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서문] 탯줄을 찾는 순례자의 식탁

부제목: 모든 비탈길은 결국 하나님의 집으로 이어진다

by 고요정

제1화: [서문] 탯줄을 찾는 순례자의 식탁

부제목: 모든 비탈길은 결국 하나님의 집으로 이어진다


나이 예순을 넘기고서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들이 있습니다.

젊은 날의 저는 주방이라는 치열한 전장에서 불꽃을 다스리며, 완벽한 요리를 내놓는 것만이 셰프의 영광이라 믿었습니다.

9년이라는 시간을 뜨거운 열기 속에서 보내고 광야 같은 은퇴의 길에 들어섰을 때, 저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인생이라는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는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오랜 시간 뭉근하게 우려낸 ‘진심’과 ‘고난’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영국의 지성 C.S. 루이스가 견고한 이성의 성벽을 허물고 마주한 것은, 예기치 못하게 찾아온 기쁨과 "오, 하나님!"이라는 짧은 탄식이었습니다.

저 또한 그와 비슷한 갈래길을 걸어왔습니다. 때로는 오솔길에서 길을 잃고, 가파른 비탈길에서 숨을 몰아쉬며, 어두운 동굴 속에서 빛을 갈구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그 모든 구부러진 길들이 사실은 하나의 거대한 **‘탯줄’**에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요.

우리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숨 쉴 수 있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그 생명줄이 우리를 하나님의 집으로 끊임없이 끌어당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그 탯줄에 매달려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히말라야의 시린 공기를 떠나 낯선 땅으로 떨어진 네팔 가족을 만났습니다.

휠체어를 탄 소년의 미소와, 삶의 무게에 짓눌려 갑옷을 입고 엎드려 울던 그의 어머니.

그들과 함께 차를 타고 예배당으로 향하던 길, 트렁크에서 들려오던 휠체어의 덜커덩 소리는 제게 그 어떤 교향곡보다 거룩한 화목의 찬양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위해 비프 수프를 끓였습니다.

따스한 국물 위에 그들의 고향에서 피었을 법한 작은 꽃 한 송이를 띄웠습니다.

그것은 셰프인 제가 건네는 작은 환대였습니다.

대단한 진리가 아니라, 들길에 핀 코스모스처럼 낮은 키로 서서 여린 들풀들에게 작은 그늘이 되어주는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누군가 제 그늘 아래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다면, 저는 그것으로 저의 영광을 노래하겠습니다.



[헌사] 그늘의 영광


화려한 정원의 장미가 아니라

거친 들길에 뿌리내린 소박한 코스모스여서 참 다행입니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그저 제 자리를 지키며 조금 더 높은 키로 서 있었습니다.


그 작은 키가 만들어낸 한 뼘의 그늘 아래

잠시 머물다 간 인연들이 있었습니다.


누구도 존재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던 여린 들풀들이

그 그늘의 온기에 기대어 비로소 꽃을 피웠습니다.


비록 세상은 그 그늘의 가치를 계산하지 못해도

그곳에서 생명을 이어간 영혼들의 숨소리가

곧 당신이 하늘에 올리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가 되었습니다.


나를 태워 빛나는 영광이 아니라

나를 넓혀 온기를 나누는 영광,

그 들풀 같은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탯줄에 닿아 있는

가장 단단한 사랑의 증거입니다.


**작가의 한마디**

"당신이 잠시 쉬어갈 수만 있다면, 저는 기꺼이 당신의 곁에서 들풀의 영광을 노래하는 코스모스로 서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