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race Jul 08. 2019

선으로부터 下

공간에 감정을 불어넣는 선, 곡선  

곡선. 곡선은 어렵습니다.  그것은 마치 정해진 답이 없는 주관식 문제와 같죠. 

A부터 B지점까지의 도달할 수 있는 곡선의 가능성은 그야말로 infinity이니까요. 

just a few curve lines out of infinite possibilities

또, 곡선의 '곡'은 굽을 '곡(曲)'으로 말 그대로 직선의 방향을 틀어버리는 '변화'를 말합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예측을 빗나가게 하는 커브볼이며, 공간에선 시선의 전환을 일으키는 계기를 만들죠.  


곡선이 저에게 더더욱 어려운 이유는 이런 무한한 가능성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점과 그 선택이 가져오는 '변화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디자인은 'gut feeling(직감)'에서 나온다는 말을 듣습니다.  또, 그 직감을 믿으라는 말은 더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직감에 대한 확신은 어떻게 가지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름다운 곡선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인 것만 같습니다. 


이 고민은 현재 진행 중이긴 한데, 제 나름대로 한 가지 실낱같은 힌트를 찾아봅니다. 


곡선의 휘는 각도에 따라 그리고 그 곡선이 반복되는 정도에 따라 우리는 직선의 '속도'가 주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운동 에너지'를 느끼는데요.  일종의 '리듬감'이죠.  우리는 이 곡선의 운동 패턴이 어떻게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고요한 평온함부터 활동적인 명랑함이나 유쾌함, 여기서 더해지면 어지러움의 chaos까지 다양한 강도와 레인지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브라질 리오 데 자네이루의 Copacabana 해변가 보행로 디자인 by Robert Burle Marx

이전 글에서의 직선이 감정을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면, 저는 곡선이 다양한 감정을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직선의 긴장감을 완화시키는 부드러운 힘이 있고요.  그렇다면,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그것은 곡선이 우리가 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실제 자연의 모습과 더 근접한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리, 빛, 물의 파동이 만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고유의 웨이브를 닮았고,  또,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이 만들어내는 실루엣, 그 자유로운 선들의 어우러짐을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호수 앞에서, 바다 앞에서, 아니면 콘서트 장에서 어떤 감정에 이입되는 것은 그 공간이 발산하는 에너지, 그 고유의 파장에 우리가 공명하기 때문인 것과 같은 이치로 곡선이 우리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아래 그림은 제가 스티브 라이시(Steve Reich)의 '듀엣'이라는 곡을 들으며 그린 그림입니다. 화면으로 보면 그냥 노트에 낙서한 것 같지만 실제 한 12인용 되는 다이닝 테이블 위에 A0 (841 x 1189mm) 사이즈 종이를 놓고 그린 차콜 스케치입니다. 

이 스케치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생기는 감정을 선으로 표현하는 연습을 위해 시도했는데 결과적으로 만족합니다.  음악의 선율에 맞춰 팔 근육이 리드미컬하게 서로 하나가 되어 움직이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그래서, 한 번에 완성되지 못하고 분필 같은 차콜 서너 개가 모두 닳도록 그리고 그리다 나온 결과물이기에 애착이 가는 것도 있고, 이 과정을 통해 곡선이 공간과 감성을 엮는데 매우 효율적인 미디엄이라는데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곡선의 특징을 잘 활용했던 브라질의 조경 디자이너이자 화가였던 로베르토 부를레 막스(Roberto Burle Marx, 1909~1994)는 특히 남미의 자유롭고 playful한 감성을 디자인에 녹여내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개인적으로 그의 그림과 정원을 보고 있으면 당장 몸을 움직여 뛰어놀고 싶은 충동이 드는 에너지가 느껴지죠. 

Rooftop Garden Design, Ministry of Education and Health in Brazil by Roberto Burle Marx

지금까지 저는 미니멀리스트적인 그리고 utilitarian(실용)적인 직선들을 좋아해 왔고, 또 그런 조합으로 가득한 도시 환경에 대해 의심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엔 사실 이 삭막한 사각의 도시에서 필요한 것은 이런 곡선의 감성들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곡선을 다루는데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 또한, 저는 제 미세한 감정을 포착해내고 그것을 적절히 표현하는 일에 서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 둘은 전혀 다른 일이 아니라 하나의 일이라는 것.  결국 '직감'에 대한 확신은 이런 과정들이 자연스러워질 때 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 말이죠. 

아모레퍼시픽 본사 정원, 건물의 버티컬 라인과 유기적 선의 정원이 조화를 이룹니다.
작가의 이전글 선으로부터 上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