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 구바나칸
구바나칸
콜럼버스는 과나하니 섬을 떠났다. 그의 일지에서 과나하니라는 원주민 이름을 더는 사용하지 않았다. 과나하니는 벌써 스페인식으로 산살바도르로 바뀌었다. 그가 향한 곳은 원주민들이 ‘지바우’라고 말한 섬이다. 쿠바다. 이곳에서도 비중격을 뚫은 금 장식물을 보았다. 과나하니 섬에서 배에 태운 원주민 가이드가 말하기를 지금 가고 있는 이 쿠바섬에는 사람들이 금으로 만든 큰 목걸이를 차고, 다리에도 팔에도 차고 다닌다고 했다. 콜럼버스는 이제 곧 황금이 쏟아지리라 기대했다. 원주민들은 이 섬을 “골바Colba”라고 한다고 콜럼버스는 항해 일지에 2번 적었다. 하지만 콜럼버스는 더는 “골바”라고 쓰지 않고 “지바우Cibou”라 기록했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어차피 새로 기독교식으로 이름을 붙일 터. 원주민이 무엇이라 부르든지 그런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콜럼버스는 쿠바섬을 후안 섬이라 명명했다. 새로운 예루살렘, 천년왕국의 재림 예수가 될 후안 왕자에게 이 땅을 헌정한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후안 섬이라는 이름은 오래 쓰이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후안이 죽었기 때문이다. 콜럼버스 다음으로 이 섬에 온 스페인 사람들은 이 섬을 구바나칸Cubanacán이라 불렀다. 구바나라는 왕이 다스리는 땅이라는 뜻이다. 원주민들도 자신들의 최고 지도자를 칸이라고 일컬었다. 쿠바Cuba. 구바나칸을 스페인 사람들이 쿠바라 줄여 불렀다. 구바나칸이라는 지명은 베네수엘라 앞바다 섬에도 남아있다. 콜럼버스는 후안 섬을 지팡구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지금 읽고 있는 항해 지도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동방견문록>은 지팡구를 ‘황금으로 지붕을 덮은 집들’이 있는 섬이라고 했다. <동방견문록>에서 보았던 그 섬, 어마어마한 양의 황금이 넘쳐나는 땅에 이제 곧 도착한다고 기대했다.
천년왕국, 새로운 예루살렘이 눈앞에 보였다. 쿠바섬에는 1492년 10월 28일에 도착했다. 역사학자들은 콜럼버스가 쿠바섬에 처음 닿은 곳을 올긴Holguín 근처 발해이Bariay로 보고 있다. 지금 발해이 지역의 마을은 흔적 없이 사라졌고 지명만 남았다.
“나는 지금에 이르도록 이보다 아름다운 곳을 보지 못했다.” 콜럼버스가 쿠바에 도착해서 뱉은 첫마디다. “이 섬은 꽤 크지만 아주 편평하다. 녹음 짙은 숲이 우거지고 좋은 물이 많다. 높은 산도 없고 나무는 아름답다. 나무마다 열매와 꽃이 가득 달려있다. 여러 종류의 크고 작은 새들도 아주 많고, 맑고 달콤한 노랫소리는 숲을 메운다. 엘미나가 있는 아프리카 기니에 있는 것과는 다른 종자의 야자나무가 헤아릴 수도 없이 빽빽하다. 밑동은 크지 않되 크고 늘씬하게 쭉 뻗어 멋지다. 원주민들은 야자나무 잎을 엮은 지붕으로 집을 덮었다. 땅은 낮고 고르며 편평해서 살기 좋다.” 그는 쿠바에 대한 첫인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콜럼버스는 새로운 땅에 도착할 때마다 “짙게 푸른 나무가 우거지고, 물이 많다. 흙은 기름지다”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썼다. 그가 살았던 남부 유럽이나 이베리아는 물도 풍족하지 않고, 숲도 우거지지 않고 수종은 단조롭다. 척박한 땅이었다. 그 땅과 이 땅은 크게 대비되었다. 그가 뭍에 내려 나무 사이를 걸었다. 자신이 “생애 동안 여태껏 보아온 풍경 중에 가장 아름다운” 곳이었다. 안달루시아의 5월 초록과 같다고 했다. 알람브라가 있는 안달루시아는 오렌지 향기가 바람에 날리는 5월이 가장 아름답다. 그러면서도 이곳의 나무들은 그라나다의 낮과 밤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쿠바의 대왕 야자나무는 참으로 아름답다. 말 그대로 나무의 왕이라 할 만하게 품위 있고 늠름하다. 용사처럼 엄격하고 숙녀처럼 단정하다. 기둥은 남자의 근육처럼 강인하고 바람에 휘청이는 잎사귀는 춤추는 여자의 허리처럼 요염하다. 