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옷장에 있는 옷으로 만든 가방
그래딧 편집장
몇 회째 UN청소년환경총회에 참여중인 중학생 아이가 지난 해 폐회식을 마치며 젠니클로젯에서 작업해 주신 현수막으로 만든 알록달록 방석을 받아왔습니다. “엄마 이 대표님 잘 아는데~” 자랑을 했더니, “엄마, 그런데 그 대표님 이름은 정말 이젠니가 맞아?”
‘그래, 엄마도 궁금하긴 하다. 근데, 엄마는 그것 말고도 묻고 싶은게 많구나’ 싶었습니다. 서로 분주한 연말이 지나 대표님과 약속을 잡았어요. 본업도 분주하실텐데, 하우스젠니는 또 어떻게 운영하고 계신건지, 두루마리 휴지 한 꾸러미 사들고 찾아갔지요.
이젠니 대표
초록창에 ‘이젠니’를 검색하면 꽤 많은 기사가 줄을 잇습니다. 소셜벤처 대표 중에 초록창에 검색해서 프로필이 나오는 몇 안되는 분이고, 각종 수상 이력과 대기업 콜라보 사례도 줄을 이어요. 좀 더 리서치를 하다보니, 그런 이력과 성과가 공짜가 아니구나 싶습니다.
저도 의류학을 공부했지만, 의류학 전공자가 다 옷을 잘 만드는 것은 아니거든요. 사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아요. 이젠니 대표는 어릴 때부터 미술과 패션에 관심이 있었고, 대학 재학중 직접 만든 옷을 팔아보기도 했고, 업사이클이라는 용어가 익숙하기 전부터 그 비슷한 주문 제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2016년쯤 ‘업사이클’ 이라는 용어가 트렌드 키워드로 선정되며,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기 시작한거 같아요. 그 전에 저희가 하는 활동들은 ‘리사이클’ 이나 ‘리폼’ 으로 불렸죠.”
- 이젠니 대표
프로필
2010 세계녹색구매대회 ECO-패션디자인 대상수상
2011 KBS ‘도전 에코패셔니스타’ 에코디자이너 MC
2011 ECO DESIGN SHOP ‘DREAM’ 오픈
2013 업사이클링 브랜드 ‘ZENNYCLOSET’ 런칭
2014 롯데피트인 동대문점 젠니클로젯 1호점 오픈
2014 서울시 사회적경제 아이디어대회 최우수상 수상
2016 대구백화점 프라자점 ‘ZENNY’ 런칭 / 젠니클로젯 2호점 오픈
2016 롯데몰 은평점 젠니클로젯 3호점 오픈
2017 롯데몰 산본점 젠니클로젯 4호점 오픈
2017 데님 기부 프로젝트 ‘세이브 워터 캠페인’
2019 루이까또즈와 협업해 재고원단으로 반달곰을 위한 포베어백 제작
2020 렛츠겟업 챌린지
2022 골프존과 협업해 폐스크린 업사이클 사업 시작
2022 서울시 지원사업으로 사용이 끝난 선거 현수막을 앞치마, 가방으로 제작
2022 모던 한복 브랜드 리슬과 협업해 밀라노패션위크 가방 제작
2022 UN청소년환경총회에 에코 리더스 패널토크로 강연
2022 하우스젠니 오픈
2023 저스트크래프트와 협업해 업사이클 캠페인을 통해 데님 에코백 제작
이 대표는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 시립대 앞에 작업실 겸 작은 매장을 열었습니다. 일본 빈티지 의류를 리폼해서 판매하다보니 단골이 늘었어요.
2013년 프로젝트 노아(지금 닥터노아의 전신)를 통해 열린옷장과 인연을 맺게 되었어요. 열린옷장을 통해 안입는 남성 정장을 기부 받고, 이젠니 대표가 여성복으로 업사이클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비록 7,8벌 밖에 되지 않았지만, 직접 작업한 새로운 옷을 해피빈을 통해 기부하면서 팀으로 일하는 과정을 처음 경험했다고 합니다.
이후 다양한 업사이클 프로젝트의 기회가 이어졌고, 젠니클로젯이라는 브랜드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열린옷장과의 콜라보 프로젝트를 통해 팀과 함께 하는 일의 재미와 목표 달성, 성취의 기쁨을 처음 경험했던 것 같아요.”
- 이젠니 대표
젠니클로젯은 ‘내 옷장에 있는 옷으로 만든 가방’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내 옷장에 안입는 옷을 고쳐서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던 디자이너의 초심을 담은 이름이죠.
