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슬픔의 이분법을 지나, 삶의 언어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수를 세어보려는 시도는 오래되었다. 보편적 표정으로 묶인 여섯 혹은 일곱 가지, 톱니처럼 맞물리는 여덟 가지 바퀴, 더 촘촘한 스물일곱 개의 감정 군집…. 이 목록들은 정교한 지도가 되어 우리를 안심시킨다. 그러나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 날마다 변하는 하늘빛처럼, 감정은 이름표를 붙이는 순간에도 이미 농도와 방향을 바꾸어 버린다. 그러므로 문학의 자리에서 감정은 가짓수보다 결로 읽혀야 한다. 결은 빛과 그림자가 맞물려 만들어내는 미세한 결합, 즉 인간에게만 허락된 이해의 촉도(觸度)다.
에크만이 말한 기쁨·슬픔·분노·두려움·놀람·혐오(그리고 때로 경멸)는 인류 보편의 표정을 가리킨다. 플루칙의 감정 바퀴는 그 표정을 강도와 조합으로 확장해 낙관, 경외, 경멸 같은 혼합색을 얻는다. 현대 심리학의 더 세밀한 분류는 사랑, 향수, 어색함, 자부심, 안도, 호기심 등 삶의 결을 자로 잰다. 이 모든 시도는 유용하다. 다만 그것들이 가리키는 것은 감정의 목록이 아니라 감정에 진입하는 문이다. 문을 통과한 뒤의 풍경,
그 미묘한 온도와 냄새, 발치에서 이는 바람은 각자의 삶과 언어로만 포착된다.
우리는 흔히 기쁨을 밝고 슬픔을 어둡다고 배운다. 그러나 실제의 감정은 흑백이 아니다. 기쁨에는 항상 두려움의 물기가 섞여 있고, 슬픔은 종종 안도의 기색을 띤다. 기다리던 연락을 받는 순간의 환희에는 “혹시 이마저 사라질까?”라는 불안이 손톱처럼 달라붙고, 장례식장에서 흐르는 눈물에는 “그래도 사랑했구나”라는 은은한 감사가 배어 있다. 감정은 서로를 배반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밝혀준다. 기쁨은 슬픔의 깊이를, 슬픔은 기쁨의 결을 드러낸다. 그러니 이분법은 설명을 단순하게 만들 뿐, 인간을 해명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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