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원유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자.

by Grandmer


이란의 역사는 석유의 발견과 이를 차지하려는 외세 (영국·미국)의 개입, 그리고 그에 저항하는 민족주의가 뒤엉킨 한 편의 거대한 서사시와 같다.


네 가지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란 현대사의 흐름을 정리해 보자.


1. 최초의 원유 발견과 영국의 독점 (1901~1908)


이란 석유 잔혹사는 20세기 초, 카자르 왕조의 무능함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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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녹스 다시(William Knox D'Arcy)의 양보권 : 1901년, 영국 사업가 다시는 이란 국왕으로부터 60년간 이란 전역의 석유 채굴권을 독점하는 대가로 적은 액수의 돈을 지불하는 파격적인 계약을 맺는다.


마스지드 술레이만(Masjed Soleyman)의 발견 : 1908년, 마침내 이란 남서부에서 중동 최초의 유전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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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영국 정부가 대주주가 된 앵글로-퍼시픽 석유회사(APOC, 현 BP의 전신) 설립으로 이어졌고, 영국 해군의 연료 공급원이 되어 대영제국의 핵심 자산이 된다.


2. 영국과의 갈등과 모사데그의 국유화 (1940년대~1950년대 초)


이란인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나오는 석유 이익의 대부분을 영국이 가져가는 것에 분노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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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사데그의 등장 : 1951년, 민족주의 지도자 모하마드 모사데그가 총리에 취임하며 석유 국유화를 전격 선언한다.


영국은 이에 반발해 이란 석유 금수 조치(아바단 위기)를 내리고 경제 봉쇄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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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절박함 : 영국은 석유 이권을 잃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고, 이는 결국 미국의 개입을 부르는 계기가 된다.


3. 팔라비 왕조와 미국의 개입 : 아약스 작전 (1953)


미국은 처음엔 중재자 역할을 하려 했으나, 이란이 공산화될 것을 우려해 영국의 손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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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1953) : 미 CIA와 영국 MI6는 아약스 작전(Operation Ajax)을 통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모사데그 총리를 축출하고, 해외로 도피했던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국왕을 복귀시킨다.


친미 왕정의 강화 : 이때부터 팔라비 국왕은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강력한 독재 체제를 구축한다.


미국은 이란 석유 이권의 40%를 챙기며 중동 내 최대 우방국을 확보하게 된다.


4. 팔라비 왕조의 '백색 혁명'과 미국 관계 (1960년대~1970년대)


급격한 근대화 : 팔라비 국왕은 석유 자본을 바탕으로 백색 혁명이라는 강력한 서구화·근대화 정책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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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참정권 부여, 토지 개혁 등이 이뤄졌으나 이 과정에서 이슬람 전통 세력과의 마찰이 심화되었다.


미국의 헌신적 파트너 : 이란은 중동의 경찰 역할을 하며 미국의 최첨단 무기(F-14 전투기 등)를 수입하는 최대 고객이 되었다.


하지만 석유 수출로 번 돈이 왕실과 일부 특권층에게만 집중되자 민중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5. 이슬람 혁명과 관계의 파탄 (1979~현재)


1979년 이슬람 혁명 : 호메이니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세력이 팔라비 왕정을 무너뜨렸다.


위대한 사탄으로 규정된 미국과의 관계는 단절되었고, 테헤란 미 대사관 인질 사건으로 양국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석유의 무기화와 제재 : 혁명 이후 이란은 석유를 서방에 대항하는 무기로 활용하려 했으나, 미국은 강력한 경제 제재로 이란의 석유 수출길을 막으며 대응해 왔다.


이란 석유의 역사를 간략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908년 중동 최초 유전 발견 (영국 독점 시작)


1951년 석유 국유화 선언 (모사데그 총리)


1953년 CIA 주도 쿠데타 (팔라비 왕정 복귀, 미국 개입 본격화)


1979년 이슬람 혁명 (친미 왕정 붕괴, 미국과의 적대 관계 시작)


이란의 석유 역사는 자원을 가진 나라가 주권을 지키려 할 때 외세와 어떻게 충돌하는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그리고 기억할 것은 이란의 원유는 영국이 처음에 이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란이 석유 국유화를 선언하며 영국과 대립하게 되었고 미국의 개입 이후 미국과 이란의 외교적인 충돌이 시작되게 된 것이다.


이란은 중동에서 대국에 지리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주요국에 해당되어 이란의 위협은 사우디와 이스라엘에게 위협이 되었다.


결국 이에 대응하는 사우디-이스라엘-미국의 밀착이 국제 유가와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직접적이고 파괴적인 것이다.


1. 호르무즈 해협의 리스크와 가격 프리미엄


이란은 전 세계 석유 해상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할 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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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 위협 : 이란과 이스라엘 간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 때마다 이란은 해협 봉쇄 카드를 꺼내 들었다.


실제 봉쇄되지 않더라도 안보 불안감만으로 국제 유가(WTI, 브렌트유)에 배럴당 10~20달러의 전쟁 프리미엄이 즉각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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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의 대안 노선 : 사우디가 IMEC 프로젝트를 통해 지상 철도와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려는 이유 중 하나도 이 위험한 해협을 거치지 않고 홍해나 지중해로 원유와 가스를 바로 보내기 위함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유가 변동성을 낮추는 요인이 되지만 이란의 영향력이 축소되는 결과도 낳게 된다.


2. 사우디의 스윙 프로듀서 역할과 미국의 전략


미국은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사우디의 증산 능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사우디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생산 단가와 막대한 여유 생산 능력을 갖춘 스윙 프로듀서(Swing Producer)다.


미국은 사우디와의 안보 조약을 강화하는 대가로, 이란의 위협으로 유가가 폭등할 때 사우디가 공급량을 늘려 시장을 안정시켜 주기를 기대한다.


미국이 이란의 석유 수출을 강력히 제재할 수 있는 힘은 결국 사우디나 UAE가 그 빈자리를 메워줄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들의 관계가 끈끈할수록 이란의 석유 무기화 전략은 힘을 잃게 된다.


3. 에너지 패러다임의 전환 : 수소와 천연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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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우디-이스라엘-미국의 협력은 원유를 넘어 차세대 에너지로 확장되고 있다.


천연가스 동맹 : 이스라엘은 지중해 연안(레비아탄 유전 등)에서 막대한 천연가스를 발견했다.


IMEC을 통해 이 가스가 중동 철도를 타고 유럽으로 향하게 되면, 러시아산 가스에 의존하던 유럽의 에너지 지도가 완전히 바뀌게 된다.


그린 수소 허브 : 사우디는 포스트 오일 시대를 대비해 '그린 수소' 생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스라엘의 하이-테크 수전해 기술과 사우디의 광활한 태양광 부지가 만나 유럽으로 연결되는 수소 고속도로가 완성되면, 원유 가격에 일희일비하던 시대가 저물 수도 있다.


에너지 시장은 결국 석유 의존도 영향으로 낮추는 것으로 발전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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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해 보면 단기적으로는 이란 이스라엘 충돌 및 호르무즈 봉쇄 위기는 유가 급등을 가지고 왔고 이는 불확실성이 증가되면서 발생되었다.


중기적으로는 사우디의 증산 공조 및 미국과의 안보 밀착으로 인해서 유가 하방이 될 것이고 이는 공급 안정에서 기인한다.


결국 장기적으로는 유가 하방을 유도해서 석유 의존도를 감소시키고 에너지 안보를 위한 IMEC를 통해 가스, 수소 에너지로 에너지원이 다각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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