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으로 열리는 행복의 열쇠

치킨 - 2021년 40대

by 잭 슈렉

행복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 공교롭게도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끝이 정해진 책처럼, 상영시간이 끝나면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는 영화처럼, 모든 것은 달라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가 지금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곧 예상하지 못한 불행이 다가올 것이란 현실적인 두려움에 전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우려에 지나지 않았다. 삶이란 결국 끝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의 일부. 다만 지진을 대비해 내진설계를 하듯, 우리는 그 과정을 겪어나가며 행복의 열쇠를 각자의 방법으로 찾는다. 그 깨달음을 마주하자 보석과도 같은 인생, 모든 순간이 간절할 정도로 소중해진다.


건널목을 건널 땐 하얀색 네모만 밟았다. 피라미드를 닮은 커피 우유에는 가느다란 빨대가 제격이었다. 과립 비타민 몇 개면 지하철을 청소해 주시는 아주머니께 쉽게 인사드릴 수 있었다. 멀리서 사는 친구 하나 없어도 눈에 띄는 엽서와 편지는 반드시 사고 말았다. 예뻐서 모으기 시작한 칫솔은 어느새 200여 개가 되었다.


단 한 번도 치약과 만나게 해주진 않았어도,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상쾌해졌다. 극장은 무조건 조조로 관람했고, 기다렸던 음악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녹음테이프 재활용도 불사했다.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오가는 짧은 여행길은 늘 기대 이상의 감동을 전해주었다.


두 아들의 아빠이자 14년 차 가장이 되면서 맞바꾼 것일까? 젊은 시절 즐긴 사소한 행복들은 추억의 방에 두게 된다. 섬광처럼 불타오른 연애의 기억도 액자 속 박제가 되어간다. 내게 허락된 행복은 떠올리는 순간 여러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바로 ‘가족’이 된다.


달콤한 신혼과 함께 몇 번의 계절을 뒤로하고 아이가 태어난다. 건강한 출산을 위하는 마음으로 인스턴트 과자 대신 직접 구운 쿠키와 머핀으로 아내의 간식을 대신한다. 훗날 학교 간식으로 나온 아몬드 쿠키보다 아빠가 만들어준 쿠키가 진짜 맛있다고 하는 아이의 소감은 세계 최고의 요리사 부럽지 않았다.


세 살 터울로 마주한 둘째는 큰아이보다 더 빠르고 똘똘하다. 두 아이의 임신과 출산, 그리고 모유 수유가 끝날 때까지 그 흔한 탄산음료 한번 마시지 않은 아내의 각오는 내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줬다.


금방금방 자라나서 그럴 기회조차 없을 것 같아, 함께 땀 흘리며 몸으로 놀아줄 땐 피로감이 몰려와도 꿋꿋이 견딘다. 하루가 다르게 두 아이의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아내와 두 아이는 출근길에도 그리고 퇴근길에 인사를 꼭 전한다.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만큼 영혼 없는 인사도 간혹 보이지만, 엄마의 가르침을 따르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사랑스럽다.


멍텅구리 로봇과 초식공룡은 아빠로서 내가 만들어낸 캐릭터다.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이어 도서관 놀이를 할 땐 다 같이 둘러앉아 동시에 책장을 넘기곤 한다. 깊은 산속 풀벌레 우는 소리만큼 감미롭다. 매일 밤 애들을 재울 때마다 오늘 밤 어떤 꿈을 꿀지를 이야기 나눈다. 먹고 싶은 걸 잔뜩 먹고, 가고 싶은 곳을 하늘 날아 여행한다. 기발한 설정과 억지를 부리는 것이 난무해도 꿈 이야기는 나날이 다채롭고 풍성해진다.


큰아이 일곱 살 때 ‘우리 가족이 자주 사용하는 물건’이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려왔다. 엄마 휴대전화, 본인 연필, 동생 색연필, 그리고 아빠는 프라이팬이었다. 내 손으로 직접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큰 행복이다. 행복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말을 지금도 끼니마다 느낀다.


잠이 잘 안 온다고 투정 부리던 작은 아이를 품에 안고는 피노키오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페토 할아버지와 피노키오 그리고 여우 목소리를 번갈아 들려주니 ‘아빠 진짜 있었던 일이지?’라고 되묻는다. 그 반짝이던 눈빛은 은하수와 견줄 만하다. 우여곡절 끝에 사람이 된 피노키오 이야기가 끝나자 아이는 잠들고 눈물은 내 몫이 된다.


절간처럼 적적하다 하셔서 가까이 사는 부모님 댁엔 두 아이를 주말마다 맡긴다. 덕분에 할아버지 할머니는 웃음이 넘치고, 아내와 함께 매주 신혼을 즐기고, 조부모님 곁에서 더 성장하는 풍경이 만들어진다. 핑계 삼아 아버지와 술 한 잔 마시기 좋다. 남에게 해 끼치지 말고 살라는 엄마의 말씀은 자주 뵙는 만큼 늘 가슴속에 새긴다.


매주 금요일엔 조촐하게 외식을 한다. 가끔은 용돈으로 한턱내기도 한다. 아내 허락 없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용돈이 한 달 8만 원이다. 원래 7만 원이었으나 2년 전 만 원을 올려줬다. 필요한 곳에 쓰느라 바빴으나, 둘째가 태어나기 직전 여러 생각들이 교차했다.


금액을 조금씩 나눠 어린이재단과 지지 정당에 2만 원을 후원한다. 그럴듯한 이유는 떠오르지 않지만,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고로 다시 용돈이 만원 줄었다. 줄어들었으나 부족하지 않다고 느끼는 건 기묘한 일이 틀림없다.


좋아하는 영화는 백번 넘게 본다. 플레이어에 올린 CD는 마지막 트랙까지 듣는다. 예술의 여운은 행복만큼 길다. 닮아있는 그 둘은 깊은 밤을 지나 새벽까지 존재한다. 잔잔한 아침이 다가온다. 창문 너머 햇살에 눈을 뜨면 반복되는 백색소음이라 할지라도 기분이 새롭다. 그 가운데 들리는 선명한 새소리는 기지개만큼 개운하다. 하루가 시작된다.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고, 새로울 것 하나 없을 수도 있는 하루가 시작된다.


오늘, 이 하루를 맞이하는 모두의 인생은 보석이다. 행복의 열쇠는 일종의 보상이면 좋겠다. 격렬하게 요동치는 순간도 분명 있을 것이다. 감당해야 하고 받아들여야 할 힘든 시간도 뒤따를 것이다. 먼바다 높은 파도와 해안가 잔잔한 파도까지, 그 파도를 가로질러 나는 가족이란 품으로 향한다. 아내와 양가 어르신, 그리고 아빠가 될 수 있게 해 준 두 아이에게 머문다.


내가 찾은 행복의 열쇠는 가족으로부터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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