 훨씬 예전에 개봉한 작품이지만 후에 나온 기존 작품들과 다르게 적나라하게 표현된 잔인한 장면에 놀랐고, 도무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대사에 흥미를 잃고 한동안 굉장히 실의에 빠져있었다. 시간이 꽤 지나 성인 되어 다시 보았을 때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작품 내에 보이기 시작했다. 지브리의 모든 작품을 봐왔지만,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이야기한다면 이제는 <모노노케 히메>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16년의 구상 기간, 제작기간만 3년이 걸린 대작. 다른 작품들도 정말 좋아하지만 <모노노케 히메>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색감과 몽환적인 스토리가 나에게는 너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단순한 판타지로만 설명하기에는 낯설고, 현대사에도 익숙한 주제의식도 곁들여 말이다.

 



지브리의 작품 중에서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오는 영화라면 이 영화가 아닐까. 포스터에서부터 어린 소녀의 입이 피범벅으로 얼룩져있고, 영화 초반부터 팔이 잘리기도 하고, 지브리 감성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거친 대사가 나오기도 하며, 촉수가 인간의 온몸을 점령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지금에서야 이런 장면이 아무렇지 않지만 어린 시절 밝은 색의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상상하던 나에겐 꽤나 컬처쇼크였다. 잔인한 장면에 거부감이 있던 내게는 보기 어려웠다. 사실 무엇보다 거부감이 들었던 점은 어린 시절에는 꽤나 지루하게 느껴질 법한 영화였다는 점이다. 스토리가 단순한 데 비해 의미하는 바나 서사적 구조가 꽤나 복잡하고, 상징적인 소재들이 많아 호기심이 많은 나에게 이 수수께끼 같은 영화는 되려 나에게 거부감의 오기를 생기게 했던 것이었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2시간 30분 지브리 역사상 가장 긴 러닝타임 동안 손에 땀 쥐고 보는 애니메이션은 <모노노케 히메> 뿐이다. 지브리 대부분의 작품은 흑백의 역할이 명확하게 그어져 있다. 악역은 정해져 있고 주인공은 역경을 맞는다. 궂은 갈등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마침내 승리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고 '결국 잘 되었답니다!' 같은 마무리로 엔딩을 맞는다. 하나, <모노노케 히메>는 다르다. 악역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데다가 흑백의 경계조차 명확하게 그을 수 없는, 어느 편을 서서 옹호해줄 수도 없는 작품이었다. 주인공인 아시타카조차도 명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감독은 관객에게 중립의 편에 서도록 영화를 유도함으로써 메시지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다. 하야오 감독의 큰 그림이 여러 장면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난다.




