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커피를 마시며 흥미로운 이야기가 기억이 났다. 정확히는 말미잘이 뇌를 먹는다는 이야기였다. 어디서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내 머릿속에 떠다니고 있었다. 마치 잃어버린 양말처럼.
말미잘은 어릴 때는 헤엄쳐 다닌다. 마치 작은 우주선처럼 바다를 유영하며 자신만의 정착지를 찾아다닌다.
그러다 마침내 '여기다' 싶은 곳을 찾으면 바위에 몸을 고정시킨다. 그리고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자신의 뇌를 먹어치워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다. 더 이상 움직일 필요가 없으니 뇌도 필요 없다는 논리다. 뇌는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장기다. 인간의 경우 전체 에너지의 20퍼센트를 뇌가 사용한다고 한다. 말미잘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사치품을 처분하는 셈이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인간도 말미잘과 비슷한 순간들이 있지 않을까? 어떤 안전한 곳에 정착하면서 점점 뇌 사용을 줄여가는 것 말이다. 매일 같은 길을 걸어 같은 지하철을 타고, 같은 카페에서 같은 커피를 주문하며, 같은 드라마를 보고 잠드는. 마치 바위에 붙은 말미잘처럼.
하지만 인간은 말미잘과 다르다. 우리는 물리적으로는 한곳에 머물러도 정신적으로는 계속 움직일 수 있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새로운 요리법을 시도해보고. 뇌는 우리가 움직이는 한 계속 필요하다. 아니, 움직이기 위해 필요하다고 해야 맞겠다.
어쩌면 뇌란 움직임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정체되는 순간 사라져버리는, 흐르는 물과 같은 것일지도. 말미잘이 뇌를 먹어치우는 순간, 그것은 죽는 게 아니라 다른 형태의 삶을 선택하는 것일 테다. 움직임 없는 삶, 생각 없는 존재.
나는 아직 내 뇌를 먹고 싶지 않다. 비록 가끔은 너무 많이 생각해서 머리가 아프고, 복잡한 감정들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들이 있지만. 그래도 이 모든 것이 내가 아직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 같아서.
말미잘은 안전한 곳을 찾아 뇌를 포기했지만, 나는 아직 바위를 찾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찾고 싶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뇌가 가끔 쓸데없는 생각들로 나를 괴롭히더라도, 그래도 이것이 내가 여전히 바다를 헤엄치고 있다는 증거니까.
커피가 식어간다. 말미잘은 지금도 어딘가의 바위에서 뇌 없이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