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니야마
"집으로 가고 있어."
아이들을 보내고 널브러져 있는 아침상을 치우고 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출근하자마자?"
"응."
"조심히 와"
그날도 어김없이 그는 50번 버스에 몸을 싣고 김포공항역에 내렸습니다. 회사에 출근을 하려면 지하로 내려가 9호선으로 갈아타야 합니다. 그런데 누군가 발을 잡은 것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버스가 자신을 떨구어 놓은 자리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김포공항역에서 고개를 들면 시야가 탁 트여, 낮고 넓은 파란 하늘이 자신을 감싸는 느낌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하얀 구름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한참을 바라보다가, 그는 50번 버스에 몸을 다시 싣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20년간 다닌 직장이었고 많이 지쳐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삶이 그를 조여내도 나는 모른 척 등을 토닥여 내보냈고 그도 그렇게 매일같이 가던 길을 묵묵히 걸어갔습니다. 그랬던 그가 그날은 얼마 가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공항장애가 뭔지 알아?"
신랑이 언젠가 밤에 맥주 한잔을 들이키며 물었습니다.
"공항에 내려 파란 하늘을 보며 '집에 가고 싶다'라는 마음이 드는 게 바로 공항장애야"
"공황장애 아니고 공항장애야?"
나는 대수롭지 않게 라임이 좋다며 깔깔대며 웃었습니다.
그가 계속해서 내게 던지던 복선임을 알았지만 그래도 저는 별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말하는 순간 그가 일을 그만둘까 봐 무서웠던 것 같습니다.
삐삐 삐삐삐-
그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고 머쓱하게 들어왔습니다.
"오늘도 공항장애가 왔지 뭐야.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서 도저히 지하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어."
"잘했어. 어서 와"
그는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뒤, 오랫동안 써온 방석과 텀블러 같은 물건들이 그대로 회사에 남아있었지만 가지러 가지 않았습니다. 20년의 세월과 작별인사도 하지 않고 그곳에서 자신만 쏙 빼내어 집에다 데려다 두었습니다.
새벽이 되면 머리를 감싸고 등을 구부려 엎드린 채 홀로 울음을 삼키는 것을 몇 차례 본 적이 있었습니다. 말없이 혼자서 괴로워했던 그는 "갱년기인가 봐" 하며 농담처럼 넘기고 샤워를 하러 가곤 했습니다. 그렇게 1년 2년 3년을 넘기다 그는 무너졌습니다.
결국 그는 공항장애가 아닌 공황장애였을까요. 매일 출근길에 청아한 하늘을 뒤로하고 들어갔던 지하도는 자신의 숨을 조여 오는 지옥과 같았을지도 모릅니다.
경단녀였던 저는 일을 구하기 위해 이력서를 썼고, 몇 차례 떨어진 후 드디어 회사로 출근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옷을 챙기고 준비물을 체크해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그가 갓 지은 밥과 끓고 있는 김치찌개를 내어 저녁을 차려주었습니다. 아이들의 숙제를 봐주고 있으면 그는 먹은 그릇들을 깨끗하게 씻어 차곡차곡 정리를 했습니다.
그는 나보다 살림을 잘했고 아이들에게 더 다정했습니다. 그가 많은 것들을 비워낸 자리에 규칙적으로 일궈진 일상들을 채워나가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것이 그에게 제법 잘 어울렸습니다. 그는 1년이 훌쩍 넘도록 집에서 규칙적인 나열을 하듯 밥을 하고 청소를 했습니다. 빨래를 돌리고 건조된 옷을 소파에 앉아 차곡차곡 개면서 음악을 들었습니다.
이런 그의 평화를 깬 것은 결국은 매달 찾아오는 카드결제날 때문이었습니다. 이제는 움직여야 할 때라고 그를 재촉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그는 다시 일어나 일을 나갔습니다. 그가 택한 것은 현장에서 물건을 나르는 일이었습니다. 사무실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며 일했던 그는 자신이 하던 일과 완벽히 작별을 했습니다. 다리에, 팔에 상처가 늘어났고 근육통에 시달렸지만 그는 말했습니다.
