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휴가 끝날 무렵 난 폭발해 버렸다.
출산 휴가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매주 우리 집으로 돌아가며 식구들이 왔다.
그녀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매번 왔다.
신혼 때 그녀가 한번 난리를 친 이후부터는 일이 없으면 매주 시댁에 가야 했다. 임신을 하고도 매주 가다가...
만삭이 되어서 아이 나올 때쯤부터 나만 가지 않고 신랑만 갔다.
신랑이 가면 토요일에 가서 일요일 오후에 돌아왔다.
만삭의 몸으로 혼자 마트를 가고 집안일을 하며 주말을 보냈다. 혼자 집에 있으면서 눈앞이 캄캄해지는 경험을 두 번이나 했다. 그때도 신랑은 옆에 없었다.
다들 신혼이라고 둘이서 여행도 가고 한다는데 내 기억에는 시댁 간 기억 밖에 없다. 토요일도 아침 8시에 출발해서 9시쯤 도착했다. 그렇게 하루 종일 같이 보내고 일요일에도 저녁 먹고 가면 편하지 않냐며 9시가 되어서야 보내줬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매주 시댁 식구들이 우리 집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녀는 한 번도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출산 한지 3개월이 다 되어 가던 시기..... 나 혼자 아이와 둘이서 주말을 보내고 신랑만 토요일에 시댁을 갔다. 아이를 낳고도 이렇게 주말을 가서 자야 하는 현실이 너무 우울했다. 나와 아이만 남아서 100일 안된 아이를 혼자 봐야 했다.
난 카톡 프로필에 서운한 마음으로 한마디 썼다.
" 나랑 너밖에 없네..."
그리고 그다음 주 아이까지 데리고 또 시댁을 방문해야 했다. 그녀가 또 화가 나있다.
" 아들이 엄마집에 와서 잘 수도 있지. 카톡에 뭐? 너랑 나밖에 없다고? "
그걸 시작으로 끝도 없이 퍼붓는다. 오래돼서 기억은 안 나지만 다이어리에는 욕을 먹고 온날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게 혼나고는 또 잠까지 자고 와야 했다.
집에 도착하니 저녁 9시가 넘었다.
난 아이를 두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12월에 나와서 갈 때라고는 친정엄마집이지만 갈 수가 없었다. 아직까지는 친정엄마에게 자세하게 속상한 일들을 말한 적이 없었다.
난 집 앞의 산책로가 있는 다리 밑으로 향했다. 12월이라 아무도 없었다. 난 아파트 앞 천이 흐르는 산책로 의자에 앉아 펑펑 울었다. 매 주말을 그녀 집에 가야 하는 현실과 어디에서 기분이 나쁠지 몰라 혼이 나야 하는 상황... 내가 이상한 것인지 나의 자존감이 지하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 예쁜이도 내 말 잘 듣는데 넌 대학 나온 애가 왜 말귀를 못 알아듣니?
자기 집에 키우는 강아지와 나를 비교를 했다. 난 개보다 못한 사람이 되었다.
미친 듯이 울었다. 소리를 내고 엉엉 울었다. 그때는 결혼한 지 오래되지 않아 낯선 동네에 아는 사람도 없었다. 하소연을 들어줄 친구도 옆에 없었다. 그저 혼자서 견뎌야 했다.
혼자서 펑펑 울고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부엌으로 들어가 술병뚜껑을 열었다. 잔도 필요 없이 그냥 입안에 술병을 넣고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놀란 신랑이 100일 안된 아이를 안고 나왔다. 그리고 술병을 잡고 뺏었다. 난 울면서 다시 술병을 잡았다. 다시 신랑이 말렸다.
출산휴가가 끝날 무렵 출근을 열흘 앞둔 그날 이후 난 아무 말도 안 했다. 마음속에는 수천 가지 말이 나왔지만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일주일을 난 그와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주일 후 우리는 대화를 했다. 그리고 2주에 한번 가는 걸로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격주로 일을 하는 걸로 거짓말하겠다고 했다. 난 거짓말을 해야만 한다는 게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리끼리 놀러 가는 것도 그날 이후에는 다 거짓말을 하고 가야 했다. 놀러 가면 놀러 다닌다고 뭐라고 했기 때문이다.
모든 게 그녀의 허락과 지시 속에 이루어져야 했다.
그리고 정말 회사에 출근하기 마지막 주말에 또 시댁을 갔다. 만두를 빚으러.....
며칠 후 나는 새해부터 출근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친정엄마가 아이를 돌봐주게 되었다. 차로 10분 거리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에 살고 계셨다. 처음에는 출근마다 신랑이 아이를 데리고 5층까지 올라가고 퇴근 때 데리고 왔다. 아이가 점점 무거워지면서 쉽지 않았다.
출산휴가 중 친정의 이사를 알아보게 되었고 같은 아파트의 같은 동으로 계약을 하게 되었다. 순전히 아이를 보기 위해서..... 하지만 신랑은 계약하고 나서부터 표정이 좋지 않았다. 혼자 사는 그녀가 분명히 가만히 두지 않을 테니까. 처가살이도 아닌데 처가살이라며 아이를 자기가 보러 올 거라고 하고도 남을 테니까....
신랑은 들통 날때까지는 비밀로 하자고 했다. 같은 엘리베이터를 쓰는 라인인데 시댁 식구들이 오기라도 하면 친정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7년 가까이 ......
위아래로 살면서 애를 봐주는데도 말을 할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죄인 아닌 죄인처럼 모든게 거짓말 인생이 되어 버렸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걱정이 되었는데 ....
" 할머니 밑에 산다고 친할머니한테 얘기 하면 아마도 친할머니 집에 매주 가야 돼 "
이 한마디로 모든게 종결 되었다. 아이들도 가기 싫고 무서워 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녀는 근처에 친정이 사는지 모르고 10여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신랑은 2주마다 가서 자고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