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섬나라라는 지리적 특성을 바탕으로 해를 품은 제국을 건설하며 조선업의 근대적 기틀을 마련한 국가이다.
영국 조선업의 역사는 곧 전 세계 해양 패권의 이동 경로와 궤를 같이한다.
1. 대항해 시대와 목선(Wooden Ship)의 전성기 (16~18세기)
영국 조선업의 기초는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한 목조 범선제작에서 시작되었다.
엘리자베스 1세 시기에는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기 위해 더 빠르고 기동성이 좋은 군함을 제작하며 기술력을 쌓았다.
식민지 확장을 위해 대량의 상선이 필요해졌고, 런던의 템스강 유역과 리버풀 등을 중심으로 조선소가 번성했다.
이때의 조선업은 고도의 숙련된 목공 기술에 의존하는 장인 중심 체제였다.
2. 증기선과 철강선: 영국의 독주 (19세기 산업혁명)
영국이 세계 조선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며 절대적인 강자로 군림했던 황금기는 증기선과 철강선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증기 기관의 발명으로 돛(바람)이 아닌 엔진의 힘으로 움직이는 배가 등장했다.
나무에서 철(Iron), 그리고 강철(Steel)로 선체 재료가 바뀌었다.
영국은 당시 세계 최고의 제철 기술과 석탄 자원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이 당시 이점바드 킹덤 브루넬(Isambard Kingdom Brunel)은 SS Great Britain 등을 설계하며 현대적 조선 공학의 문을 열었다.
3. 세계 대전과 기술적 도약 (20세기 초중반)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며 영국 조선소들은 군함 건조의 핵심 기지 역할을 수행했다.
독일의 유보트(U-boat)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선박을 더 빨리, 더 많이 찍어내는 생산 방식이 도입되었다.
선체를 철판으로 이어 붙일 때 망치질(리벳)을 하던 방식에서 용접 방식으로 전환되며 건조 속도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4. 쇠퇴와 구조조정 (20세기 후반 ~ 현재)
1950년대 이후 영국 조선업은 급격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1960년대 일본, 1970~80년대 한국, 이후 중국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저렴한 인건비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시장을 잠식했다.
영국 조선소들은 노후화된 설비와 높은 임금, 잦은 노사 갈등으로 인해 상선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완전히 잃었다.
현재 영국 조선업은 일반 상선보다는 고부가가치 특수선이나 항공모함(퀸 엘리자베스급), 원자력 잠수함등 국방 및 첨단 기술 중심의 소수 정예 체제로 유지되고 있다.
영국의 조선업 쇠퇴는 한국이 세계 1위 조선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있어 단순한 시장 빈자리 이상의 결정적인 기술적·금융적 토대를 제공했다.
1970년대 초,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권 지폐로 차관을 빌려온 유명한 일화의 배경에도 바로 영국의 도움이 있었다.
그럼 한국 조선업의 성장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 알아보자.
1. 금융의 문을 열어준 영국의 신용
한국이 조선소도 없는 상태에서 거대 유조선 수주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영국의 금융 네트워크 덕분이었다.
정주영 회장은 영국의 선박 설계·컨설팅 회사인 A&P 애플도어(A&P Appledore)의 찰스 롱보텀 회장을 설득해 추천서를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영국 바클레이스 은행에서 조선소 건립을 위한 차관을 도입할 수 있었다.
당시 영국 정부(ECGD)는 자국 조선업이 쇠퇴함에 따라 관련 엔지니어링 및 금융 서비스 수출을 장려하고 있었고, 이것이 한국의 신규 조선소 건설 자금줄이 되었다.
2. 암묵지(Tacit Knowledge)의 전수
영국 조선업이 쇠퇴하면서 일자리를 잃거나 새로운 기회를 찾던 영국의 숙련된 기술자들이 한국으로 건너와 핵심 노하우를 전수했다.
현대중공업은 설립 초기, 스코틀랜드의 스콧 리스고(Scott Lithgow) 조선소로 연수생들을 보냈다.
한국 기술자들은 그곳에서 도면 보는 법부터 용접, 조립 공정까지 영국 조선업의 정수를 직접 배웠다.
A&P 애플도어는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의 설계와 배치(Layout)를 자문했다.
당시 영국에서 개발된 효율적인 공장형 조선소 모델이 한국에 이식되면서, 한국은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현대적인 설비를 갖추고 시작할 수 있었다.
3. 시장 주도권의 자연스러운 이동
영국이 고비용 구조와 노사 갈등으로 상선 시장에서 밀려나면서 발생한 거대한 공백을 한국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영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노후화된 설비로 머뭇거릴 때, 한국은 영국의 기술을 바탕으로 더 큰 유조선(VLCC)을 더 빨리 건조하는 능력을 선보이며 전 세계 선주들의 신뢰를 얻었다.
현재 영국은 항공모함이나 잠수함 같은 방산 위주로 재편되었고, 한국은 그들이 가졌던 대형 상선 및 특수선 제조 능력을 이어받아 더욱 고도화시켰다.
결과적으로 영국의 쇠퇴는 한국에게 선진 기술의 이식과 금융의 사다리 역할을 동시에 해주었다.
이후 현재 조선업은 한국의 주요 산업 중에 하나로 발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