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행복에 대한 수업 이야기
지난주부터 조금 특이한 수업을 듣고 있다. 수업의 이름은 Wisdom & Happiness.
Finance 전공인 나에게 수업 리스트 중에서 가장 특이한 수업명이다. 단순히 편안한 수업이라서 듣기 보단 내가 늘 하고 있는 생각을 수업으로 들으면 어떨까? 라는 생각에 수업을 듣게 되었다.
수업 도입부에 교수님이 던진 질문이 꽤 인상적이었다.
“Can you think of something you believed would make you happy, but ultimately didn’t?”
“당신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 있는가?”
머리 속에 스쳐가는 것은 하나의 순간이 아니라 대부분의 순간이다. 회사도, 학교도, 대부분의 선택에서 어떤 선택으로 인해서 내가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결국에는 나에게 아주 짧은 행복감의 느낌을 주었다. 이런 생각은 늘 그럴듯하다. 지금의 불편함은 잠깐이고, 어떤 지점을 지나면 삶이 조금은 정돈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생은 늘 비슷한 방식으로 움직인다. 하나를 끝내면 다음 것이 오고, 하나를 이루면 또 다른 조건이 생긴다. 마음은 자꾸 미래의 특정 시점에 가서 정착하려고 하는데, 정작 삶은 그곳에서 오래 머물게 해주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나는 행복을 꽤 자주 외부 조건에 걸어두고 살았다. 원하는 것을 가지면 괜찮아질 줄 알았고, 어떤 사건이 지나가면 편안해질 줄 알았다. 인정받으면 괜찮아질 것 같았고, 삶이 조금 더 경제적으로 매끄럽고 덜 불편해지면 그제야 숨을 고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붙잡은 것들은 오래 가지 않았다. 원하는 것을 얻어도 금방 익숙해졌고, 기대하던 순간이 와도 그것이 삶 전체를 바꿔주지는 않았다.
수업에서는 행복에 대한 몇 가지 익숙한 오해를 이야기했다. 원하는 것을 다 가지면 행복해질 거라는 생각, 어떤 일이 일어난 뒤에야 행복해질 거라는 생각, 쾌락이 곧 행복이라는 생각, 타인의 인정이 행복이라는 생각, 그리고 돈과 물질이 결국 답이라는 생각. 듣고 있자니 전부 낯설지 않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공통점을 하나로 묶는 문장이 유난히 오래 남았다. 우리는 행복을 자꾸 바깥에 맡기려 한다는 것. 행복을 아웃소싱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 이 말이 묘하게 와닿았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행복을 아웃소싱하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험이 끝나면, 졸업을 하면, 연봉이 올라가면, 타이틀이 좋아지면.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조건이 충족된 뒤에도 기대가치는 늘 다음 조건으로 이연된다는 점이다. 잠깐 안도는 있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삶 전체가 계속 "다음에"로 미뤄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수업에서는 내가 많은 경험들과 사건들을 겪고 느꼈던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했다. 행복을 목적지가 아니라 여행의 방식으로 보라는 말이었다. 행복은 어디에 도착한 뒤에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그곳으로 가는 동안 어떤 태도로 걷느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혜(Wisdom)는 "좋은 삶"을 향한 "기술(skill)"이라고 했다. 나는 그중에서도 "기술"이라는 단어가 좋았다. 기술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연습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수업에서 정의한 지혜와 행복의 정의
Wisdom → “Wisdom is a skill of living oriented toward the pursuit of a good life.”
Happiness → “Happiness emerges when we live with wisdom.”
교수님은 지혜와 지속 가능한 행복을 이야기하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현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라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현실 자체보다, 그 현실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대 때문에 더 자주 흔들린다. 일이 잘 안 풀리는 것보다, “이 정도는 잘 돼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더 큰 실망을 만든다. 관계가 어긋나는 순간보다, “이 사람은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기대가 더 큰 감정의 동요를 만든다. 그래서 비현실적인 기대는 단순한 낙관이 아니라, 오히려 반복적인 실망을 만드는 구조에 가깝다. 삶이 원래 불완전하고 예측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수록, 작은 어긋남에도 크게 흔들리게 된다. 반대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상황이 좋아서 평온한 것이 아니라, 상황이 기대와 다르더라도 그 차이를 견딜 수 있기 때문에 덜 흔들린다.
