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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Sep 19. 2023

쭈그렁 망탱이가 되어서 가려는 여행지 네 곳

와이키키, 리가, 팜플로나, 코토르

여행감독인 내가 쭈그렁 망탱이가 되면 어디를 여행할까? 대략 네 곳이 떠오른다. 쭈그렁 망탱이가 되어도 행복하게 여행할 수 있는 곳. 나의 노년을 위해 키핑해둔 여행지.


노년의 여행지로 어떤 곳이 적적할 지 고민해 보았다. 인생의 마지막 한 순간까지 행복을 짜낼 수 있는 곳으로 어떤 곳이 좋을지. 그 답은 현재 그곳의 노인들이 행복한 곳이 답이 아닐까 싶어서 일단 다음 네 곳을 꼽아 보았다.



1> 하와이 와이키키


여기서 여행하려면 돈이 좀 있어야 하겠지만 용기만 좀 있다면 없어도 된다. 와이키키 옆 블록의 해변 공원은 노숙 맛집이다. 세상 팔자 좋은 노숙자들이 즐비하다. 여기서 슬쩍 드러누우면 된다.


하와이를 쭈그렁 망탱이 여행지로 꼽은 이유는 하와이 할배/할매 들의 액티비티 내공 때문이다. 하와이에서 마주친 반바지 할배와 비키니 할매들의 구릿빛 쭈그렁 망탱이가 말하는 것은 선명했다. ‘아가, 난 하루이틀 놀아본 쭈그렁 망탱이가 아니란다’


다른 여행지의 할배/할매들과 하와이 할배/할매들은 달랐다. 그들은 자녀의 여행을 따라온 별책부록도, 크루즈의 친절에 기댄 휠체어 여행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쭈그렁 망탱이가 이를 수 있는 어떤 경지를 보여주었다.  여하튼 노년의 여행지로 찜!



2> 라트비아 리가


리가는 매년 여름 ‘휴양 도시’로 삼기로 마음먹은 곳이다. 22~25도 정도의 온도에 적당히 산들바람이 불어주는 리가의 여름 공기는 일품이다. 할 수만 있다면 한 해가 다르게 동남아 날씨가 되어가고 있는 후덥찌근한 서울에 수입하고 싶다.


나는 보았다. 똥배 할매를. 리가의 공기를 즐기는 최고의 향유자들은 똥배 할매들이었다. 처음엔 맹꽁이마냥 부풀어 오른 배를 보고 할배들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죄다 할매들이었다. 할배들은 리가 강에서 병든 붕어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리가의 강가엔 어디를 가나 똥배 할매들이 드러누워 있었다. 저기다, 내가 똥배를 뉘어야 할 곳은, 노년의 쭈그렁 망탱이가 된 내 몸을 뉘울 자리가 확실했다. 그런 생각으로 누울 자리를 두루 봐두고 왔다.



3> 스페인 팜플로나


팜플로나는 투우사의 도시다. 투우사를 죽이는 것은 소가 아니라 관객의 박수소리라는 말이 있다. 그렇게 가오에 살고 가오에 죽는 투우사들이 늙으면 어떻게 될까?


나는 보았으므로 안다. 팜플로나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노커플이 즐비한 곳이다. 그들은 꼭 손을 잡고 다닌다. 잘 차려입고. 팜플로나의 데이트족은 팔 할이 노년이다. 쭈그렁 망탱이들의 사랑이 넘치는 곳이다.


바스크 지방의 해산물 요리도 팜플로나로 이끈다. ‘맛있게 매운맛’처럼 ‘맛있게 짠맛’도 있다는 것을 바스크 지방의 해산물 요리가 깨우쳐 주었다. 외발 집게 새우로 만든 달콤한 감바스, 자주색 가리비의 쫀득한 식감 그리고 ‘맛있게 짠맛’을 보여주는 조개수프를 먹으며 맛있게 늙고 싶다.



4> 몬테네그로 코토르


코토르는 이번에 추가한 도시다. 일단 발칸에서 한 달 살기를 한다면 무조건 코토르에서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여행지가 가져야 할 자연경관 & 인문 유적 & 온화한 기후 & 풍부한 식자재를 모두 갖춘 곳이다.


리아시스식 해안 가장 안쪽에 위치한 코토르의 바다는 평온하다. 우리말로 하면 ‘장판’이다. 장판 중에서도 맑고 깨끗한 옥장판이다. 그 옥장판 위에 바둑알처럼 쭈그렁 망탱이들이 둥둥 떠다닌다.


코토르 바다에서 쭈그렁 망탱이들은 천차만별의 방식으로 옥장판 바다를 누린다. 수영으로, 낚시로, 낮잠으로, 혹은 약티비티로. 집 앞마당이 바다니 의자만 펴면 리조트가 부럽지 않다.


한참 개발되고 있는 이웃 부드바가 젊음의 도시라면 코토르는 늙음의 도시다. 무엇이든 나이들수록 향수를 더해간다.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다’라며 늙음의 여유를 만끽하려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곳.



쓰고 보니 네 곳 중 세 곳이 크루즈 기항지다. 가장 체력 절약하는 여행인 크루즈를 하면서 이곳에 지겹지 않을 만큼 머물다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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