"마음이 편안해"
일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참고 살아갑니다. 버티고 버티며 자신을 갉아냅니다. 그와 나는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고 사랑하는 꼬물이 둘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늘 해왔던 것에 익숙해져버리고, 벗어나지 못하는 것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하던 숙제와는 다른,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숙제가 매일매일을 기다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번주 내내 나는 몸이 많이 아팠고 일도 겨우 했고 아이들 밥도 겨우 차리며 일주일을 버텼습니다. 글쓰기를 포기하려던 찰나에 아이들이 드디어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샤워기에서 흐르는 따뜻한 물에 몸을 넣으니 갑자기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꼭 날짜를 지켜내 쓰고 싶다는 의지를 다 잡고 컴퓨터를 켜고 책도 옆에 펼쳤습니다.
니야마는 개인의 내면을 다듬는 것입니다. 책에서는 그 실천법으로 다섯 가지나 제시하고 있습니다.
샤우차(청결): 몸과 마음, 환경의 청결
산토샤(만족): 지금 있는 그대로에 감사하기
타파스(수행): 자기 훈련, 인내, 의지력 다듬기
스바디야야(자기 공부): 경전 공부 또는 자기 성찰
이슈바라-프라니 다나(신에 대한 헌신): 더 큰 존재에 맡기기, 내려놓기
이 정의처럼 깔끔하게 정리가 된다면 인생이 참 쉬울 텐데 말이죠.
저는 더 큰 존재에 나를 맡기기로 하고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렸습니다. 그러자 가장 가까운 나의 '그'가 떠올랐고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무언가가 잘 풀리지 않는다 싶을 때는 깨끗한 환경을 만들어 그냥 그 공간에 나를 맡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듯합니다. 이것도 니야마의 하나일 수 있겠습니다.
공항장애 때문에 집에 돌아왔던 그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 보겠습니다.
그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나이가 들 수록 선택권이 거의 없는 것만 같습니다. 최소한의 사회인 가족을 위해서 한 개인의 삶이 포기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부모들이 그래왔고 우리 또한 그래야 한다고 말이지요.
가던 길의 경로를 이탈해보아도 세상은 무너지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라는 세상이 잘 보존되어 곁에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너무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지요.
처음에 저는 1년이 넘도록 집에만 머무르는 그를 보면서 불안감에 잠식되어 갔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어느 날 그는 결정했고 행동을 취해주었습니다. 예전보다 금전적으로는 부족하게 느껴지지만 어떻게든 우리는 살아내고 있으니 그것만으로 만족합니다. 움직일 힘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데 주저앉지 않고 힘을 내고 있으니까요.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는 밥상에 둘러앉아 우리는 웃음꽃을 피워냅니다. 무너지기 전 파란 하늘을 끌어안고 집에 돌아온 그는 가족을 품었습니다. 그것으로 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집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집은 힘든 순간 나를 품어 편안히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며 하루의 피로와 고민을 녹이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는 순간 '아 다행이다' 안도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런 집이야말로 바로 니야마가 아닐까요?
가끔 이론서에서 보이는 단어들은 딱딱하고 상투적으로 느껴집니다.
아이들에게 항상 하는 잔소리 같죠. 씻어라! 공부해라! 인내해라!
사실 엄마의 잔소리가 따뜻한 마음을 담고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을 겁니다.
니야마는 엄마의 잔소리처럼 따스하게 나를 안아주는 말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나를 괴롭히는 많은 것들을 한 번 내려놓아 보세요.
그러고 나면 다시 쥐고 싶은지 놓아버린 게 맞는지를 알게 될 겁니다.
그는 20년 넘게 만들어놓았던 것을 모두 내려놓고 잠시 멈추었습니다.
그동안 그는 쌀을 씻어 솥에 넣어 칙칙 밥 되는 소리를 들으며 가족을 기다렸습니다.
배부르게 잘 먹었다며 든든히 배를 두드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는 흐뭇하게 바라보았습니다.
달그락달그락 그릇을 반복적으로 씻어내 그릇을 크기별로 정리해놓고 나서 속 시원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가끔은 이를 닦듯이 나의 괴로움을 닦아내야 합니다.
그가 내던진 팀장자리에 다른 누군가가 앉아있겠지요.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대신 그는 온종일 뛰어다니며 몸을 쓰며 정신을 깨웁니다. 상처가 나서 아프고 앞으로의 방향이 불안하기도 하겠지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이유는 삶 속에서 수행을 하라고 사람들 모두에게 내려진 숙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 때 배움을 배우기 위해 숙제를 하듯이 어른이 되어서도 배움을 위한 숙제가 늘 따라옵니다.
