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4. 세비야
세비야
세비야는 이사벨라의 도시 중에서 가장 번성하고 많은 인구가 사는 도시였고 유럽에서도 가장 큰 도시였다. 또 심판의 날이 시작되는 곳이요, 선과 악의 최후의 전쟁이 벌어지는 곳이었고, 그리스도가 재림할 꿈의 장소로 여겨진 곳이었다. 이유는 한 가지. 유대인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가 와서 천사와 악이 최후의 전투를 벌일 곳이 세비야라고 생각했다.
요한의 묵시록에는 사탄이 나타나기 전에 메시아 왕이 ‘숨겨진 자’, ‘박쥐’로 먼저 와 있다가 사탄을 무찌른다고 되어있다. 그러니 세비야에는 메시아 왕이 먼저 와 있어야 했고, 먼저 와서 그라나다를 정복하고 모슬렘을 내쫓아 스페인을 불신자로부터 해방해야 했다. 스페인을 순수한 그리스도의 세계로 만들고 나면 ‘숨은 자’ 재림 그리스도가 새로운 땅을 찾아 기독교인이 다스리는 ‘성스러운 땅’을 만들고, 그곳에 새 예루살렘을 세울 것이었다. 페르디난드가 숨겨진 자 박쥐가 되기를 꿈꿨다. 이사벨라는 성모 마리아를 꿈꿨다. 가톨릭 국왕 부부는 왕궁을 세비야로 옮겼다. 귀족들도 그런 꿈을 함께 꾸었다. 카디스의 후작은 “카스티야, 아라곤 그리고 시칠리아의 주군이신 위대하고 명성이 자자하며 권세 강한 페르디난드 왕은 세상 어떤 왕이나 황제들보다 고귀하고 충만한 하느님의 가호 속에서 탄생하셨다. 하느님께서 그 ‘박쥐’에게 모든 승리와 영광을 예비하셨기에 그에게 맞설 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페르디난드가 ‘숨겨진 자’다. 그는 성스러운 가톨릭 신앙을 조롱하고 경멸한 죄를 물어 세상 모든 배교자를 철저하고 잔인하게 응징할 것이다. 폐하께서는 그라나다 왕국뿐 아니라 튀니지, 모로코 등 아프리카 전역을 정복할 것이다. 그리고 이어 예루살렘을 회복할 것이며, 손수 당신의 손으로 갈보리 언덕에 아라곤 왕국의 깃발을 휘날릴 것이다. 또 로마 교황 자리를 3년 동안 비워두고 나서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천사를 그 자리에 앉히고, 자신은 황제가 될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왕이 될 것이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적어 카스티야의 귀족들에게 돌리기도 했다. 시인들도 스페인 왕이 공격하여 예루살렘을 되찾으라는 내용의 격문을 썼다. 국왕이 교회와 국가를 유신하고 기독교 사회를 재조직하며 복음을 전파하여 새 기독교 왕국을 통치해 달라고 호소했다. 기독교 세상으로 유신하려면 스페인의 피를 정화해야 했다. 유대인 학살과 재산 약탈이 대대적으로 자행되었다. 세비야 대성당 앞 유대인 거주 지역 게토의 골목마다 유대인의 물건을 빼앗아 나온 자들이 몰려다녔다. 대성당의 도미니크 사제단 신부가 유대 혐오 미사 기도를 봉헌할 때마다 폭도들의 살상과 약탈의 횃불은 거듭 불이 붙었다. 한 해에 4천여 명의 유대인이 살해되었다. 세비야에서 시작한 학살과 재산 약탈이 카스티야 전역으로 퍼지더니, 아라곤으로도 옮아 붙었다. 아라곤 왕은 아직 갚아야 할 지참금 빚이 많았다. 혐오를 봉헌하는 신부들은 이것을 “반유대 성전”이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 설교했다. 페르디난드는 이때 세비야에서 가장 좋은 집 여러 채를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