쿠바 사람들은 그런 대왕 야자나무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그래서 대왕 야자나무는 쿠바의 국기에도 그려져 있고, 국외 반출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나무마다 열매가 가득했다. 식물과 돌 모든 것이 다 스페인 것과 다르고 아름다웠다. 이곳은 거의 매일 비가 왔다. 콜럼버스가 쿠바에 도착했을 때는 건기였지만 그래도 비는 매일 소나기로 퍼붓고 멎었다. 꽃과 나무의 향기가 바다까지 실려 왔다. 놀랍도록 아름다운 숲 속에서는 작은 새들이 섬을 온갖 소리로 가득 메우고 있었다. 너무나 많은 종류의 크고 작은 새들. 스페인에서는 볼 수 없는 새들이었다. 나무의 종류도 아주 많고 제각기 다른 열매를 맺었다. 콜럼버스는 그중에서도 귀중한 종자들을 샘플로 스페인에 가져가고 싶었지만 귀한 것이 하도 많아 다 가져갈 수 없어서 안타깝다고 했다. 빛을 품어 셀 수 없이 다채로운 여러 색상의 깃털을 가진 앵무새들은 떼 지어 하늘을 날았다. 해가 가려질 만큼 새들이 많았다. 참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는 없다. 이곳은 땅에 있는 파라다이스였다. 선원들은 “이곳에 온 사람은 누구도 이곳을 떠날 마음을 먹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감탄하며 말했다. 콜럼버스는 “스페인 국왕 폐하께서도 이 섬들이 비옥한 토양과 좋은 기후, 그리고 편평하여 세상에서 가장 좋은 땅임을 틀림없이 믿게 되실 것”이라고 일지에 썼다. 항해일지는 귀국한 뒤 스페인 국왕에게 바칠 탐사보고서 같은 것이었다.
쿠바에 처음 도착했을 때 콜럼버스는 2채의 집을 발견했다. 배를 갯가에 대고 들어가 보니 사람들은 벌써 놀라 내뺀 뒤라 집은 비어있었다. 어느 집에는 개가 있었지만 짖거나 물려고 하지 않았다. 사납고 거친 유럽 개와는 성향이 달랐다. 두 집 안에 모두 야자나무 잎을 꼬아 만든 그물이 있었고 소라고둥으로 만든 낚싯바늘과 큰 물고기의 뼈를 나무 막대에 이어 붙인 작살이 있었다. 물고기를 잡을 망이나 뜰채 같은 도구가 집채 벽과 담벼락에 여럿 걸려있었다. 콜럼버스는 물고기를 잡아먹고사는 사람의 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집마다 여럿이 함께 살고 있다고 보았다. 콜럼버스는 다시 배로 돌아왔다. 이때 2대의 카누가 콜럼버스의 배로 다가왔다. 마침 콜럼버스의 배가 돛을 올렸고 동시에 닻을 걷어 올리는 소리가 끽끽하고 났다. 콜럼버스의 배 세 척 중에서 산타 마리아호가 제일 큰 배였다. 그 배의 크기는 고작해야 길이 약 30m, 폭 7~8m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카누만 타던 원주민들에게는 엄청난 크기로 보였을 것이다. 난생처음 보는 괴물 같은 큰 배를 보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는데 돛이 펼쳐지는 모습은 놀라웠다. 게다가 닻을 끌어올려 감는 소리는 괴이하고 소름 끼쳤다. 소리라고는 새소리뿐인 이 인적 드문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 콜럼버스 일행이 상륙하기 전까지 그런 큰 물체와 괴상한 소리가 들렸을 리 없었다. 카누만을 알고 살던 원주민들은 콜럼버스의 배가 귀신이나 괴물체가 움직이는 것이라고 느꼈을 법하다. 마을 뒷산에 엄청난 크기의 UFO가 나타났을 때 이 괴비행체를 처음 발견한 영화 <ET>의 주인공 소년의 놀라움 같았을 것이다. 원주민 가이드가 이곳에는 사금 밭이 널려있고, 바닷가 펄에서 진주가 난다고도 말했다. 콜럼버스는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벌써 눈여겨보고 있는 것이 있었다. 굴 껍데기처럼 흑갈색의 얇은 껍데기로 여러 층 싸여 있는 조개다. 그런 조개들은 진주를 품고 있다는 것을 뱃사람인 그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원주민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빠르게 삿대를 저어 달아나버렸다. 항해전문가인 콜럼버스의 눈으로도 카누는 스페인 배에 비해 무척 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