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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무 May 24. 2020

무례한 선배의 비웃음이 약이 되는 시간

그래 내 보여주리라

제가 다니던 회사는 일종의 기술회사여서 남자들이 다수를 차지했습니다.
더군다나 차장 이상의 간부들은 거의 남자였지요.
옆 부서 한 남자 선배가 담배 태우며

너처럼 약해 빠진 여자들은 차장 되기 힘들 거야. 독해야 하지’ 말하데요. 

나를 띄엄띄엄 알고 있군 생각하면서 그냥 웃어넘겼지요. 차장이라는 간판에 별 관심이 없었거든요.
 
몇 해 지나 후배들이 하나 둘 간부시험을 보고 차장이 되데요.
그러면서 나를 얕보며 담배 피우던 그 선배도 생각이 났어요.
차장이 되면 위아래로 치이고 일에 치인다는 것을 알면서도
후배가 상사로 올까 봐, 그리고 선배의 비웃음이 계속 울려 승급 시험공부를 하게 되었지요.

평균보다 늦된 공부라 힘들었죠. 정말 나이 먹으면 인지력도 떨어지데요.
안 되는 머리 싸매고 끙끙거리며 공부를 했죠.
이렇게 고생해서 더 고생스러운 자리로 왜 갈라고 그래 하면서도
자꾸 그 담배 선배의 비아냥거림이 떠오르는 거예요.

그래 내 보여 주리라.

봄, 여름 보내고 어느 가을날 한 서린 공부는 결실을 맺었죠.
합격자 중 노땅은 10%도 안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저였죠.
많은 사람들이 놀랬어요. 제가 야망이 있는 줄 몰랐데요. 야망은 아니고..
그냥 보여주고 싶었어요. 나를 띄엄띄엄 알던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의 딸에게.


햇빛 그을린 너의 얕은 비웃음  가슴에 꽂혀
 
빛 거둔 달 밑 밤을 뚫고 앉아서  칼을 갈았네
 
나비 번데기  두껀 옷 벗고 날아  칼춤 추는데
 
무심(無心) 베이고  너님 웃음 그치니  내 낯 빛나네


(위의 이야기를 하이쿠 운율 5.7.5로 만든 사행시입니다. 그렇다고 시 쓰는 사람은 아닙니다 ^^)





무례한 말들은 생각보다 깊숙이 꽂혀 오래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나의 의지를 불끈 타오르게 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기도 하더라고요.

공부하기 너무 힘들 때마다 그 선배의 비웃음을 생각하며 버텨냈죠.

그 선배에게 한방 날리고 싶었고 여자 후배들에게는 도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어요.

거친 회사와 육아 때문에 힘들지만 나이 든 선배도 해냈으니 너희도 해보라고.


그 후 많은 여자 후배들이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여성 인력을 양성시키라는 정부 방침에 따라 회사의 독려도 있었지만

제가 하나의 작은 씨앗이 되지 않았을까 자부해 보기도 합니다.


제가 다니던 회사는 공공기관임에도 불구하고 부장 이상의 여성 간부는 두 세명에 불과했습니다.

지금 저는 개인 사정상 어쩔 수 없이 퇴사를 하였지만

아직도 그 두꺼운 유리천장을 두드리며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선배와 후배들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유리천장이라는 말이 쓰이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녔으면 좋겠습니다.


상대방의 기분은 시하고 례한 말들을 심히 내뱉는 사람들도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그 무례함에 한 방 날리는 사이다의 이야기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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