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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웅 Feb 19. 2023

서울을 누비다 : 종로에서 용산으로

Self Portrait. 2023년 2월 19일 맑음.

원래는 목요일 밤에 서울에 올라오면 일요일 오후에 다시 내포로 내려가곤 한다. 갈 때 공덕역까지는 걸어서 가곤 하는데 경의선숲길을 걷는 시간이 나쁘지 않다. 사람 구경도 하고, 거리 구경도 하면서 기분 전환하는 시간이 다시 시작되는 일주일을 버틸 수 있게 해 준다. 

오늘은 평소와는 달리 내포로 내려가지 않고 점심을 먹은 후 종로로 향했다. 601번 버스를 타고 연대와 독립문, 사직단을 거쳐 경복궁 앞에서 내린 다음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구경했다. 얼마 전부터 다시 가봐야지 생각하고 있던 걸 오늘에야 실천했다. 마침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베스트셀러로 보는 시대'였다. 거기서 반가운 책을 만났다. 바로 얼마 전 작고한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한국문학 역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나 또한 큰 영향을 받았다. 


내가 이 소설을 처음 알게 된 건 고등학교 2학년 땐가? 수능 언어영역 문제집 지문으로 나온 글을 보고 바로 서점에 달려가 소설을 샀던 기억이 난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시리즈로 출간하고 있던 소설 명작선 중에 포함돼 있어 당시 가격으로 7000원을 주고 샀다. 요즘은 소설책 가격이 보통 1만 4000원 정도니까 20여 년 만에 가격이 두 배가 됐구나. 암튼 나의 가치관과 사상, 그리고 삶의 궤적을 형성하는 데 있어 지대한 영향을 끼친 소설이다. 지금까지 10번은 넘게 읽은 것 같고, 군 시절에는 한 번 필사하기도 했다. 이 소설 같은 대작을 쓰겠다고 다짐하며 지금껏 살아오고 있는데 여태껏 장편소설 하나 완성하지 못했으니 참 민망스러운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작가님의 부고 소식을 듣고 마음이 착잡했었는데 오늘 우연히 다시 만난 걸 기념해 다시 소설을 정독하고 창작 활동에 다시 매진해야겠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기획전시에 전시되고 있는 조세희 작가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모습.


난 조세희 작가님을 먼발치서 한번 본 적이 있다. 2005년이 맞을 것이다. 그때 시위 도중 한 농민이 전경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때 여의도에서 노제를 지냈는데 나도 어떻게 해서 그 노제에 참여해 만장을 들고 행진했었다. 거기서 큰 카메라를 들고 노제 현장을 사진으로 남기던 작가님의 모습이 기억난다. 

개인적인 인연은 없지만 그래도 작품을 통해 내게 큰 영향을 주셨던 분인데 감사의 마음도 전하지 못했네. 

부디 그곳에서 편히 쉬시길.




박물관 구경을 마치고 쭉 걸었다. 청계천을 지나고 시청을 지나고 숭례문에 도착해 잠시 숭례문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한 후 다시 걸었다. 서울역을 지나 용산 쪽으로는 가본 적이 없다는 게 떠올라 오늘은 그쪽으로 가보자 생각하고 걸었다. 서울역에서 만리재를 넘어 공덕역으로 향하는 길은 많이 걸어서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용산을 향해, 더 정확히 삼각지역을 향해 걷는 중간 남영동을 마주했다. 때마침 얼마 전에 영화 '1987'을 잠깐 본 기억이 있는데 말로만 듣던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을 실제로 보니 기분이 착잡했다. 지금은 민주인권기념관으로 거듭나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가 다 끝나고 기념관이 개관하면 꼭 다시 와봐야겠다. 


숭례문.


옛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 지금은 민주인권기념관 공사가 진행 중이다.


남영동을 지나 삼각지역에 도착해 원래는 효창공원역으로 가려고 했는데 초행길이라 길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신용산역으로 갔고 거기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을 나올 때 만 보만 걷자고 생각했는데 딱 그 정도를 걸어서 만족스러운 산책이었다. 걸을 때마다 느끼지만 서울은 참 큰 곳이라는 걸 실감한다. 아직도 내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서울엔 많다. 그래서 서울을 걷는 건 새로운 모험에 나서는 것처럼 설레고, 또 익숙한 곳을 걸으면 반갑고, 나를 스치는 사람들을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내 목표는 서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곳을 내 발로 걷는 건데, 이 목표도 가슴속에 품고만 있지 말고 조금씩 실천하며 살아가야겠다.     


이 글을 다 썼음에도 아직 할 일이 더 남았으니 오늘이 지나기 전에 하나라도 더 하려고 노력하자. 그렇게 열심히 하루를 살고 또 살자. 그렇게 죽는 날까지 성장하는 걸 멈추지 말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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