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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무 May 17. 2020

사택의 추억

대도시의 화려함을 포기 못 하는 취준생분들 참조하시길요~

꽃길에도 돌부리는 있다


공기업은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넘어지기 쉬운 큰 돌부리가 있다.  바로 '순환 근무'와 '지방 근무'이다.

더군다나 근래에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던 공공기관들의 본사가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지방 근무의 확률은 높아졌다.


나는 21년의 재직기간 동안 두 번의 지방생활을 했다. (감사하게도 행운의 케이스)

첫 번째는 입사 후 첫 발령지인 충남 당진에서였다. 같은 직군 입사 동기들의 발령지 중 그나마 가장 수도권과 가까운 곳이었다. 신입 교육 연수원에서 우리 직군 반장이라고 특별히 신경 써서 배치해 주었단다. 이런~. 고마워라.


수도권 내의 사업장으로 신입 사원이 배치받는다는 것은 엄청난 빽을 등에 진 능력자여야 했다(지금도 그렇지만).

사택은 당진 시내에 있는 일반 아파트였다. 회사에서 사택을 짓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기존 아파트를 구입하여 직원들에게 제공한다. 내게는 28평 벽산 아파트 ( 3, 화장실 2).

먼저 입사한 선배들이 안방과 베란다 딸린 방을 선점해 살고 있어고 나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있는 작은 방을 사용하게 되었다.

선배들은 전문대졸 공채 입사자들이어서 나이는 나보다 서너 살 어렸다. 한 친구는 전산, 또 다른 친구는 기계 직군이었다. (다행히 회사는 군대가 아니기에 나이가 '갑'이다)


그런데 거실에 있는 화장실을 사용하는데 담배 냄새가 났다. 우리 중 가장 어린 친구가 골초란다.  뭐 개인 기호이긴 하나  흡연자에게는 불쾌하다. 제발 본인 방에서만 피우라 했다. 그 자리에선 그러마 하더니 며칠 지나지 않아 화장실이 담배 냄새로 찌들었다.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등치 좋고 성깔 있어 보이는 그 친구는 조심히 접근해야 할 것 같았다. 한 집에 살면서 껄끄러우면 피곤해지니 말이다. 공동생활의 피로다.


어느 날, 주말이긴 했으나 집에 가지 않고 입사동기(지금의 남편)나기로 해서 당진에 머물고 있었다. 같은 회사 직원이 사는 앞집이 소란스럽다. 현관문 렌즈 구멍으로 보니 침대를 밖으로 빼내고 있었다. 이사 가나?

후에 같이 사는 동료에게 물어보니 사업소 내 커플인데 동거하다가 틀어져 여자가 나가는 것이라 했다. 남자 직원은 타지에서 발령받아 온 정규직 직원이었고 여자 직원은 그 지역에 유지의 딸로서 상용원(* 계약직)이었다. (*공기업은 주변 지역경제 활성화를 해 일부 주민들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기도 한.)

이 커플 말고도 같은 형태의 동거 커플들이 많았다.

고지식했던 나로서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두 번째 지방생활은 결혼 후 강릉에서다.

당진, 삼성동 본사를 거쳐 분당에서만 16년 차에 순환근무가 도래한 것이. 선입 선출로 선배들이 타  사업소로 전출되는 것을 지켜보다 드디어 내  순서가 된 것이다. (현재는 간부를 제외한 일반 직원들은 이 순환근무 규정에 적용되지 않는다. - 각 기관마다 다르니 면밀히 검토하시길)

기혼자들은 자녀들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한다. 아이들이 어리고 외벌이이면 온 가족이 새로운 발령지로 가지만

내 경우처럼 아이들이 큰 상태에서는 홀로 떠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엄마가 가족들을 연고지에 남기고 홀로 타 지역으로 떠난다는 것은 여러 가지 불안을 불러온다.


