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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Dec 13. 2019

[촉한사영] 제갈량과 후계자들(3)

더 깊게 들여다보는 삼국지

  비의는 자(字)가 문위(文偉)입니다. 형주 강하군 맹현 사람인데, 어려서부터 고아가 되어 집안의 어른인 비백인 아래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다 비백인이 유장의 부름을 받고 익주로 들어갈 때 따라갔지요.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삼촌을 따라 형주로 갔던 제갈량과 자못 흡사하군요. 게다가 제갈량처럼 공부도 잘했는지 비의 또한 젊어서부터 나름대로 명성이 있어 허숙룡, 동윤 두 사람과 이름을 나란히 했다고 합니다. 특히 동윤과는 친한 사이였지요. 과장을 조금 섞으면 영혼의 동반자라고 할 만합니다. 


  마침 유비가 익주를 차지하자 비의는 그 밑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유비가 황제로 즉위하고 유선이 태자가 되자, 비의는 동윤/곽익 등과 함께 태자사인(太子舍人)으로 임명됩니다. 태자사인이란 태자를 곁에서 모시는 관원입니다. 비록 관위는 보잘것없으나 추후 황제가 될 사람의 눈에 들 수 있는 엄청난 장점이 있는 직책이었지요. 그래서 유력 가문 출신이나 능력이 뛰어난 젊은이들 중에서 선발했다고 합니다. 


  유선이 즉위하자 비의는 동윤과 함께 황문시랑(黃門侍郞)이 되는데 이 역시 황제를 곁에서 모시는 직위입니다. 그러니 이때까지는 딱히 중임을 맡았다기보다는 그저 유선의 측근이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비의에게는 남들과 다른 특색이 있었습니다. 그건 성격이 몹시 대범하고도 호방하며 넉살이 좋았다는 점이었지요. 


  한 가지 일화를 들어 보겠습니다. 유비 밑에서 고위직을 역임했던 허정의 아들이 요절하자 뭇 대소 신료들이 모두 장례식장으로 갔습니다. 이때 동윤은 아버지 동화에게 가서 친구 비의와 함께 조문을 가려고 하니 수레를 한 대 내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타고 갈 차가 없으니 아버지 차를 빌려달라고 요청한 겁니다. 그런데 동화는 집에 그랜저도 있고 소나타도 있는데 굳이 마티즈를 내어 주었습니다. 그걸 본 동윤은 급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비의는 아무렇지도 않은 기색으로 냉큼 차에 올라탔습니다. 


  장례식장으로 가니 아니나 다를까, 무수한 문무 관원들이 모두 으리으리한 차를 타고 와 있었습니다. 마이바흐도 있고 BMW도 있고 람보르기니도 있고 아무튼 다들 제일 좋은 차를 끌고 왔네요. 그 옆에다가 마티즈를 주차하자니 동윤은 속된 말로 무척이나 쪽팔려서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비의는 역시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태연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기사 양반에게서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동화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늘 너와 문위(文偉) 중 누가 더 뛰어난지를 가리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알겠구나. [촉서 비의전]




  한편 승상 제갈량은 국정을 맡아보면서부터 인재 발굴에 무척이나 공을 들였습니다. 그래서 이 젊은이를 내심 눈여겨보았던 모양입니다. 그가 남중을 평정하고 돌아오는 길에 여러 관원들이 모두 길가에 나와서 맞이했는데, 제갈량은 그들 중에서도 나이가 어리고 지위 또한 보잘것없는 비의를 특별히 콕 집어서 자신의 수레에 함께 타도록 합니다. 그로 인해 여러 사람들은 비의를 남다르게 보기 시작했지요. 


  수레 안에서 두 사람은 나라의 큰일을 논의했던 걸로 보입니다. 제갈량은 성도로 귀환하자마자 비의를 소신교위(昭信校尉)로 승진시켜 오나라에 사자로 보내지요. 손권이란 인물이 꽤나 눈이 높고 비위를 맞추기 어려운 사람이었던지라 동오로 사자를 보내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과거에도 정굉과 음화 등이 사자로 갔다가 무시당하고, 이후 등지가 가서야 비로소 손권을 설득하여 동맹을 성사시킬 수 있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비의를 특별히 뽑아서 승진까지 시켜 가며 보냈다는 건 그만큼 제갈량의 기대가 컸다는 뜻입니다. 


  비의가 동오에 도착하자 예상했던 대로 여러 사람들이 그를 꺾어 보려 들었습니다. 손권은 사절을 맞이하는 연회를 열면서 신하들에게 비의를 못 본 척하고 음식만 먹고 있으라고 지시하는 장난을 치기도 했고, 또 일부러 비의에게 술을 강권하며 대취하게 한 후에 어려운 질문들을 잇달아 던지기도 했습니다. 또 제갈각이나 양도 등 특별히 말솜씨가 좋은 사람들을 시켜 논쟁을 벌이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비의는 그럴 때마다 시의 적절하게 잘 대처함으로써 오히려 손권을 감탄시킵니다. 손권은 결국 그를 매우 높게 여기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하네요. 

