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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찬재 May 09. 2019

엄마에게 너무도 많은 걸 잘못했다

그때 왜 그랬는지 아득하기만 하다.

ⓒ 이찬재

어머니, 우리 어머니


나는 어머니께 꽃을 드렸던 기억이 없어. 지금도 어버이날에 부르는 노래는 끝까지 아니, 2절까지도 부를 수 있는데 말이야. 

무언가 생각이 잘 안 날 때면 종종 ‘엄마한테 물어봐야지’ 하다가 이내 어머니가 아주 오래전 돌아가셨다는 걸 깨닫고 소스라친다. 어머니께 너무도 많은 걸 잘못한 나, 그때 왜 그랬는지 아득하기만 하다. 그리운 어머니.



ⓒ 이찬재

아버지에 대한 회상


우리 식구는 1951년 1월 한겨울, 전쟁을 피해 서울을 떠나야 했다. 아무 말없이 종일 걷던 피란민들은 밤이 되자 잠을 자야 했는데, 잘 곳이 있었겠니? 눈 덮인 들판에서 자야 했단다. 아버지는 날 당신의 배 위에 올려놓으셨지. 그때를 생각하며 때때로 중얼거린다. 

“아버지, 아버지가 얼마나 춥고 힘드셨을지 그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요? 여덟 살이나 되었었는데요! 왜 그날 밤이 이리도 기억에 사무치게 남아 있는 걸까요?”



ⓒ 이찬재

어머니


50년도 더 지난 고등학생 때 이야기.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늘 그렇듯 어머니를 찾아 안방 문을 열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누워 계셨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빙 둘러 있더구나. 좀처럼 눕지 않는 어머니여서 걱정되었지만 ‘아, 엄마가 아프구나! 많이 아픈가 봐’ 하고는 말없이 문을 닫았다. 몇 년이 지난 후, 어머니는 그날의 일을 며느리에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말 없는 아들인 건 알지만 너무 섭섭했다고, 그래서 너무 슬펐었다고. 

“아, 글쎄, 찬재가 날 보더니 그냥 문을 닫더라.”

그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지금이라도 어머니께 용서를 구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 이찬재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아버지


어느 날, 길을 걷다 칼을 갈아주는 사십 대의 한 남자를 보았다. 발로는 바퀴를 돌리면서, 두 손으로는 칼을 잡고, 입으로는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남자. 그에게 다가가 하루에 몇 개의 칼을 가느냐고 물었다. 여덟 개 혹은 열 개라고 답하는 그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칼 한 개 가는 데 얼마를 받느냐고는 차마 묻지 못했다.

그는 누군가의 아들일 것이고, 누군가의 아버지일 것이다. 브라질에서는 8월 둘째 주 일요일을 아버지의 날로 정해두었다. 아버지를 안아주는 날. 그것으로 충분할까마는 아버지는 그것만으로도 얼굴이 환해지겠지…….



ⓒ 이찬재

너희가 무척 그립다


알뚤, 너는 원숭이해에 태어났지? 너희가 떠난 지 벌써 1년이 되어가는 구나. 낯선 데 가서 놀라지는 않았니? 거의 매일 영상으로 너희와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참으로 놀랍다. 정말 놀라운 세상이다. 아니, 너희한테는 흔하디흔한 스마트폰 영상 통화겠지만 할아버지는 생각할수록 고맙고 대단하구나. 한국은 브라질과 많이 다를 거야. 천천히 할 수가 없을 거다. 그렇다고 그저 빨리빨리, 앞만 보지는 말아라. 

브라질에선 하지 않던 야구도 하고 모두 함께 학교에서 주는 점심을 먹고 역사박물관, 천문대에도 견학을 하러 간다니 참 좋다. 무엇보다 좋은 건 아파트 건너가 바로 학교라는 것. 그래서 너희들끼리 걸어서 학교에 간다는 거야. 할아버지가 너희들을 태우고 학교를 오가던 지난 5년이 새삼스럽게 생각이 나는구나. 차 속에서 너희들이 깔깔거릴 때마다 할아버지도 운전석에서 같이 웃었다는 거 알고 있니? 그때가 무척 그립다.

여긴 아침이다. 이제 운동하러 공원에 가려고 해. 너희는 아마 잠자리에 들었겠다. 꿈속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을까? 부디 좋은 꿈 꾸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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