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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ndmer Aug 17. 2022

한국의 시간

4차 산업혁명은 우리 스스로가 열어가는 길이다.


[ 글을 시작하기 전에 ]


몇 번의 산업 혁명을 거쳐 인류는 눈부신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런데 모든 국가가 산업 혁명의 이득을 누린 것은 아니다. 


산업혁명의 이득을 누린 국가는 그 문을 먼저 연 국가들이 대부분이다. 1차 산업혁명의 시작을 알린 영국은 몇 세기 동안 막대한 부를 창출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그때 쌓아 올린 부를 기반으로 자손들이 대대손손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후 연이어 나타나게 된 2,3차 산업혁명의 주도적인 국가였던 미국은 절대적인 경제 대국이면 모든 국가를 선도하는 기술과 산업의 결정체와 같은 국가이다. 


여기에 더해 지금까지의 기술적인 축적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도 미국이 주도해서 시작될 것이라는 데에는 많은 나라들이 이견을 달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산업혁명의 주도적인 국가들만 변화된 경제 발전의 혜택을 누린 것은 아니다. 


산업화에 성공한 후발국들도 선진국 못지않은 발전을 이루어냈고 지금도 강대국으로써 지위를 놓치지 않고 있는 국가들이 많다. 한국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발전은 과거에 벌어진 일이니 그렇다고 한다면 앞으로 벌어진 산업 변화, 사업 혁명에서 한국은 어떤 포지션을 차지하고 어떤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인지 공부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과거 상황과 전 세계의 산업 변화의 흐름을 복합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 정리한 한국의 시간이라는 책에서는 어떤 변화를 말해주고 있는지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한 번 들여다보도록 하자. 


Ⅰ. 같은 인식, 다른 대처


19세기 서세동점의 시대,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일본에 가서 통상을 요청했다. 그러나 일본 막부는 쇄국을 주창하며 통상을 거절했다. 그러자 페리 제독은 도쿄만에서 함포를 쏘며 화력시험을 보였다. 


다시 올 때까지 개국하지 않으면 쳐들어간다는 일종의 무력시위였다. 당시 막부에 올라간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일본 포의 사정거리는 800m에 불과하지만 양이의 함포는 우리보다 서너 배 멀리 나갑니다. 


13년 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프랑스의 함대가 강화도를 점령하여 병인양요를 일으켰다. 물론 조선에서 프랑스 선교사가 처형된 것이 표면적 이유였지만 사실은 통상을 요구하러 온 것이었다. 


양헌수 장군의 병인 일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우리 총은 100보를 나가는데 양이의 총은 500보를 나갑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무기 성능에 압도적인 차이가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서양의 제국주의자들이 동양에 물밀 듯 밀려올 때 일본과 조선이 받은 충격은 동일했다. 엄청난 기술의 차이를 인식했지만 그 대처방법은 전혀 달랐다. 


이 순간 경술국치라는 비극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에서는 객관적 전력 차이를 무시한 채 무조건 달려드는 사람을 무대뽀라고 불렀다. 총도 없이 달려들어서 개죽음당하는 바보가 바로 무대뽀인 셈이다. 


Ⅱ. 산업혁명을 거부한 나라의 운명


일본은 1853년에 페리 제독의 무력시위에 굴복해서 개국당한 후 미일 수호통상조약으로 관세 주권을 상실한다. 그러나 화혼 양재 정신으로 제도를 개혁해 산업혁명에 성공했다. 


그러나 조선 주류사회는 위정척사로 산업혁명을 전면적으로 배격하였다. 그 결과 임오군란 때 대원군이 청나라에 납치당하는가 하면 김옥균과 청년 개화파가 주도한 갑신정변도 청나라 군대에 진압되어 3일 천하로 끝났다. 


산업혁명을 전면 거부한 조선은 산업혁명을 완전히 성공시킨 일제의 속국이 되어 36년간 지배를 받게 되었다. 


Ⅲ. 맬서스의 덫


17세기 이전까지 인류는 전 인구의 80% 이상이 쉼 없이 농업 생산에 전념하면서도 배고픔이라는 원초적 욕구로부터 해방된 적이 없었다. 그 이유는 농업사회가 가진 생태적 한계 때문이었다. 


일정한 면적의 토지에서 수확할 수 있는 곡식의 생산량에는 한계가 있다. 농부가 노동력을 추가로 투입해 새로운 농지를 개간한다고 해도 조건이 나쁜 한계농지의 생산 효율은 더욱 낮아지게 마련이다. 


이를 미국의 농업경제학자 코크란은 농업의 트레드밀 효과라고 불렀다.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제자리를 벗어날 수 없는 트레드밀에 비유한 것이다. 그래서 농업사회의 생산은 노동력 투입 대비 산출이 체감하고, 그 결과 경제는 성장이 점점 정체한다. 


영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는 이런 농업사회의 특징을 덫으로 표현했다. 농업사회에서는 할아버지 때나 아들, 손자 때나 삶의 질 측면에서 거의 변화가 없는 삶을 반복하였다. 겨우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궁핍한 수준을 면하지 못했다. 


