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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방해꾼이 너야?

1.2 야마 - 사티야, 거짓을 벗고 진실을 말할 용기

by 고요한동산
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 놓는 순간 패자가 될 것 같아서 잡은 손에 더욱더 힘을 주었다.


청소를 하다가 장롱 깊숙이 숨겨놓은 오래된 일기장을 찾아냈습니다. 그 안에 누군가 볼까 봐 암호처럼 써 놓은 두 문장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수련회 날, 버스가 일렬로 줄을 서서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반의 학생수가 버스 한 대의 수요인원 보다 많아서 선생님들은 반의 일부 학생들을 떼어내 10호차와 11호차에 배치를 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우리는 서둘러 10호차에 올랐고 가장 뒷자리를 선점하고 쾌재를 불렀습니다. 이후 칠공주라 불리던 아이들이 올라탔습니다. 그들은 앞쪽에 자리가 있는데도 버스 뒤쪽까지 들어와 위협적인 시선으로 입꼬리 한쪽을 끌어올리며 말했습니다.


"우리 자리에 누가 앉아있네?"

"겁도 없이 웃으면서 앉아있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무서운 칠공주들에게 자리를 비켜주어야 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에 친구들이 조용히 귓속말을 했습니다.

'비켜야 하는 거 아니야?'

는 칠공주들이 한 것처럼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어요.

"우리가 맡은 거니까, 우리 자리야."

"선착순으로 앉는 건데 왜 자기들 자리라고 하는 거야?"

한 마디를 내뱉고 나니 용기가 생겨 두 마디 세 마디 계속 말을 이어갔습니다.

칠공주들이 껌을 씹으며 욕을 시작했고 나도 질세라 더욱 궁시렁거렸습니다. 그렇게 허세에 가득 찬 말들이 오고 가는 중에 갑자기 배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칠공주들의 짱이 배를 걷어찬 것입니다. 나는 본능적으로 일진의 머리채를 힘껏 움켜잡았습니다.

자리에 앉아 있어서였는지 아니면 그저 약했기 때문인지 그 아이의 주먹과 발길질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한 손도 뻗어 양손으로 그 아이의 머리카락을 잡았습니다. 머리카락을 놓으라며 그녀는 주먹질과 발길질의 강도를 높였어요. 한참 뒤 급하게 달려온 선생님이 우리를 분리시키고 칠공주들을 끌고 나갔습니다.

그제야 아이들은 내게 다가와 괜찮냐며 물으며 칠공주를 욕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난장판을 벌인 버스는 조용히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수련회장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있는데 칠공주의 짱이 찾아와 나를 조용히 불렀습니다.

"아까는 미안했어. 그리고 동아리 선배들한테는 오늘 일 말 안 했으면 좋겠어."

"선배들한테 말을 왜 해? 그런 이야기 안 해"

내가 말하자 그녀는 안심하며 돌아갔습니다. 강해 보였던 그녀의 뒷모습은 선배를 두려워하는 약자일 뿐이었었습니다.


제가 이 굴욕적인 사건을 소환한 이유는 오늘의 주제인 야마의 두 번째 규율. 사티야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아쉬탕가 요가의 뿌리인 야마는 하지 말아야 할 것, 금계를 말합니다.. 저번 시간에 야마의 첫 번째 규율인 아힘사(비폭력)에 대해 이야기했었죠. 오늘 이야기할 야마의 두 번째 규율인 사티야거짓되지 않은 것. 즉, 말과 생각, 행동이 모두 진리에 부합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자신에게는 진실이라도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면 그것은 진실이 아니라고 아쉬탕가에서 말합니다. 일진들의 행동은 자신들이 우위에 서있다는 인식에서 시작되었고 이것은 아힘사(비폭력)와 위배되는 행동입니다. 또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진실되지 않은 언어를 뱉음으로 사티야(불망어, 진실되지 않은 언어를 금함)를 어겼습니다. 사티야(Satya)는 이렇게 아힘사(비폭력)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누군가를 힘으로 억누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고, 타인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즉 사티야를 어긴 것입니다. 이렇게 야마를 실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세상에 무수히 많고 그 가운데 우리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저번시간에 제가 드린 질문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Q. 두려움을 뚫고 진실을 말해본 적이 있나요?


저는 두려움을 뚫고 버스에서 자리를 지켜냈던 걸까요? 처음에는 일진들의 위협에 맞서 싸운 영웅이 된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뒤엉켜 싸운 건지, 일진에게 두드려 맞은 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사티야는 제게 질문을 던집니다.

“그 순간 너는 너의 마음에 정직했는가?”

“너의 말은 너의 진심과 같았는가?”

“너의 행동은 위선이나 기만이 섞이지 않았는가?”


사실 저는 두려웠지만 친구들에게 강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언어는 그들처럼 입꼬리를 올리며 비아냥거리며 말하는 거였죠. 만약에 내가 그들의 겉모습 또는 태도와 상관없이 순수하게 이 자리에 앉고 싶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다면 더욱 용감하게 말했을 겁니다.

"미안하지만 우리가 먼저 와서 앉았고 여기에 그냥 앉아있고 싶어."

이렇게 말이죠. 진실된 생각을 하고 그것을 말로 제대로 표현하며 행동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버스 사건 이후 학교에 일진하고 맞붙은 애가 있다고 소문이 퍼졌고 반에 저를 구경하러 오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제가 발길질을 당하고 있을 때 시선을 돌리고 침묵했던 친구들의 입을 타고 이야기가 퍼져나갔습니다.


진실을 외면하는 침묵이나 무관심도 사티야의 관점에서는 진실되지 않은 태도입니다.

알면서 모른 척하는 것 또한 진실된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죠.

