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격양되면 차라리 말하지 말고, 그 자리를 피하라는 지침을 준다. 부모 교육에서나, 부부 또는 커플 상담에서 자주 하는 말이다. 감정이 격해지면 상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보다 날 것의 감정만 전달되어서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기 때문이다. 평정심을 잃었을 때, '할까 말까 싶은 말'이 생각나거든 일단 멈추라고 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나 자신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화가 났을 때 내뱉은 말은 대부분 후회를 남긴다. 그래서 말을 줄이고, 쓰는 것도 삼간다. 익히지 않은 말과 글이 떠돌며 후회를 만들 가능성을 줄이고 싶어서다. 요동치는 마음을 조절하는 게 쉽지 않아서, 갱년기 핑계로도 더는 이해를 구할 수 없는 수준이라서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 속에 머물려고 노력한다.
밥벌이와 최소한의 역할을 빼고는 숨만 쉬며 지냈다.언론 매체를 끊고 결이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줄이는 것만으로 자극은 상당히 덜 했다.고립이 잠시 위안을 줄지언정, 안정감을 지속시켜주지 않을 걸 안다. 단절하고 무시한 채로, 비슷한 사람끼리만 접촉하며 살 수 없다는 걸 나라고 모르겠는가.... 하여,마음먹고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극심한 피로가밀려왔다. 혹시 착오가 있나 싶어 눈을 의심했다. 문화부도 아닌, 사회부 기자가 쓴 기사라니.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의도가 너무 빤해서 민망할 정도였다.설마 국민이 알고 싶어 하는 게 그녀가 얼마짜리 옷을 입고, 무엇을 신고, 그 제품이 품절이 되었다는 소식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국민 수준을 그렇게 보진 않았을 테지. 이유가 있었겠지....
적어도 기자라면, 무수한 의혹을 품었던 주가 조작 사건, 논문 표절 문제, 잘 보이기 위해서 경력을 부풀린 것에 대해서라도, 아니면모친의 잔고위조 사건에 대해서라도 제대로 취재해서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팬심을 드러내고 싶다면 의혹인지 진실인지를 밝혀주고, 관련자가 줄줄이 구속되었음에도 그들만 법 앞에서 자유로운이유를 말해줘야 하지 않은가 말이다.
나는 자주 흔들리고 쉽게 자기 연민에 빠지기는 사람이라서, "네가 아무리 애써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아"라는 달콤한 속삭임에 앞장서 숨는다.빠르게 좌절하고 고민 없이 포기하는 터라서, '어차피 다 똑같아. 그놈이 그놈이야'라는 물타기를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소심한데 겁도 많아서 "대통령직속 ‘국가사이버안보위’를 신설해 '사이버전 전사 10만 명 육성'한다는 기사에 쫄보가 된다.
그런데 알량한 자존심은 남아있어서 그냥 넘기지도, 조리 있게 문제를 제기하지도 못한 채 괴로워한다. 이런 기분으로는 후회할 말들만 쏟아낼 것 같아서 브런치 글쓰기 페이지에 썼다 지우기를 반복한다. 함부로 미워하고 싶지 않아서, 오해일까 봐 기자 이름을 검색했다. <기자 수집가>라는 유튜브 채널이 나왔다.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것 같았다.
내가 끝없이 가라앉아 날것의 감정만 풀어놓을 때, 나잇값 못 하고 불평하고 비난만 할 때, 누군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자존심을 지키려 했(던 것 같)다. 그에게 고맙다. 여전히 후회할 말이 불쑥불쑥 나온다. 능력이 부족해서 명료하고 설득력 있는 글을 쓰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할 것이다. 내 삶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 쓰고 남길 것이다. 기록의 힘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