나는 꽤 삶을 잘 통제하고 싶어 한다. 계획을 세우고, 리스크를 줄이고, 가능한 한 변수들을 제거하려 한다. 물론 어느 정도의 통제는 필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삶 전체를 통제할 수 있다는 전제 자체다. 그 전제를 가지고 있으면, 통제되지 않는 모든 것들이 실패처럼 느껴진다. 예상 밖의 일, 감정의 기복, 관계의 균열, 방향의 수정 같은 것들이 종종 "잘못된 결과"로 해석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변화와 불확실성, 고통과 상실은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삶에 기본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요소들이다. 그걸 없애야 정상적인 삶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이 있는 상태가 원래의 삶이다. 이걸 받아들이는 순간, 삶을 바라보는 기준 자체가 조금 달라졌다. 더 이상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져야 괜찮은 삶이 아니라, 어긋나는 것들 속에서도 계속 이어지는 삶이 된다.
교수님 또한 행복을 불편한 감정이 없는 상태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불안, 짜증, 슬픔 같은 감정이 올라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건 그런 감정이 올라올 때 그것에 과도하게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감정이 찾아와도, “이게 왜 생기지?”라고 당황하기보다는 “이런 날도 있지”라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건강하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교수는 두 가지 사례를 들었다.
첫 번째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문장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만날 사람들이 무례하고, 배은망덕하고, 질투심 많고, 불쾌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라는 것. 처음 들으면 비관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세상을 지나치게 낭만화하지 않음으로써 불필요하게 상처받지 않는 태도였다.
두 번째는 골프 선수 월터 헤이건의 일화였다. 그는 한 라운드에 일곱 번쯤은 나쁜 샷이 나올 것이라고 미리 예상했고, 실제로 미스샷이 나오면 “그래, 하나 나왔군” 하고 넘어갔다고 한다. 그 태도가 이상하리만큼 좋았다. 인생도 비슷한 것 아닐까. 예상 밖의 일이 생길 때마다 무너지는 대신, 원래 그런 몫이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 한 번의 미스샷이 라운드 전체를 규정하게 두지 않는 것이다.
교수님에 따르면 지혜는 "좋은 삶"을 향한 기술이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그 기술이 향하고 있는 "좋은 삶"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또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느낀 건 하나였다. 좋은 삶은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조건이 되고, 삶은 다시 그 조건을 따라가야 하는 대상이 된다. 하지만 실제로 살아보면, 삶은 그렇게 고정되지 않는다. 계속 변하고, 흔들리고, 다시 조정된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은 어떤 상태라기보다 방향에 가깝다. 정의하려 하기보다, 그 과정 속에 머무르는 것. 도달하려 하기보다, 살아가는 방식을 다루는 것. 좋은 삶은 무엇인지 아는 것이 아니라, 그걸 끝내 단정하지 않은 채 계속 살아가는 태도에 더 가까운 것이다.
여전히 내가 생각하는 행복에 가장 가까운 묘사는 이 문장이다.
Success is getting what you want.
Happiness is wanting what you get.
행복은 바깥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다루는 문제에 더 가깝다고 생각이 된다.
어떤 사람을 만나도 이제는 인생의 방향을 잡고 살아가는 사람이 가장 행복해 보인다. 10대, 20대, 그리고 더 늦은 인생의 시기까지도 방황을 한다. 그럴 수 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다만 그 방황의 끝에는 실수와 경험들이 쌓이면서,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가 조금씩 자라난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는 인생의 크고 작은 방향을 설정한다. 어떤 친구들은 인생의 극단적인 방향 변화를 보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한 가지 방향에 집착스러운 열정을 보이기도 한다. 모습은 다르지만, 결국은 각자가 내린 행복의 방향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런 선택들을 존중하게 된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다른 데 있다. 자기는 다른 삶을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불만과 불평을 반복하면서 결국 같은 행동, 같은 하루를 계속 살아가는 경우다. 인생의 방향이 다르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똑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아인슈타인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Insanity is doing the same thing over and over again and expecting different results.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음이다.
모든 것에 과학적 사고를 적용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무언가 달라지기를 바란다면 행동을 바꿔야 한다. 다만, 언제나 변화를 만드는 건 쉽지 않다. 상황을 정확히 인지해야 하고, 그 위에 용기를 더해 과감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종종 멍거의 말을 떠올린다. 물론 투자에 대한 이야기지만, 결국 인생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The wise ones bet heavily when the world offers them that opportunity.
현명한 사람들은 세상이 그런 기회를 제공할 때 크게 베팅한다.
기회가 왔을 때는 작게 가지 않는다는 말.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다면, 그 대응의 크기 역시 작지 않아야 한다.
변화는 작은 것에서 시작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 방향에 맞는 과감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