  그대는 천하에서도 손꼽을 만큼 덕이 있는 인물이오. 필시 촉한 조정의 중요한 신하가 될 것이니 사자로 자주 오지 못할까 두려울 뿐이외다. [촉서 비의전]


  비의는 그렇게 중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옵니다. 그리고 돌아온 후에는 또다시 시중(侍中)으로 승진하지요. 정말이지 정신없을 정도로 빠른 승진 속도입니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었어요. 제갈량이 북벌을 준비하면서 또다시 비의를 참군(參軍)으로 삼았으니까요. 아마도 성도에 남아 있는 장예와 장완을 돕도록 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틈이 날 때마다 황명을 받들어 동오에 자주 사자로 왕래하였습니다. 또 출사표에서 곽유지와 비의, 동윤은 모두 선량하고 착실하며 충성스러우며 절개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도 있는 사람들이라고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230년부터 제갈량은 비의에게 군사 경험을 쌓도록 하기 시작합니다. 우선 그를 중호군(中護軍)으로 임명했는데 이는 황제 직속의 금군을 지휘하는 중요한 역할로 전임자가 바로 조운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승상사마(司馬)로 삼아 자신의 곁에 두면서 승상부의 군사 관련 업무를 총괄하도록 합니다.


  비의의 이러한 보직 경로를 보고 있자면 과거 유비와 제갈량의 사례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비는 제갈량에게 외교, 내정, 군사 등 다양한 분야의 중책을 차례로 맡김으로써 그 재능이 완전히 꽃필 수 있도록 했지요. 그리고 이제는 제갈량이 비의에게 그리하고 있는 겁니다. 유비에게서 물려받은 인재 육성법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겠지요. 그만큼 비의가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반면 제갈량 자신이 후계자로 점찍은 장완에게는 오히려 일관되게 행정 업무만 맡겼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제 소견으로는 비의의 능력치가 분야별로 80/90/80 이라면 장완은 50/100/50이었던 게 아닐는지요. 


  그런데 비의에게는 공적인 임무 말고도 또 중요한 역할이 있었습니다. 바로 위연과 양의 두 사람의 극심한 갈등을 조절하는 일이었지요.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위연과 양의는 서로를 증오한 나머지 허구한 날 치고받고 싸우면서 심지어는 칼을 빼들고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하기까지 하는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충돌이 있을 때마다 넉살 좋은 비의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서는 때로는 뜯어말리고 때로는 잔소리를 늘어놓아 가며 상황을 수습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진수는 제갈량 생전에 두 사람을 모두 잘 쓸 수 있었던 건 비의 덕분이라고 극찬할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제갈량이 세상을 떠나자 결국 일이 터지고 맙니다. 위연이 불만을 품고 양의에게 반기를 든 겁니다. 그리고는 마침 자신을 찾아온 비의를 억류하였지요. 비의로서는 엉겁결에 반란에 동참하게 된 꼴이었습니다. 그러나 영리한 비의는 기지를 발휘하여 위연을 속여 넘김으로써 탈출합니다. 이후 위연의 난이 진압되고 비의는 후군사(後軍師)가 되어 계속하여 군사 업무를 맡아보게 되었습니다. 


  한편 장완은 상서령이었던 시절부터 익주자사(益州刺史)를 겸직하고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촉한의 영토는 익주 하나이기에 익주자사란 곧 나라 전체의 행정을 관할하는 자리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업무가 과중했던지 아니면 자신의 권한이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한 것인지, 장완은 익주자사를 비의나 동윤에게 양도해 달라고 상소를 올립니다. 두 사람이 간곡히 사양하여 그 일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비의는 행정 업무로 전환하게 됩니다. 상서령이 되어 제갈량을 계승했던 장완이 대장군으로 승진하자 그 후임이 된 겁니다. 이로서 비의는 촉한의 내정을 폭넓게 관장하게 됩니다. 그의 상관은 황제 유선을 제외하고는 녹상서사(錄尙書事)인 장완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238년. 위나라에서 변란이 일어납니다. 요동의 공손연이 반란을 일으킨 겁니다. 장완은 마침내 죽은 제갈승상의 유업을 계승하여 북벌을 재개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유선은 장완에게 부(府)를 열도록 하고 한중에 주둔하면서 북벌을 준비토록 합니다. 이듬해에는 다시 장완을 대사마(大司馬)로 승진시켰고요. 장완이 예전의 제갈량처럼 북쪽으로 가서 북벌 준비에 매진하게 되자 촉한의 정무는 성도에 남은 상서령 비의에게 맡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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