강릉의 사택은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회사와 가깝고 살림살이가 구비되어 있으나 1980년대에 지어진 오래된 사택과 강릉 시내 번화가이기는 하나 살림을 스스로 구비해야 하는 아파트와 오피스텔이었다. 운전이 서툴고 집순이인 나는 굳이 번화가에 둥지를 틀 필요가 없어 회사 근처 사택을 선택했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직원들이 시내의 사택을 원하기 때문에 순번을 기다려야 하기도 했다.

이 번에는 혼자 쓸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연식을 자랑하는 집이었으므로 오래 살고 있던 생물들이 나를 반겼다. 나방과 돈벌레들. 나방을 박멸하는데 한 달이 걸렸고 뒷 베란다의 돈벌레는 워낙 숨어있다 밤에만 나오는 아이들이라 없애기를 포기했다. 그래, 나 혼자 외로운데 니들이라도.


주말에 당직이 걸리면 그 주는 집에 가지 못한다.

토요일 당직이 있던 금요일 밤, 잠을 자고 있는데 윗 집이 시끄러웠다. 그들도 집에 안 가고 술파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려니 했다. 12시면 조용해지겠지. 그런데 새벽 1시, 2시. 웃고 떠들고 난리 났다. 연식을 자랑하는 사택에 방음이 잘 되어있을 리 없었다. 귀찮아서 항의하러 올라가지 않았는데 3시쯤 돼서야 조용해졌다. 나는 그 소란스러움에 잠을 못 자고 당직을 섰다.

다음 주 월요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위층 직원들을 찾아 뭐라 했다. 꼰대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공동생활의 수칙은 타인에 대한 배려이지 않는가. 그 뒤론 단 한 번도 윗집에서 소란스러움이 없었다. 역시 짬밥이 통했다.


공기업은 유연근무제가 활성화되어있다. 나도 목요일까지는 매일 9시간을 근무하고 금요일은 오전 근무만 하고는 분당 우리 집으로 갔다. 수도권에 가족들이 있는 대부분의 직원들이 그렇게 생활한다. 

가족들과 상봉하고 다시 강릉으로 돌아가야 하는 일요일 오후는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는 일반 직장인들의 일요일 오후보다 더 심란하다. 엄마일 경우는 더더욱.


미혼의 직원들은 사업소 내 커플도 있었고 특히 남자 직원들은 그 지역 선생님들과 미팅을 자주 하고 결혼까지 하는 걸 봤다. 인연은 생활하고 있는 공간 속에서 생기기 쉬운 법.

아! 여기에 사택 생활의 큰 장점이 있다. 돈 없이도 신혼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 기혼 직원들에게 최장 7년까지 시내 사택용 아파트 무료 제공! (아쉽게도 수도권 아닌 지방 사업소만 해당)-이것도 각 기관마다 다르다.


공기업에서 3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의 이직이나 중간 퇴사는 극히 드물다 (입사 초기 지방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하는 경우는 봤어도). 그 극히 드문 경우가 나다. 21년간 만족하며 다니던 곳에서 이 돌부리에 넘어져 피가 났다. (참조- '21년간 사용한 철밥통을 버리다')



주저리주저리 나의 지방 생활에 대한 추억 혹은 푸념을 들어 놓았지만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공기업(넓게는 공공기관)은 정년 보장 등 단연 장점이 많다.
그러나 지방 근무, 순환 근무라는 돌부리가 있으므로 각오하시라.
 (특히 대도시 생활의 화려함을 포기 못하시는 분들)
지방 근무가 대수랴? 일단 붙고 보자 하지 마시고
공공기관 중에서도 자신의 연고지 근처에 사업소가 많은 곳을 택하시라.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최근 공기업들이 채용을 시작했다. 공기업의 기능 중 '일자리 증대'는 중요한 부분이다. 공룡기업, 복지부동 등 부정의 키워들도 많지만 이와 같은 공기업의 순기능도 인지해 주시길.

(그곳을 뛰쳐나온 사람이 별소리를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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