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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웅 Feb 05. 2023

100일

Self Portrait. 2023년 2월 5일 일요일, 미세먼지.

솔직히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늘 하던 대로. 늘 하던 일과, 늘 하던 고민과 늘 하던 다짐, 그리고 늘 바라던 꿈을 향해 천천히 나아갔을 뿐, 그들을 생각하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게 벌써 100일이 지났다. 

세상도 나와 같았다. 오늘 내가 걸으며 마주친 많은 이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미세먼지가 좀 심한 날이었지만 포근한 날씨 덕에 경의선 숲길에는 반려동물과 함께 산책을 즐기거나 연인, 친구와 함께 휴일을 즐기는 많은 이들로 붐볐고, 신촌과 이대역 앞에도 내 걸음 속도를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이들이 소중한 일요일의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난 오랜만에 옛 생각이 나 마포구청역 인근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출발해 경의선숲길과 신촌역, 이대역, 아현역, 그리고 충정로를 지나 서울시청까지 걸었다. 한 5년 만이었다. 전 회사에 다닐 때 주말 당직 근무를 서면 아침 일찍 집을 나와 이 코스를 걸어 회사에 도착하곤 했다. 회사는 서촌 통인시장 부근에 있었는데 근무를 마치고 오후 5시 정도에 회사를 나와 서촌을 지나면 그때도 많은 이들이 소중한 토요일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꽤 즐거웠다. 

내가 서울에 처음 정착하고 주말에 가장 먼저 한 일도 아마 이 코스로 걷는 일이었을 거다. 그저 서울 구경을 한번 해볼까 하는 심산으로 걷다 보니 이 코스를 개발(?)했다고 할 수 있다. 

2016년의 겨울도 생각난다. 이 코스를 걸어 시청 부근에 도착하면 수많은 인파가 이미 모여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한바탕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국정농단을 심판하기 위한 촛불집회에 구경이나 가볼까 하고 간 거였는데 그날이 아마 100만 명이 모였던 날이었을 거다. 시청 부근에서 사람들에 밀려 광화문 부근까지 갔던 기억을 난 영원히 잊지 못할 거다. 우리 현대사에 있어 가장 중요했던 순간 중 하나였던 그날, 광장에 있었다는 건 아마 계속 내 가슴을 뛰게 하겠지.

이처럼 내게 많은 추억과 의미가 담긴 길을 1시간 반에 걸쳐 걸은 뒤 마침내 도착한 곳은 서울시청 앞. 그곳에는 오늘로 100일을 맞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분향소가 마련돼 있었다. 분향소로 향하는 덕수궁 앞 횡단보도부터 경찰차와 경찰들이 즐비해 있었고, 분향소 맞은편에는 스케이트장이 운영 중이었다. 스케이트장 안에는 많은 이들이 스케이트를 타며 즐기고 있었는데 분향소 앞에는 사람이 없었다. 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유튜버인지 누군지 모르겠지만 몇 명이 촬영하고 있었고, 그 부근에서 기자인가 싶은 몇몇은 노트북으로 열심히 뭔가를 적고 있었다. 또 몇몇은 분향소 앞에는 가지 못하고 10여 미터 앞에서 영정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 또한 분향소 앞에 다가가 묵념을 하거나 영정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진 못했다. 원체 소심하고 내성적이라 차마 그렇게 하진 못하고 영정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는 이들 옆에 조용히 가서 잠시 분향소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게 내 나름의 방식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159명의 희생자를 위로하는 시간을 잠시 가졌다. 





잔인한 현실이지만 나의 슬픔이 타인에게 온전히 전해질 수는 없다.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는 부조리를 겪으면 당사자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는 내가 보더라도 벌써 100일 지났지만,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니 어떻게, 대한민국 서울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그렇게 허망하게.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내가 이런데 희생자의 가족들은 오죽할까.     


100일 보내오는 동안 그래도 가끔 이 일을 접하거나 생각하게 될 때 날 고통스럽게 한 건 인간이길 포기한 몇몇의 행태였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인간이란 존재, 호모 사피엔스의 잔인성을 절감하고 있지만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 안에서 이 잔인함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존재들. 그럼으로써 공동체를 위협하는 존재들. 이들에게는 한없이 무력한 법과 제도, 그리고 공권력. 거기에 또다시 분노하는 나. 그렇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에 또 좌절하는 나. 공분과 좌절이 반복될수록 나는 내 꿈에 천착하느라 또 세상의 고통을 외면하게 된다.      


우리는, 나는 언제까지 이런 고통을 지켜봐야 할까? 과연 우리는 더 나아지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겠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수밖에. 상처받은 이들과, 연약한 이들과 연대하며 희망을 키우고 희망이 현실이 되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겠지? 난 내 몫의 역할로 이 희망을 더욱 튼실하게 만들려고 한다. 내 몫이란 이야기, 그리고 영화로 세상과 소통하는 것.

쉽지 않겠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가보자. 가는 동안 세상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지 말자.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고맙습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정월 대보름이었다. 그래도 보름달을 봤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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