“언젠가 한 여성분이 먼저 떠난 남편의 옷으로 가방을 만들 수 있겠냐는 의뢰를 하신 적이 있어요. 평생 간직하며 기억할 수 있는 그런 물건으로 만들고 싶다면서요. 옷은 그렇게 한 사람의 가치와 흔적(히스토리)을 담고 있는 사람과 가장 가까운 물건이라 생각해요. ”
- 이젠니 대표
하지만, 업사이클 의뢰들이 많아지고 직원이 늘기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 자신이 추구하던 브랜드의 방향과 팀원들이 원하는 방향성 사이에서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주변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출시한 마벨백이라고 있는데요. 이 디자인을 처음 팀에 공유했을 때, 팀원들이 출시를 반대했어요. 팀은 업사이클 느낌을 더 강조하고, 좀 더 캐주얼하고, 대중적인 방향으로의 변화를 원했던 것 같아요. 사슴 로고도 빼고 싶어 했고, 원색적인 칼라 방향성도 바꾸길 원했어요.
결국, 마벨백은 출시를 못했고, 아쉬움에 조용히 제 개인 인스타그램에 ‘미출시’ 제품으라 올렸더랬죠. 그랬더니, 평소 가깝게 지내던 배우 최지나 님을 비롯해 출시를 원하는 문의가 이어졌어요.”
- 이젠니 대표
이대표는 이런 경험들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브랜드와 팀원이 생각하는 브랜드, 그리고 고객들이 생각하는 브랜드가 다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트랜드를 반영하는 가방도 좋지만 우리만의 가방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깊이 하게 되었습니다. 옷장에 있는 옷으로 만든 가방이라는 브랜드의 본질을 지키며, 지금까지 브랜드를 사랑해준 고객들을 위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업사이클과 친환경의 방향성은 중요하고, 앞으로도 그 부분을 놓치지 않겠지만, 사실 젠니클로젯이 사랑받는 이유는 업사이클 브랜드이기 때문은 아니었어요. 젠니클로젯 고객은 대부분 페미닌한 디자인을 좋아하는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여성 직장인이고, 자신 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주관이 확실한 분들이었으니까요. 그래서 환경을 생각하는 회사의 미션은 기본으로 두고 고객들이 찾아주시는 제품 디자인과 스토리에 집중하기로 했어요.
“하우스젠니를 방문하시는 분들을 보면, 일부러 연차를 쓰고 놀러 오시는 분들이 꽤 있어요. 경남 양산에서 남편분과 함께 7시간 걸려 일부러 이곳을 찾아 방문하신 분도 계셨어요. 제품이 많은 것도 아닌데, 이곳에서 한참을 놀다가 가세요.”
- 이젠니 대표
그래서 지금 젠니클로젯은 브랜드를 재정비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대표이자 디자이너로서 브랜드를 리드할 수 있는 수준에 서있어야 하는데, 지난 몇 년간 늘어난 업사이클 주문의 양적 규모를 따라가기 바빠, 질적(전문성) 성장의 시간이 부족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창업보다 어려운게 BM을 바꾸는 일인 것 같아요. 성장을 늦추는 결정이 쉽지 않았지만, 기초를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어요. 오프라인 중심으로 시작했던 브랜드를 온라인에 맞게 재편하기 위해 백화점도 다 철수 했어요. 이제 하우스젠니를 통해 처음처럼 다시 시작하는 중입니다.
당분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디자인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오후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크리에이터로서 영감을 쌓는 시간을 가지려 해요.”
- 이젠니 대표
연혁이 10년 넘는 브랜드이다보니, 전용 공장 1개소를 포함하여, 완성 공장 풀도 여러 개 있습니다. 사실 브랜드의 외형을 정비하겠다는 결정은 거래처 유지와도 직결되는 문제였는데요. 오더 수량이 줄게 되면, 공임을 높여서라도 연간 매출을 유지시켜줄 작정입니다.
이제는 서로 믿고 일할 수 있는 전용 공장과의 인연도 특별합니다. 사업 초기에 작업할 물량을 생산 에이전시 한 곳에 맡겼는데, 이 에이전시가 단가를 맞춘다는 명목으로 젠니클로젯 작업을 지방 공장으로 가져간 후 잠적 했다고 해요. 납품 일정은 다가오고, 선수금까지 지급했던 상황이라 발을 동동 구르며, 그 분 자택과 자주 간다고 하는 사우나 등 곳곳을 수소문 한 끝에, 어느 지방에서 겨우 찾아냈습니다.
