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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고 싶을 땐 가끔씩 하늘을 쳐다봐.

하늘에 있는 친구에게

by 김운 Feb 22. 2025

창문 너머 하늘을 본다. 미세먼지 없는 맑은 하늘이다. 눈이 수평으로 향하는 곳, 땅과 맞닿은 곳의 하늘은 옅은 회색빛이 감도는 파란색이다. 고개를 들어 올려 높은 하늘을 바라볼수록 하늘색은 점점 짙어지고 중천은 짙은 코발트색이다. 언제부터인가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저 멀리 한강 너머에 김포공항이 아파트 숲 위로 어렴풋이 보이고, 마침 비행기가 이륙하여 30도 각도로 하늘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비행기 고도가 높아지고 눈에서 사라져 간 뒤 비행기구름이 생기고 흩어지며 그림을 그린다. 그때 무심코 구름을 쳐다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내가 좋아했던 친구의 얼굴이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친구가 구름 속에 있었다. 가만히 생각하니 오늘이 친구가 세상을 떠난 지 2년 된 날이었다.         


3년 전 어느 날, 친구가 응급실에 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퇴근을 하고 친구들과 함께 병원으로 갔다. 검사 결과는 폐암 1기로 밝혀졌는데 정밀검사가 더 필요하다고 하였다. 황망하였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폐암이라는 어두운 현실과 1기라는 희망적인 미래를 생각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틀 후 다른 검사 결과가 나왔다. 폐암은 4기이며 이미 머리와 뼈로 전이가 되어 수술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곳 병원에서는 더 이상 치료를 할 수 없었고, 결국 암 전문병원으로 옮겨 일명 ‘표적치료’라고 하는 표적항암제를 투여하는 약물치료 방법으로 치료를 하기 시작하였다. 


뜻밖의 현실과 마주한 가족들은 슬픔과 혼란 속에서 갈팡질팡 하였다. 장기간 계속될 치료비와 가족들의 생계는 어떻게 해 나갈 것이며, 무엇보다 치료가 성공적으로 잘 될 수 있을 것인지, 가족은 물론 모두들 혼란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옆에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가족들이 안정을 되찾고 차분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은 면회를 자주 가는 일이었다. 친구는 평소처럼 평화로운 모습으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맞이하곤 하였다. 자신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그리고 몹시도 고통스러울 텐데도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친구와 나는 같은 성당을 다닌다. 주말 휴일 병문안 때면 한 시간씩 그와 함께하였고, 그는 신앙생활에 관한 소식을 듣는 것과, 성가를 들려주는 것을 좋아하였다.  


친구가 아프기 몇 년 전, 친구와 나는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근무지를 이동하게 되었다. 같은 회사가 아니었지만 우연히 거의 같은 시기에 그는 전주로, 나는 전라남도 영암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우리는 주말이면 경기도에 있는 집을 다녀가게 되었고, 일요일 오후면 내 자동차를 같이 타고 지방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친구의 숙소가 있는 전주까지 3시간 동안 마음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려운 회사생활, 종교에 관한 것들,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반복되는 가족의 문제와 노년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고민과 앞으로의 계획까지 우리의 대화는 끝이 없었다. 그와 나누었던 많은 대화와 그의 살아가는 모습은 내가 살아가는 본보기가 되어 주었다. 그는 나 보다 한 살 아래였지만 그는 나를 형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형처럼 속이 깊고 헌신적이며 배려심이 많고 온유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가 나에게 말했다. “형에게서는 포오스(force)가 느껴진다.” 나는 폭소를 터뜨렸지만 그는 계속하였다. “형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자신이 모르고 있어, 잘 보이지 않지만 그런 게 있어.” 나는 그 단어가 가지는 의미와는 정 반대의 나를 잘 알기 때문에 어이없어하였지만, 나에게 있는 장점을 발견하고 자신감을 주기 위해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나의 자아(自我)를 일으키고, 그것을 끄집어내어 세상 밖으로 나오도록 하였다. 그와의 대화는 항상 시간을 단축시킨다. 어느덧 그의 숙소에 도착하였고, 못다 한 이야기를 뒤로 한 채 도시를 빠져나와 다시 고속도로를 달린다. 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까지는 앞으로도 2시간은 더 가야 한다. 친구와 나는 2년의 지방 근무를 마치고 비슷한 시기에 다시 집이 있는 경기도로 왔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에 암 진단을 받고 1년의 투병생활 끝에 하늘나라로 같다.  


김포공항 하늘에 만들어진 비행기구름이 사라지자 불현듯 잊었던 약속을 떠올리듯 서둘러 집을 나섰다. 자동차를 타고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은 삼십 분이면 족했다. 봉안당 안으로 들어서자 그곳은 온통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있고, 낯선 얼굴들이지만 단정한 복장에 밝은 웃음을 한 많은 사람들이 내 친구와 이웃하며 지내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지만 친구는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처럼 여전히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는 말 없는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어쩌면 가식이 없는 더욱 진실한 대화가 될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의 존재는 세상의 모든 존재들로 이루어지듯이, 친구의 삶은 나의 삶을 형성하는 한 부분이 되어 나에게 존재하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채 벤치에 앉아 자판기 캔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은 아직도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파랬다. 커피를 비우고 나서도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때 하늘에서 친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내가 보고 싶을 땐 가끔씩 하늘을 쳐다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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