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라는 이름의 어린아이

다시 기저귀를 차는 시어머니를 보며 깨달은 생의 순환

마당에 널린 새하얀 기저귀가 바람에 가볍게 흔들린다. 수십 년 전, 남편의 기저귀가 걸려 있었을 그 자리에 이제는 시어머니의 기저귀가 걸려 있다. 인생은 결국 커다란 원을 그리며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일까.


어느 날 찾아온 낯선 아이

어머니는 요즘 부쩍 고집이 늘었다. 반찬이 짜다며 투정을 부리다가도, 금세 숟가락질이 서툴러 음식을 흘린다. 턱받이를 해드리고 다시 숟가락 쥐는 법을 가르쳐드리는 순간,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내가 아이를 키울 때 느꼈던 그 막막함과 사랑스러움이 교차하는 지점. 어머니는 지금 '치매'라는 이름의 어린아이가 되어 내게로 왔다.




기저귀, 수치심 너머의 평온

처음 기저귀를 채워드리던 날, 어머니의 눈동자엔 서글픈 수치심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이제 어머니는 당신의 몸을 온전히 나에게 맡기신다. 갓난아이가 엄마의 손길에 안심하듯, 어머니도 나의 손길에서 안온함을 찾으시는 듯하다.


부모는 자식을 세상으로 내보내기 위해 기저귀를 떼고 숟가락질을 가르치지만, 자식은 부모를 평온한 마무리에 닿게 하기 위해 다시 기저귀를 채우고 숟가락질을 돕는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생의 순환'이 아닐까.




다시 배우는 사랑의 언어

기억은 조각나 사라져도 살결이 닿는 온기는 남는 법이다. 비록 나를 '며느리'라 부르지 못하고 그저 '이쁜 사람'이라 부를지라도 상관없다. 어머니가 다시 아이가 되어가는 이 시간은, 어쩌면 우리가 미처 나누지 못했던 깊은 유대감을 완성하라고 신이 주신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어머니의 서툰 숟가락질 위에 따뜻한 반찬 하나를 얹어드린다. 우리는 그렇게, 가장 느린 속도로 생의 마지막 계단을 함께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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