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이찬재 Apr 18. 2019

78살이 되어서야 문득 인생을 돌아보았다

삶은 비록 취약하지만 예측하지 못하기에 그토록 신비한 것.

ⓒ 이찬재

별들이 가르쳐주었어


밤하늘을 바라보는데 문득 할아버지는 참 슬퍼졌다. 너무도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그땐 여름밤 하늘을 매일 올려다봤었다. 어른들이 별자리 이름과 그 안에 깃든 전설들도 이야기해주었지.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별을 세다가 마당 돗자리에 누운 채 그대로 잠이 들기도 했었어. 나는 언제부터 하늘을 보지 않았을까? 낮에도 밤에도 하늘은 바로 위에 있었는데 말이야.

갈라파고스의 별들은 인생을 가르쳐준다. 여기 와서 할아버지는 문득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다. 산다는 것이 힘들고, 괴롭고, 피곤한 것의 연속이라 생각했었는데, 이제 돌아보니 아름다웠더라. 할아버지는 여태 그걸 몰랐는데 별들이 가르쳐주었어.



ⓒ 이찬재

그렇게 우린


수컷 군함새가 암컷을 유혹할 땐 목에 달린 크고 붉은 주머니를 힘껏 부풀려서 아주 시끄러운 소리를 낸단다. 동물만 이럴까? 아니지! 할아버지도 대학생 때, 잔뜩 멋을 부리고선 팝송을 부르고 다녔단다. 그러자 한 소녀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 

그렇게 우린 사랑에 빠진 거야.



ⓒ 이찬재

그게 참 좋았다


우리 식구가 썽빠울로에 도착한 때는 1981년 여름이었다. 브라질 말도 한 마디 못하는 마흔 살의 나이로 열 살, 여섯 살 남매의 아버지이기도 했던 그때의 나를 이제 돌이켜본다. 불안했었겠지. 말할 수 없이. 그런데 그런 기억은 조금도 떠오르지 않는구나. 

온 지 얼마 안 되어 동네마다 요일별 시장이 열린다기에 궁금해서 가보았을 때가 기억나.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여기저기 널린 풍성한 물건들이 아니라 남자들의 모습이었다. 장바구니를 천천히 끌며 시장 보러 나온 남자들. 수영복 같은 아주 짧은 바지를 입고 이것저것 사는 모습을 본 순간, 나는 더할 수 없이 유쾌해졌다. 와, 저럴 수가! 어떤 걱정도 없고, 남의 시선 같은 것 신경 쓰지 않고 참 편안해 보였다. 그게 참 좋았어.



ⓒ 이찬재

갈라파고스에서 마지막 밤


얘들아, 지금은 갈라파고스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초대로 너무도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참으로 예기치 못한 시간이었다. 나는 지금 배 안에서 수많은 별들을 올려다보며 꿈같은 날들을 돌아본다. 무엇인가 너희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맴도는데……, 지금 이 느낌을 너희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아, 아니다. 우선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언제고 반드시 너희와 함께 오겠다는 것. 다시 여기에 오겠다는 것. 지금 너희들도 내가 보고 있는 저 별들을 보고 있으면 좋겠다는 것.



ⓒ 이찬재

AAA에게


아스트로, 하나밖에 없는 빛나는 별. 그리고 올곧은 알뚤, 엉뚱한 알란. 너희가 커서 때때로 할아버지를 생각하게 될 때 난 이 세상에 없겠지만 너희를 위해 이 편지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 너희가 어른이 되어 이곳에 오게 되면 분명 나처럼 생명의 소중함을 뼈아프게 느끼게 되겠지. 삶은 비록 취약하지만 예측하지 못하기에 그토록 신비한 것. 자연이 조용히 내게 속삭인다. 


하늘을 보라.

별을 보라.

선인장을 보라.

흰 새의 깃털을 보라. 

바위섬을 보라. 

노을을 보라. 

갈매기의 노래를 들으라.

파도 소리를 들으라.




이전 03화 모두 각자의 시간이 있는 건가 봐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돌아보니 삶은 아름다웠더라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