작품을 본격적으로 파헤치기 앞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 중 하나는 지브리의 작품을 더욱 완성시켜주는 것이 바로 음악과 여백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작업 중에 근근이 <모노노케 히메>의 OST를 틀어두고 작업하는 걸 좋아하는데 거대한 세계관과 맞물려 웅장함을 내뿜는 음악이 다시 영화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매번 바라는 것 중 하나지만, 영화관에서 다시 한번만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역동적인 오디오가 참 매력적이다. 또한, 애니메이션의 본질을 잃지 않는 특유의 여백과 색채는 영화의 퀄리티를 한 단계 상승시켜준다. 유명한 일화 중 하나는 영화 초반부 재앙신의 촉수를 그리는데 19개월이 걸렸다는 점인데, 이토록 섬세한 표현과 노력이 있었기에 이런 대작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셀 그림을 고집하는 하야오 감독이 처음으로 컴퓨터 그래픽을 일부 사용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셀로 만들어진 그림에 대한 애착이 강하기 때문에 이 작품이 마지막 셀 작품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노노케 히메>는 유난히 상징적인 소재가 많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보았다간 내용 자체에 대한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소재 하나에도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모습은 관객으로 하여금 혼란스럽게 만든다. 가장 대표적으로 영화 초반부에 아시타카가 받은 흑단 검을 예시로 보자. 약혼녀에게 받은 흑단 검을 산에게 선물하는 아시타카. 이 장면을 두고 누군가는 바람둥이라고 하거나 배신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산에 대한 존중과 과정에 대한 보답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소재마다 각자의 배경에 맞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점은 굉장히 재미있는 요소이다. 하지만, <모노노케 히메>는 그래서 더욱 구미를 당기게 한다. 영화를 더 깊게, 심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영화를 모두 보고 난 뒤에 개인의 취향에 맞게 하나씩 해석해보거나, 다른 사람들의 글을 참조해서 자신만의 세계관으로 맞추어 나가 보길 추천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 가치관인 '인간과 자연'. 감독의 많은 작품에서 볼 수 있듯, 하야오는 자연에 관한 우직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특히, <모노노케 히메>에서 하야오의 생각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선, 인간을 단순히 악역화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개발이 필요했던 인간의 합리성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에보시라는 인물의 태도를 살펴보면 인간의 삶의 영위를 위해 '나병환자'라는 장치를 사용한다. 이를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한 극적인 정담함을 부여하는데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기 위해 불가피한 개발을 해야만 하는, 동시에 개발을 통해 생존에 대한 갈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와 동시에 그려지는 자연 또한 역할에 구애받지 않는다. 신이 불러일으킨 재앙은 인간의 종말을 불러일으킬 만큼 위험을 내비치고, '재앙신'이라는 소재를 통해 개발의 주체가 아닌 제삼자가 고난을 맞는 아이러니함도 보여준다. 영화에서 주요 역할로 등장하는 시시신도 마찬가지이다. 죽음에 맞닿은 아시타카에게는 생명을 주었지만, 멧돼지의 신 옷코토누시의 절망가 죽음에는 연연하지 않는다. 자연도 인간의 축에도 속하지 않는 역할로서 신이라 불리고 생사를 관장하지만, 정작 자신의 생은 관장하지 못한다. 이처럼, 역할의 경계를 모호하게 설정함으로써 억지로 경각심을 주려고 하지 않고, 늘 익숙하게 강조하는 패턴이 아닌 '살아있는 것'의 대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대립의 구도에서 아시타카는 중립의 역할을 자처한다. 주인공의 역에 몰입되어 영화를 보다 보면 이해와 분노를 반복하게 된다. <모노노케 히메>의 중요한 키포인트가 바로 주인공에게 있는 셈이다.




결국, 주관적인 생각을 정리하자면 단순한 이분법으로 작품을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든 자연이든 결국 살아남기 위해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고, 현실과 마찬가지로 원초적인 갈등 자체를 해결하는 방법은 없다. 때문에 극적인 화해라기보다, 이전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세상에 대한 믿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어떠한 입장을 고수하고 편에 서기보다, 개개인에 배경과 가치관에 따라 선택을 결정하기를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싶다. 단순히 영화 내를 벗어나 현실 어디에서든 적용시킬 수 있는 주제의식이다. 다른 이의 생각이 궁금해 <모노노케 히메>의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느낀 거지만 영화를 볼 때마다, 보는 이마다 제 각기의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에 자신만의 색깔로 영화를 바라보는 게 좋겠다.




<모노노케 히메>는 마냥 재미나게 볼 수 있는 영화이면서 동시에 그렇지 않은 면을 가지고 있는 영화다. 옛날 애니메이션이 갖고 있는 촌스런 색감, 단단한 개연성의 스토리, 하야오 특유의 전달력은 마법처럼 관객을 영화 속으로 끌어당긴다. 실제 하지 않는 신화적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실제로 있었을 것만 같은 묘한 매력을 풍긴다는 점에서 흥미성과 재미는 완벽하게 잡았다. 하나, 작품의 깊이를 이해하지 않으면 진득하게 영화를 보기 어렵다. 영화가 어떤 내용을 가지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도는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오묘하게 남는 그런 영화였다. 마치, <모노노케 히메>의 모티브가 '아이누족 실화'에서 왔지만 이 설화가 어떤 내용이다까지는 꼭 알아야 할 필요 없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영화 보면서 복잡하게 생각하기 싫다'라고 생각한다면 사실 재미로 이 영화를 보고 끝내도 상관은 없다. 흥미로만 보기에도 충분히 즐거운 영화이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もののけ姫> In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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