이렇듯 농업경제의 가장 큰 특징은 성장이 감속하여 결국 정체된다는 것이다. 


 Ⅳ. 감속 사회와 가속 사회


산업혁명은 인류사회를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시켰다. 그 가장 큰 특징은 감속 경제가 가속 경제로 변했다는 점이다. 


한 여인이 원통형의 물레를 돌리고 있다. 철컥철컥 소리를 내며 8개의 방추에서 동시에 일정한 간격으로 실이 감겨 나온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일일이 손으로 한 가닥 한 가닥 뽑아내던 일이었다. 


덕분에 작업 속도가 8배 이상 빨라졌고 생산성이 250배 이상 증가했다. 그뿐인가. 말이나 사람이 실어 나르던 짐을 증기기관차가 한 번에 실어 나르면서 운송속도는 수십 배 빨라지고 운송량은 수백 배 많아졌다. 


이것이 바로 가속이다. 물레의 작업 속도가 8배 빨라지고 생산성이 250배나 증가한 것이 바로 가속이다. 인간의 노동을 기계로 대체해서 대량생산 체제를 만들어낸 것이 바로 가속이다. 


혁명이 아니라 산업화라고?


흔히 혁명이라고 하면 들불처럼 번져 수년 만에 완성된 프랑스 대혁명 같은 시민혁명을 연상한다. 그래서 100여 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이루어진 산업혁명이 혁명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산업사회의 경제성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하는 속성이 있기에 초기에는 경제 성장 속도가 느리다. 후기에 가서야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기에 초기의 점진적인 변화만 보고 혁명적이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농업사회의 감속 유전자가 산업사회의 가속 유전자로 바뀌었다는 보다 근본적이고 원천적인 변화라는 점에서 산업혁명은 분명히 혁명이다. 


경제성장 동력이 토지와 노동에서 자본과 기술로 바뀐 것이 바로 산업혁명이고, 감속하던 사회가 가속하는 사회로 바뀐 것이 바로 산업혁명이다. 


Ⅴ. 2차 대분기가 온다. 


제조업, 즉 아톰 인더스트리로 대표되는 산업사회는 열심히 일할수록 더 큰 보상을 받는 양적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는 가속하는 사회였다. 그런데 산업사회에 비트 인더스트리가 추가된 지식산업사회는 열심히 일만 한다고 성과가 나는 사회가 아니다. 


창의적으로 일해야 비로소 더더욱 큰 보상을 받는 질적 지식기반 경제가 작용하는 더 빨리 가속하는 사회다.

 

이 지식산업혁명을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라 부르고, 미국에서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독일에서는 인더스트리 4.0, 일본에서는 소사이어티 5.0, 중국에서는 메이드 인 차이나 2025라 부르고 있다.


단지 용도만 다를 뿐 현대 산업사회를 미래 지식기반 사회로 바꿀 대혁신이라는 의미에서는 대동소이하다. 


4차 산업혁명은 언제, 어떻게 일어나는가? 선발국의 산업혁명이든 후발국의 산업혁명이든 산업혁명은 저절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노력해서 쟁취한 것이었다. 


영국에서 최초로 일어난 산업혁명도 그냥 저절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영국인들이 정책 적으로 일으킨 것이었다. 4차 산업혁명도 마찬가지다. 


많은 이들이 내게 묻는다. 우리나라에서도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납니까? 나는 이렇게 답한다.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일으킬 수 있을 따름이다. 


Ⅵ. 길이 열리면 시대가 열린다. 


새로운 길이 열리지 않고 새로운 시대가 열린 적은 없었다. 새로운 길을 통해 단절된 문명과 문명이 만나면 공진이 일어나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래서 새로운 길에는 새로운 에너지가 흐른다.


그러면 새로운 길은 어떻게 열릴까? 바다에서 생선을 잡는 어부와 산에서 토끼를 잡는 사냥꾼이 있다. 동일하게 생선 1마리 잡는 데 1시간, 토끼 1마리 잡는 데 1시간 걸린다. 이를 기반 가치라고 한다. 이때 생선 1마리와 토끼 1마리는 1대 1로 교환이 가능하다. 


그런데 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산으로 옮기는 데 1시간이 걸렸다면, 산에서 생선 1마리의 가치는 총 2시간을 투입했기 때문에 2대 1로 교환하게 된다. 


기반 가치에 생선의 확장 가치가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생선 1마리를 9시간 걸려 멀리 옮겼다면 10대 1로 교환될 것이다. 바다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생선을 먹고자 하는 이는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이들일 것이다. 


상품의 희소성도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래서 10배가 아니라 30배라도 값을 지불할 의사가 있다. 


이처럼 최종 소비자의 지불의사가 상품가치의 척도다. 기반 가치가 하나의 상품을 만드는 데 노력에 비례한 가치라면 확장 가치는 그것을 생산지역으로부터 소비지역으로 옮기는 데 노력에 비례하여 추가된 가치다. 


