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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웅 Feb 19. 2023

기억과 기록, 그리고 창작

Self Portrait. 2023년 2월 18일 토요일, 미세먼지.

내가 추구하는 예술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마땅히 기억해야 할 것들을 충실하게 기록하고, 기록에 창작의 숨결을 불어넣어 가치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일. 예술가는 자신이 뿌리내리고 있는 사회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믿는다. 또한 자신의 예술이 역사의 일부가 된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역사를 기록하는 일에 게을러지면 안 된다. 난 그렇게 믿는다. 예술가는 왜곡과 선동이 아닌 창작으로 세상의 변화에 이바지해야 한다. 물론, 시대정신이 이끄는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변화겠지.     


오늘, 홀로 조용히 하루를 보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20년 전 대구지하철 참사가 일어났던 날이다. 이태원 참사를 비롯해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지진피해 등 심리적으로 감당하기 버거운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 와중에도 기억하고 기록해야 할 것은 꼭 기억해야 한다. 오늘 20주년을 맞아 한겨레신문에서 당시 희생자들이 마지막으로 가족에게 보냈던 문자 메시지 내용을 일부 공개했는데 가슴이 너무 아팠다. 마지막까지 의연함을 잃지 않고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거나 상대를 배려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나와 별로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삶을 살았던 분들. 그들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은 남아있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그들의 삶과 죽음이 더 큰 의미를 품을 수 있도록 창작하는 일은 내 의무일지도 모른다. 비록 한 번도 본 적 없는 분들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군에서 전역한 2004년 2월, 대구에 홀로 내려간 적이 있었다. 1년 전 사고를 기억하고 한 번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차를 타고 대구로 내려갔었다. 물론, 그때는 사고 현장을 쉽게 볼 수 없어서 그냥 지하철역 내부를 홀로 걷다가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그게 벌써 19년 전이구나. 아마 난 그때부터 창작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 뒤, 몇 번 이야기로 만들어볼까 시도했었지만 성공하진 못했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이 마음을 품고 있으니 지금부터 다시 도전해 봐야겠다.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빌며, 희생자 가족분들께는 위로의 마음을 건넨다.




기억과 기록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건 요즘 읽고 있는 책 영향이기도 하다. 정민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작년에 펴낸 역작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라는 책을 매일 감명 깊게 읽고 있다. 비록 지금은 무신론에 가깝지만, 그래도 한때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했던 나이기에 초기 천주교회사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무엇보다 내가 태어난 충주와 지금 살고 있는 서울과 내포가 한국천주교회사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곳이었다는 사실에 뭔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생각하면 내가 평범하게 거닐었던, 그리고 거닐고 있는 곳을 200여 년 전에는 굳건한 신앙심을 품고 새로운 희망에 부푼 교인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누볐던 공간이라는 점이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이 책을 시작으로 예전부터 가슴에 품고 있던 한국천주교회사를 깊게 공부해 봐야겠다는 마음이 커진다. 그리고 역시 이야기로 창작해야겠다는 마음도 커지고 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역사일 수도 있지만, 지금보다 더 많은 이들이 알아야 할 역사라고 믿는다. 특히 순교자분들의 믿음을 지키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어떻게 저럴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믿음으로 상상하기 힘든 고통과 박해를 견뎌냈고, 또 기꺼이 순교를 선택했다. 과연 무엇이 이 같은 결정을 하게 했는지 정말 궁금하다. 신념을 위해 스스로 죽음으로 걸어가는 이들의 모습은 존경스러운 모습이다. 물론 그릇된 신념을 끝까지 지키는 모습은 환멸을 느끼게도 하지만, 이들은 그런 신념과는 차원이 다르기에 나를 사로잡는다. 


얼마 전 다녀왔던 서울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 전시도니 조형물.


우리나라에는 ‘전장의 피아니스트’로 번역된 영화 ‘Broken Keys’도 봤다. 이 영화에서 바로 그릇된 신념을 지닌 과격 이슬람 단체가 등장한다. 딱 봐도 IS를 말하는데 IS의 억압 아래서 자유와 인간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다. 이 영화를 보면서는 인간에 대한 환멸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함도 느낄 수 있었다.      


해야 할 건 많은데 오늘도 시간이 금세 지나가 버렸다. 거기에 감기 기운이 있어 약을 먹었더니 약 기운에 정상적인 컨디션을 낼 수 없었다. 아쉬운 주말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일요일이 남았으니 좌절하지 말자. 오늘은 충분히 의미 있는 하루였다. 이 의미를 이어받아 내일도 부끄럽지 않게 하루를 보내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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