머리카락을 움켜잡은 손만을 의지한 채 발길질을 견디고 있을 때, 아무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이란 모든 것을 잠식시켜 버리니까요. 그들이 제 이야기를 떠들고 다녔던 이유는 자신들의 비겁함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모릅니다. 방관자가 아닌 별난 두 아이의 싸움이었다고 여기는 것이 마음이 편할 테니까요.


사티야는 결국 사랑에 기반을 둔 아힘사(비폭력)가 전제되지 않으면 지켜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모든 존재는 소중하니 사랑으로 감싸 안아야 한다는 아힘사의 규율을 기억한다면 진실을 향해 갈 수 있는 힘이 생길 것 같습니다.


허위, 허세, 기만, 위선, 비난이 담긴 말들은 진실을 밀어냅니다. 진실을 방해하는 껍질들을 벗겨내야 사티야(진실과 어긋나는 것을 금함)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요가철학 아쉬탕가 8단계에서 뿌리가 되는 아마(yama)- 두 번째 규율. 사티야(Satya)는 진실된 내면, 진실된 언어, 진실된 삶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제거함으로써 실천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것을 덜어내면 좋을까요?

저는 두려움을 숨기며 멋있어 보이고 싶어 하는 인정욕구를 덜어내고 싶습니다. 나를 향한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작은 존재라 여겼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면 다른 이들 또한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다듬어야 할 부분들이 다 다를 거라고 생각됩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일, 그래서 요가는 항상 매트를 펴고 자신의 호흡을 바라보며 머무르는 게 아닌가 합니다. 답은 스스로 찾아가야 하니까요.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에서 벗어나 과연 이것이 진실일까.라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티야를 이렇게 요약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진실과 다른 내면을 다스리기

둘째, 불망어. 진실과 다른 말을 하지 않기.

셋째, 뱉은 말과 불일치되는 행동을 하지 않기.


진실한 내면을 가지고 진실하게 말하고 그에 걸맞은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사티야입니다.

너무 어려운 금계지요?


말은 청산유수처럼 뱉어놓고 실제로는 말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마주할 때 부끄러워집니다. 하지만 요가는 부끄러운 자신도 비난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그저 바라보라고 합니다.

요가를 지속적으로 하면 좋은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온전히 나를 바라보다 보면 착각이나 거짓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진실된 삶으로의 방향성을 스스로 찾아내지요. 그것이 요가의 신비로움입니다.

어렵다고 생각될 때는 그저 매트를 펴고 편안한 자세로 앉아보는 겁니다.

매트가 아니어도 좋아요. 작은 공간만 있으면 됩니다.


사티야를 깨우기 위한 요가 아사나는 수카사나입니다.

명상을 하는 가장 쉬운 좌법입니다.

아래의 그림처럼 자세를 취해보세요.

수카사나 - Chatgpt 생성 이미지


편안하게 앉아 다리를 가볍게 교차합니다.
두 손은 무릎 위에 올려두고, 손바닥은 위로 향하게 합니다.
중력을 거부하듯 척추를 길게 하늘로 뻗어냅니다.

반대로 어깨는 중력을 받아들여 아래로 무겁게 툭 내려놓습니다.

눈을 감고 시선을 미간에 두세요.

입술은 가볍게 붙이고 찡그린 미간을 넓게 하여 미소를 띠어보세요.

호흡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쉽니다.

어떤 생각들이 들어오면 그냥 내버려 두세요. 그저 의식을 호흡으로 가져오는 겁니다.

코끝을 스쳐가는 공기를 느껴보세요.

스쳐가는 상념들도 그냥 바라보세요.

한걸음 떨어져 나를 바라보는 연습을 해봅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순간들이 많아질수록 진실에 가깝게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진실의 방향은 도대체 어디이고 우리는 어디쯤 서있는지 알 수 없으니 멈춰서 바라보세요.

나의 마음을 바라보고 진실의 소리를 들어봅니다.

하루를 돌이켜 봅니다. 아주 작은 것에서 거짓을 행한 적이 없는지 생각해 봅니다.

불필요한 말로 인해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그동안 시행착오를 겪어왔던 나 자신을 조용히 바라봅니다.


오늘은 거짓되지 않은 삶. 즉 진실을 실천하는 사티야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어려울 수 있지만 작은 것부터 들여다보고 실천하는 겁니다.

내 마음과 다른 거짓된 말, 상처를 주는 언어를 줄이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그것은 내 진실된 마음을 알아야 가능할 겁니다. 호흡하며 나를 바라보는 것이 나를 알아가는데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수카사나로 앉아 명상을 꼭 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요가를 통해 알게 된 것을 진실되게 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것은 진실된 삶을 위해 실천해 나가야 할 목표일거에요. 진실에 닿으려고 함께 노력할 때 결국 다 같이 잘 살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철학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죠?

지혜를 추구하며 나아가는 과정이 철학이고 그 과정에서 나의 삶은 조금씩 조화로워집니다.

첫 번째 점과 두 번째 점을 연결해 첫 번째 선을 만들었습니다. 이로서 조금 더 지혜로워졌기를 바라봅니다.


다음 시간에는 아쉬탕가 철학의 뿌리인 야마(Yama).

세 번째 규율 <아스테야(Asteya):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겠습니다.


미리 질문을 던집니다.

Q. 타인의 것이 부러워서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을 탐한 적이 있나요?

한 번 생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남에 것을 탐하고 훔치고 싶은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 다시 이야기 나눠요.

고맙습니다.


<다음 이야기 예고>


사적인 요가 철학이야기

아쉬탕가 철학의 뿌리인 야마(Yama)에서의 세 번째 규율

<아스테야(Asteya): 훔치지 않음, 타인의 시간과 마음을 존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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