생산은 많은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데 운송은 엄청난 가치를 창출한다. 농업생산은 생산 규모가 커질수록 자연조건이나 생산설비의 한계로 인해 수익이 체감하여 이윤 증가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운송 및 보관 비용은 규모의 경제로 평균 비용이 하락하여 이윤 증가에 크게 기여한다. 


농민 즉, 기반 가치 창출자는 생산 규모를 늘려도 산출 체감으로 평균 비용이 증가하기 십상이지만 상인 즉, 확장 가치 창출자는 높은 가격에 의한 초과이윤에 규모의 경제로 인한 비용 절감까지 가능하다. 


그래서 농민은 항상 가난한데 상인은 부유하고 농업국은 항상 빈국인데 상업국은 부국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길이 열리면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원리이다. 


인류 문명사에 크게 3번의 새로운 길이 열렸다. 그리고 길을 앞서간 국가와 민족은 새 시대의 주인공이 되었다. 실크로드는 유라시아 문명을 열었고 향신료 루트는 중동과 지중해 문명을 열었다. 


그리고 대서양 항로는 현대 산업문명의 시대를 열었다. 처음 열린 길은 실크로드였다. 동북아시아와 로마를 동서로 연결하는 육상 무역로로 중국의 비단이 서역으로 운반되었기 때문에 비단길이라고 불렀다. 


그다음 향신료 루트는 검은 황금이라 불리던 후추, 정향, 육두구, 침향 계피 등의 향신료들이 중동지역을 거쳐 알렉산드리아와 콘스탄티노플에서 지중해 상인에 넘겨졌다. 이 향신료 루트는 중동 무슬림 지역을 통해 지중해 크리스천 지역으로 연결되었다. 


이후 전성기를 맞이한 이슬람 문명은 르네상스 문화의 기반을 제공했다. 이처럼 향신료 길이 열리면서 인류문명의 중심이 동북아에서 중동과 지중해 지역으로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윈스턴 처칠은 한반도만 한 섬나라에서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대영제국의 마지막 영광의 지도자다. 그는 비관론자는 모든 기회에서 역경을 보고, 낙관론자는 모든 역경에서 기회를 본다고 했다. 


비관론이 실패의 전주곡이라면 낙관론은 성공을 향한 행진곡이다. 지구온난화와 북극항로의 개통, 이것이 위기인지 기회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 글을 마치며 ]


이 책은 상당히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어 몇 번을 다시 곱씹어서 읽어야 할 만큼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각각의 내용을 다 정리할 수 없다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한 가지를 꼽고 마무리하고 싶다. 


그것은 산업 혁명은 감속하는 사회와 가속하는 사회를 극명하게 나눈다는 것이다. 


가속하는 사회는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어제 1달러의 생산성을 만들어냈는데 내일은 2달러 그다음 날은 4달러 이런 식으로 성장을 한다면 가속은 2배가 된다. 


이런 성장을 하는 것은 말 그대로 혁명이라고 부를 만한 일이 아니면 발생하기 어렵다. 어제와 동일한 생산량이 유지되는 것은 가속은 1배가 되어서 늘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속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생산성이 지속적으로 발생이 되어야 한다. 


대표적인 예로 농업을 예로 들 수 있다. 정해져 있는 경작지에서 쌀이나 밀을 수확하게 된다면 투입된 노동력에 비례해서 생산량이 증가될 수 있지만 이는 인당 생산성은 동일한 수준일 뿐 증가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만약 농업에서 비약적인 생산성을 원한다면 경작지를 대폭 늘리거나 투입되는 인력을 늘리면서도 인건비는 줄이는 형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혁명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단지 성장의 기울이는 기껏해야 1배가 될 뿐 가속하는 산업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가속하는 사회는 결국 새로운 시도와 도전 모험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말과 동일한다. 기존의 것을 타파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 가속이라는 세계이다. 


첫 머리말에서 예를 든 것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쇄국정책을 통해서 외국의 문물이 들어오는 것을 일시적으로 막았지만 이는 결국 더 발전된 산업으로 무너져 내리게 되었을 뿐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4차 산업혁명의 시대도 이와 유사하다. 앞으로의 산업 변화는 노동집약적인 산업에서 지식집약적인 산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인간의 지식이 기계로 이전되어 동일한 정신적 노동을 누군가가 대신해주는 서비스를 쉽게 이용하는 시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대적인 변화에 발맞추어 나가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예전의 아픈 역사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꼭 국가적인 것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부분에서도 동일하게 고민하고 연구해야 한다. 개인의 성장도 가속하지 않으면 정체되고 궁극적으로는 퇴보하게 된다. 


이 과정을 몇 번만 거치게 되면 우리의 시간은 다른 이들의 가속으로 인해서 후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가속의 시대에 나만 문을 닫고 마이웨이를 가는 것이 나쁘지 않을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부러워 보일 수 있지만 결국 더 큰 격차로 인해서 미래에는 극복할 수 없는 차이로 발생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참고 도서 : 한국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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