“돈가스 한 접시 사드리며 부탁했어요. 문제가 뭔지 알아야 도움을 드릴 수 있으니 솔직히 말해 달라고요. 결국, 공임을 더 드리기로 하고 서울 공장을 찾아 서둘러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때 인연을 맺게 된 곳이 지금의 젠니클로젯 전용 공장이예요.”
- 이젠니 대표
전화위복이라고 해야할까요? 그 사건을 계기로 맺은 인연이 9년이 되었습니다. 원래 생산 공장과 디자이너는 서로의 눈높이가 달라서 늘 마찰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젠니 대표의 기준은 명확합니다. ‘사장님이 무조건 저의 수준에 맞추는 수 밖에 없어요.’
프로필에서도 알 수 있지만, 콜라보레이션 사례가 무척 많습니다. 하지만,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단연 ‘마리몬드’ 프로젝트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마리몬드 순백 콜라보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브랜드 디자인 컨셉을 유지하면서, 사회적 가치도 추구하는게 너무 먼 산처럼 느껴졌었는데, 그 두 가지가 시너지를 낼 수도 있다는걸 깨닫게 해 준 프로젝트 였거든요.”
- 이젠니 대표
그러나, 마리몬드 이후에는 그런 시너지가 쉽지 않다는 것을 계속 실감하게 됩니다. 일반 기업들과의 콜라보에서는, 각각 기업이 가지고 있는 명확한 컨셉 때문에 원하는 방향으로의 설득이 쉽지만은 않고, 그래서 소모되는 시간과 에너지가 큰 편이죠.
콜라보레이션 문의는 여전히 많지만, 앞으로는 ‘옷으로 만드는 가방’ 이라는 브랜드 컨셉에 맞게, 의류 제품을 업사이클 하는 콜라보를 중심으로만 진행할 예정입니다. 예를 들어, 캘빈클라인의 소각 제품을 증정품으로 만들었던 콜라보레이션은 젠니클로젯과 잘 맞는 프로젝트였다고 생각해요.
그 배경이 무척 궁금했던 것과는 달리, 하우스젠니는 비교적 단순한 계기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직원의 소개로 발견한 새로운 쇼룸 자리가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이 장소가 원래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던 거예요. 주변 당골 오피스들도 꽤 있었던 상황이라, 커피숍을 유지하기로 한거죠.
카페는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라 새롭게 배워야할 것 투성이 입니다. 새벽부터 커피 배우러 다니고, 유자청 담그고, 직원 교육하고 등등.
하지만, 하우스젠니는 백화점 매장 철수 이후 오프라인을 통해 고객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거점이 되었고, 앞으로 이 공간을 통해 고객들이 입던 옷으로 직접 가방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운영 할거라고 해요. 브랜드의 본질을 실천할 수 있는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합니다.
어릴 때 처음 만든 것이 가방이었고, 졸업 작품도 가방이었습니다. 가방은 여성에게 중요한 물건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그 중요한 물건을 가장 가치 있는 방법으로 만들자는 브랜드의 철학을 지키고 싶다고 합니다. 젠니클로젯의 대표 아이템인 마이크로백, 마벨백 라인은 그대로 유지하되, 가죽 자켓, 체크 코트 등 옷장에서 찾을 수 있는 더 다양한 소재를 도입하려고 해요.
소박하게도, 이 대표는 브랜드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자신이 생존할 정도로만 유지되면 좋겠다고 해요. 이미 한 차례 사업의 규모를 줄여 봤고, 앞으로도 규모의 성장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 합니다. 다행히 지난 10년 동안 생산 라인이 안정화되었기 때문에 원가 구조를 맞출 정도는 되었습니다. 이제 한 공장의 캐파는 맞춰줄 수 있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대량 생산하는 제조 패션이 아니라 ‘과정’을 보여줄 수 있는 브랜드에 집중하겠다고 합니다.
10년 후에 젠니클로젯은 그 과정에서 나오는 ‘다름’을 보여주는 가방, 유니크한 브랜드가 될 것입니다.
편집장 에필로그
하우스젠니에서 이젠니 대표가 직접 담궜다는 제주 댕유자티를 마셨습니다. 쌀쌀한 겨울 바람을 헤치고 들어왔기에 더 좋았죠. 대표님의 바램대로 젠니클로젯이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는 유니크한 브랜드로 성장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우스젠니 체험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저도 아이와 함께 옷장을 한 번 뒤져봐야겠습니다.
젠니클로젯의 일부 품목은 마켓그래딧에서 만날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