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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댕 Feb 08. 2021

[그빵사]96. 밀크티 갸또 쇼콜라

할머니의 생신 케이크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내일은 할머니 생신이시다. 코로나로 인해 5인 이상 집합 금지라서 부모님만 할머니 댁에 가서 인사만 드리고 오실 예정이었는데 내가 할 일이 없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케이크는 언제나 고모들이 사시기 때문에 나는 홈베이킹으로 간단하게 쿠키나 마들렌을 구워볼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생신에 쿠키라니! 어째 모양새가 영 아닌 것 같아서 오랜 시간 고민을 했다. 그렇다고 내가 케이크를 만들기엔 아직 만들어 본적이 한 번도 없어서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다. 만들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일단은 원래 만들기로 했던 '밀크티 갸또 쇼콜라'케이크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영 아니면 가족들이랑 먹으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제일 먼저 초코 시트부터 굽기로 했다. 레시피를 보니 초콜릿과 버터를 녹인 것이 들어가는 게 다른 시트들과 달랐다. 다크 커버춰와 버터를 계량해서 중탕으로 녹이고 계란 3개를 꺼내서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한 뒤 설탕을 넣고 휘핑하여 노른자 반죽을 만들었다. 그다음은 생크림을 넣는 차례였는데 자막으로 원래 생크림은 다크 커버춰와 버터를 녹일 때 함께 넣어서 중탕해야 한다는 말이 나와서 (유튜버님께서 실수하셨다고...) 어쩔 수 없이 나도 영상과 같이 생크림을 뒷부분에다가 넣고 찐득한 초코 버터 소스를 넣고 섞었다. 이미 한번 본 레시피 영상인데도 순서대로 똑같이 따라 하다 보니 그만 잊고 말았다. 초코 반죽에 박력분과 코코아 가루까지 체 쳐서 넣고 섞은 뒤 반죽이 굳기 전에 흰자로 머랭을 만들어서 섞어야 한다고 했다. 이미 노른자를 휘핑해서 지저분해진 날을 뽑아 씻고 키친타월로 물기를 제거한 뒤 빠르게 머랭을 만들었다. 하얗고 뽀얗게 올라오는 머랭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두 반죽을 몇 차례 나눠서 섞고 난 뒤 팬닝까지 해주고 오븐에 넣었다. 굽는 내내 아주 찐득한 초코 냄새가 가득 피어올라서 당장이라도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오븐에서 꺼낸 팬 그대로 식힌 후에 팬에서 분리하여 식힘망 위에서 다시 한번 식혀주었다.


초코 시트를 만들고 난 뒤 밀크티 소스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법랑 냄비에 생크림과 얼그레이 찻잎을 넣고 끓인 다음 불에서 내려 몇 분 동안 우려내고 체에 걸러서 냉장고에서 차갑게 식혀주면 끝이었다. 초코시트와 밀크티 소스를 식히면서 부엌 정리를 하는 데 유독 오늘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그냥 평소와 같이 베이킹을 하는 건데도 어째서인지 정리가 안되고 허둥지둥 대는 느낌이 들었다. 가득 찬 식기세척기를 돌리고 소파에 누워서 쉬다가 밀크티 크림을 만들기로 했다. 밀크티 소스와 휘핑크림 그리고 설탕을 넣고 휘핑하면 되는데 거품이 너무 안 올라와서 당황했다. 오버 휘핑하면 오히려 거품이 풀어질 수도 있다고 해서 조심하는데 어느 때가 적당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최대한 크림 같은(?) 느낌이 났을 때 멈추고 초코 시트에 크림을 발라 주기로 했다. 유산지를 다 벗기고 그릇 위에 올린 다음 스패츌러를 꺼내와서 한 겹 바르기 시작했다. 작년 생일 때 원데이 클래스로 레터링 케이크 만들기를 배운 적이 있어서 어설프게나마 아이싱을 할 수 있었으나 영 모양이 제대로 나오지는 않았다. (하하) 돌림판도 없어서 접시를 손으로 돌려가면서 크림을 바르는데 이거 선물로 드릴 수 있을런지 걱정이 되었다. 베이지 색의 밀크티 크림을 한 겹 더 바르고 난 뒤, 나름대로 깨끗하게 정리를 하고 금 가루로 조금씩 장식했더니 케이크 같은 느낌이 들긴 했다. 언니에게 보여주었더니 괜찮다고 손녀딸이 만든 거면 이보다 더한 거라도 맛있게 드실 거라며 선물을 드리라고 했다. (귀가 팔랑팔랑) 몇 번 고민했지만 그래도 선물을 드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바로 나가서 베이킹 재료 상점에 가서 1호 케이크 상자와 다른 재료들도 사 왔다. 


케이크 판에 케이크를 조심스레 옮겨놓고 벗겨지거나 긁힌 곳은 크림을 덧발라서 보수 공사를 했다. 그리고 케이크가 너무 밍밍한 것 같아서 진주 모양 초콜릿과 초코 크런치도 사 와서 올려보았는데 어째 올리면 올릴수록 더욱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심플 이즈 더 베스트라고 싹 다 걷어내고 다시 크림을 발라서 금가루랑 진주 초콜릿 몇 개만 장식했는데 이게 제일 최선인 것 같았다. 언니가 보더니 가운데가 너무 뻥 뚫려있는 것 아니냐며 뭐라 했지만 여기서 더 손을 댔다간 절대 선물을 드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케이크 상자에 케이크를 담아 냉장고에 넣고 나니 진이 쫙 다 빠져서 나머지 설거지도 못하고 그대로 누워있었다. (에고 힘들어) 마치 첫 베이킹처럼 정신을 쏟았던 것 같다. 아무래도 할머니께 처음으로 직접 만들어 드리는 음식이라서 그런지 여간 걱정이 되는 게 아니었다. 맛은 있을까? 밀크티 크림 말고 캐러멜 크림으로 했었어야 했나? 장식이 너무 구린가? 보내지 말까? 괜히 만들었나? 


부모님과 언니는 당연히 괜찮다고 좋아하실 거라고 백만 번 얘기했지만 직접 만든 장본인인 나는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베이킹 카페에서 케이크를 검색해서 보면 다들 어쩜 그렇게 예쁘게 케이크를 장식하는 건지 아 이대로 보내도 되는 건가 계속 고민이 되지만 오늘만 날이 아니지 않은가! 다음에 직접 찾아뵐 때는 더욱 예쁘고 맛있는 케이크를 만들어야겠다고 불타오르는 하루였다.


-케이크 사진은 좀 부끄러워서... 오늘은 첨부를 안해보렵니다..^.^....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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