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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점이 많은 여행지를 가야 할 이유

단점이 많음에도 갈만한 여행지들

by 고재열 여행감독


여행지의 장점을 얘기하는 사람은 많아도 단점을 얘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여행이야기는 자랑을 위해 하는 경우가 많고 여행을 업으로 하려는 사람이나 여행을 자랑하는 사람이 주로 여행의 화자이기 때문이다.


‘어른의 여행, 트래블러스랩’의 멤버들이 여행지에 대해 물어오면 되도록 장점과 함께 단점도 얘기해 주려고 노력한다(일부러 노력해야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장점만 늘어놓게 된다). 세상에 갈 곳은 많고, 가서 노력하는 것보다 가기 전에 노력하는 것이 나으니.


"00쌤은 몽골 가면 죽어요~"라고 몽골 여행을 신청한 멤버를 놀렸던 적이 있다. 도심투어를 할 때도 반환점에서 여지없이 '저는 택시 타고 돌아갈게요' 하시던 분이라, 택시의 축복도 없는 몽골은 사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지 말라면 오기로 더 하기 마련인 게 강호의 법칙. 그 멤버분은 기어이 몽골에 가셨다. 현지에서 올라온 사진을 보니 일행들 가운데 다소곳이 행복한 표정을 하고 앉아 있었다. 예방주사를 세게 맞고 각오를 하고 간 덕분인지. 돌아와서도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고 했다.


반면 '몽골쯤이야'라고 생각하고 친구 따라 강남 온 제비들은 심하게 컴플레인을 한 적이 있다. '왜 이렇게 하루 종일 이동만 하느냐'라고. 해명은 그분들을 달고 온 '친구 제비'에게 양보했다. 몽골의 불편함은 이미 충분히 고지했고, 없는 고속도로를 달릴 수도 없으니. 반면 몽골을 즐기러 온 사람은 같은 상황에 대해 ‘이러려고 몽골 온 거잖아요’라고 받아들였다.


여행지의 불편은 가서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구소련 지역 중 지방은 숙식이 불편한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친절하지도 않고, 심지어 정도 없다. 카자흐스탄 같은 곳은 알마티와 같은 대도시는 불편 없이 지낼 수 있는데 외곽으로 나가면 바로 인심이 시베리아다.


카자흐스탄 골든링코스를 돌 때 오지 숙소 중에 2인1실인데 고집스럽게 수건을 한 장만 주는 숙소가 있었다. 그래서 일행에게 수건은 서열정리용이라고 농담을 했다. 둘이 당겨서 더 힘 센 사람이 먼더 사용하고 끌려간 사람은 나중에 사용하라고. 음식도 별로였는데, 양까지 적게 주고. 이후 카자흐스탄에서 알마티 외곽으로 나갈 때는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다.


카자흐스탄 현지에서 여행을 진행하시는 선배는 이런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셰프를 데리고 여행하는 고육지책을 쓰시기도 했다. 암튼 구소련 지역에선 함부로 오지에 사람들을 데리고 가면 안 된다는 신념이 점점 굳어졌다. 코카서스 지역의 경우 여행자의 소비력이 숙소 등 수준을 끌어올렸는데 카자흐스탄은 아직 그렇지 못했다.



혼자 여행한다면 그 정도 불편은 전혀 장벽이 되지 않는다. 여행을 기획할 때 고려할 요소도 되지 못한다. 하지만 단체여행 기획자는 시인이 아니라 시조시인이다. 3장 6구 45자 이내라는 규격 안에서 여행을 기획해야 한다. 그 규격의 핵심은 바로 숙소다. 여행의 컴플레인은 대부분 숙소에서 온다.


그렇다고 불편만 피한다고 답이 되는 건 아니다. 편하지만 무의미한 숙소도 여행에서 피해야 할 일이다. 유럽 도시의 완성도는 구도심의 완성도인 경우가 많다. 보존 상태나 도시재생 수준에서 구도심의 완성도가 떨어지면 도시가 별 볼 일 없어 보이게 된다. 이번에 갔던 자그레브(크로아티아 수도)가 그랬다. 반면 류블랴나(슬로베니아 수도)는 구도심이 작지만 완성도가 있다. 항공편 때문에 자그레브를 시작 숙소로 잡고 류블랴나는 들르기만 했는데 내년에는 아드리아해 소도시기행을 자그레브가 아닌 류블랴나에서 시작하기로.


늦가을에서 초봄까지, 유럽의 긴 밤도 단점이다. 유럽은 우리보다 위도가 훨씬 높다. 북유럽/동유럽에서는 4시면 컴컴해진다. 관광할 수 있는 절대 시간이 짧다. 일정을 구성할 때 이를 감안해야 한다. 차라리 크리스마스마켓이 시작된 뒤에 가는 것이 낫다. 도시가 화려한 밤화장을 할 때를 기다려서. 동유럽/북유럽은 우리보다 일교차가 적어 밤에 온도가 확 떨어지지 않아 활동하기 괜찮다.


자연재해에 대한 대응체계도 단점이 된다. 일본이나 노르웨이와 같은 곳은 눈이 아무리 많이 와도 어느 정도까지는 대응체계가 갖춰져 있어 시스템이 작동한다. 하지만 히말라야에서는 폭설이 오면 그대로 고립이다. 눈은 대개 3500m 이상인 곳에 주로 오니 고지대에서 고립되게 되는데 할 수 있는 게 없다. 눈사태 위험을 피하는 것 정도. 히말라야 고산마을에 고립되어 고생을 한 적이 있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여행지의 매력에 취한 멤버들이 여행지의 단점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기도 한다. 육식을 안 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잠을 못 자고 꼭 씻어야 하는 분이 몽골에 온 적이 있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여행 일주일을 마치고 귀국할 때 이분이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 몽골 너무 재밌다’ 장점이 단점을 압도한 것이다.


단점이 많은 여행지는 여행기획자와 참가자 모두에게 의무가 따른다. 기획자에게는 단점 고지의 의무가. 참가자에게는 단점 극복의 의지가. 사실 아무리 단점이 많은 여행지라도 여행지는 여행지다. 건질 게 있다.


여행지의 단점은 현지에서 보완할 수 있는 게 아닌 경우가 많다.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 문제다. 맞춰주려는 노력은 의미 없고 맞는 사람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장점만 찾아다니려면 그냥 집에 있는 게 낫다. 단점을 감당하면서 감동과 만족을 추구하는 대차대조표를 그려야 하는데, 늘 쉽지 않은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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