넘어지고 상처가 난 자리는 딱지가 생기고 새살이 돋으니 괜스레 걱정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떤 방향에 놓이게 될까요? 우리가 디딜 다음 디딤돌이 불안정하지 않게 잘 박혀있을까
늘 불안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발을 디딥니다.
제가 요가 철학을 너무 간단하게 별 것 아닌 것으로 써나가는 걸까 걱정이 되지만,
거추장스러운 것은 걷어내고 가장 중요한 것 하나만 남겨두고 싶습니다.
나의 내면에 쉼을 주고 잠시 머무르세요.
한 걸음 두 걸음 뒤로 물러나서 한참을 서있었지만 지구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돌봐주세요. 사회의 구성원이 아닌 온전히 한 개인으로서 나를 존중해 주세요.
지난 시간에 미리 남긴 질문입니다.
Q.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치유를 위해 어떤 것을 하시나요?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을 쉽니다. 어느 순간에 숨을 멈추는지, 숨이 들어가지 않는 부분이 어디인지 찾아내고 한숨을 거하게 뱉어냅니다. 그러고 나면 맺혀있던 덩어리가 숨과 함께 빠져나가는 것만 같습니다.
그렇게 한참 숨을 쉬다 보면 일기를 쓰고 싶어 져, 노트를 펼치고 생각들을 마구잡이로 적어 내려갑니다.
저희 집 남자는 아주 시끄러운 음악을 듣습니다. 가장 미세하고 정교하게 쪼개진 박자 위에 화려한 듯 하지만 반복되는 멜로디가 얹힌 곡들이 대부분입니다. 그 박자를 타고 그는 곡안에서 치유가 되는 모양입니다.
자신을 치유하는 어떤 것을 가지고 계시겠지요?
혹여나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 때 모른척하고 그냥 지나가지 마세요.
알아차리고 토닥여주어야 합니다. 나의 내면을 내가 알아차리지 않으면 누가 알아차려 주겠습니까.
니야마는
상처받은 내면에 연고를 발라 호- 하고 불어주고,
딱지가 생길 거라고 괜찮다- 이야기해 주고,
새 살이 돋을 때까지 딱지를 억지로 떼지 말고 기다리라고 알려줍니다.
니야마의 품에 들어와 나를 깨끗이 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괜찮다 말하며, 조용히 쉬다 가세요.
그러면 사라졌던 에너지가 자라나 새로운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게 될 겁니다.
조용히 니야마를 깨워 지쳐있는 나를 위로할 수 있도록 요가 아사나를 해보겠습니다.
누운 영웅자세. 숩타 비라사나(Supta Virasana)입니다.
무릎을 꿇고 앉습니다.
양발을 천천히 무릎 뒤쪽으로 빼내어, 엉덩이 양옆에 나란히 둡니다.
무릎은 무리되지 않는 선에서 가볍게 붙여주세요.
균형을 잡으며, 양손을 바닥에 짚고 상체를 천천히 뒤로 기울입니다.
누울 수 있다면 등을 바닥에 내려놓고,
그렇지 않다면 넓은 쿠션을 허리와 등에 받쳐 시도해 보세요.
누운 자세가 편안해졌다면,
양팔을 머리 위로 넘기고, 팔꿈치를 가볍게 교차해 감싸봅니다.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해 봅니다.
코끝으로 스며드는 공기와 뱉어내며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온기를 느껴보세요.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세상의 중심에 서 있지 않아도
나는 나의 삶에서 충분히 영웅입니다.
이제는 편안히 땅에 나를 기대어 쉼을 허락하세요.
아쉬탕가는 여덟 가지 철학을 의미합니다.
오늘은 두 번째 니야마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어지럽혀진 마음의 방을 정리하는 것, 그것이 니야마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철학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죠?
지혜를 추구하며 나아가는 과정이 철학이고 그 과정에서 나의 삶은 조금씩 조화로워집니다.
다음 시간에는 아쉬탕가 철학의 세 번째. <아사나(Asana) — 몸의 자세, 요가자세>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겠습니다.
미리 질문을 던집니다.
Q.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아사나(요가자세)는 어떤 게 있을까요?
한 번 생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 다시 이야기 나눠요.
고맙습니다.
<다음 이야기 예고>
아쉬탕가 철학의 세 번째 이야기
아사나(Asana) — 몸의 자세, 요가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