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윤리와 소명

비극의 탄생. 손병관 기록. 왕의 서재. 2021

by 묻는 사람 K

어릴 적 내 꿈은 발레리나였다. 그것만큼 절실하고 간절하며 확고한 바람을 나는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품지 않았다. 원한다고 다 가질 수 없고, 노력만으로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렸지만, 이룰 수 없다고 잊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고, 빠르게 포기했다.


'기자'라는 직업은 선망의 대상이었어서 함부로 꿈조차 꾸지 않았다.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이들이나 할 수 있는 소명이라고 생각했으므로 부러워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매일 사설과 칼럼을 읽었다. 마음에 드는 기사를 찾아 스크랩하는 숙제를 더는 하지 않아도 되었음에도 멈추지 않았다.


'기자 선생님'에서 '기자'로, '기자 나부랭이'에서 '기레기'로 빠르게 전락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아마 그 어디쯤에서 중. 고등학교 때 키워진 신문 읽는 습관도, 호기심과 즐거움 역시 빠르게 소멸되어 갔을 것이다. 더는 언론과 언론인에 대한 환상을 품지 않는다.


새로운 버전이 나와서 많이 쓰이지 않지만, 예전 성인용 지능검사 중 <이해> 소 검사에는 민주주의에서 왜 언론 보도의 자유가 중요한지를 묻는 문제가 있었다. '정보를 대중에게 알리는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면 추가 점수를 주는 문제였다.


진실을 추구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대중에게 전하는 일에도 소홀한 언론의 행태를 보고 있자면 한때나마 경외심을 느꼈던 마음조차 부끄러워진다. 신문을 구독하는 일은 진작 그만두었고 신문사에 접속해서 기사를 읽는 일도 중단한 지 오래다.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는 일도 드문 일이 되어버렸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오염된 기사는 쏟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하는 마음으로 종종 기사를 클릭하는 것은 <민중의 소리> 이완배 기자처럼 손에 꼽을 수 있는, 신뢰할 만한 몇몇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기자의 소명이 사람들이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한 손병관 기자를 찾아냈다.


<비극의 탄생. 손병관 기록. 왕의 서재. 2021>을 읽으며, 그렇지! 기자의 본분은 취재가 아니던가, 왜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까 관해 생각했다. 허나, 마땅한 것이 희귀해져 버린 게 어디 이 뿐이겠는가 싶기도 하다.... 씁쓸하고 비극적인 하루는 참 더디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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