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사람을 더 빛나게 하는 밝은 빛
그래딧 편집장
변화를 만드는 여성 리더 인터뷰, 너무 오랜만에 돌아와서 죄송합니다. 연초에 (주)그래딧이 운영하는 플랫폼 마켓그래딧을 와우띵마켓으로 리뉴얼을 했어요. 모든 콘텐츠 업데이트 작업량이 많기도 했고, 경기 침체로 좀 어수선하기도 해서, 인터뷰까지 이어가기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늦어진 만큼, 더 좋은 이야기로 찾아뵙고 싶었죠.
사이트 리뉴얼과 함께 우리 인터뷰 제목도 와우띵 인터뷰로 바꿀까 잠시 고민했는데, 회사명이 그래딧이고, 이 역시 저희 철학이 오롯이 담긴 이름이기에 그래딧 인터뷰를 유지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오랜만에 돌아와 만난 여성 리더는 비건 가죽으로 패션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 에끌라토의 윤지선 대표예요. 꼭 만나고 싶었던 대표님을 해가 가기 전에 만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윤지선 대표
(주)엔컴페니언 프로필
2016 엔컴페니언 개업
2018 법인 전환
2021 에끌라토 론칭
2021 샤인백 와디즈 론칭
(주)엔컴페니언의 윤지선 대표는 처음부터 창업가를 꿈꾸진 않았다고 해요. 의류학을 전공하고 국내 대표 패션 기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그저 같은 일의 반복이라는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뭔가 좀 더 의미있는 가치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변화를 결심하게 되었죠.
2012년 국제경영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학업 과정에서 NGO와 국제개발 분야에 매료된 윤 대표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열망을 품게 되었고, 졸업 후 귀국과 함께 MYSC에 합류했습니다. 이곳에서 개발도상국의 사회문제 해결을 돕는 청년 소셜벤처 육성 프로그램을 담당하며 경험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MYSC에 합류하며 처음 맡은 업무는 KOICA의 소셜 비즈니스 분야 사업이었어요. 한국의 청년 사회적기업가들이 개도국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지에서 창업하도록 인큐베이팅하는 사업이었죠. 이 사업을 통해 캄보디아, 베트남 등 개도국 현장을 경험하게 되었고, 대학원에서 이론으로만 배웠던 국제개발을 실제로 체험해볼 수 있었어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며 사업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이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MYSC에서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거듭하면서 윤 대표는 자신만의 비전이 더 확고해졌다고 해요. 청년 창업가들의 열정 어린 도전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이들을 더 체계적으로 돕고 싶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으로 청년 소셜벤처 창업가를 돕고 싶다는 생각으로 창업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016년 설립한 엔컴페니언은 윤 대표의 비전대로 청년 소셜벤처들을 돕기 위해, 디자인씽킹, 소셜미션, 린스타트업 등 교육과 컨설팅을 위주로 서비스하는 회사였습니다. 2018년 법인으로 전환하면서 본격적인 성장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고민이 생겼습니다. 교육과 컨설팅에 있어서도 전문성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는 실제 비즈니스 경험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예요. 게다가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대면 교육이 중단되면서 사업의 전환점을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고, 당시 우연히 접한 비건 소재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었습니다.
처음부터 패션 브랜드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저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죠. 그런데, 비건 가죽은 저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줬어요. 특히 사과 가죽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버려지는 사과 부산물로 이런 걸 만들 수 있다니! 그때부터 식물성 비건 소재를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 윤지선 대표
2020년 비건 가죽 리서치를 시작했고, 2021년 에끌라토라는 브랜드와 함께 사과 가죽으로 만든 샤인백 첫 펀딩을 열었습니다. 에끌라토의 '에끌라'는 '밝은 빛'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대요. 제품으로 세상을 조금 더 빛나게 만들고 싶다는 엔컴페니언의 바람이 담겨있습니다.
에끌라토는 우리 아이들과 나이가 같아요. 어린 아이들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무해한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겼죠. 그래서 더욱 신중하게 소재를 고르고, 제품을 만들게 됩니다.
- 윤지선 대표
에끌라토가 추구하는 지속가능성은 제품의 전 과정에 걸쳐있습니다. 소재 선택부터 제조 방법까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 노력하죠.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진정한 지속가능성은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데서 시작돼요. 아무리 친환경적인 소재라도, 금방 버려진다면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품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한 번 구매한 제품을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지나도 지겹지 않은 디자인이어야 해요.
- 윤지선 대표
이러한 철학은 자연스럽게 미니멀한 디자인으로 이어졌습니다. 트렌드를 좇기보다는 깔끔하고 세련된 기본기에 충실한 디자인으로,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애착을 가질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자 했죠.
에끌라토의 첫 제품인 '샤인백'은 이런 브랜드 철학이 가장 잘 구현된 사례입니다. 국내에서 선도적으로 사과 가죽을 도입한 이 제품은, 심플한 토트백 디자인으로 일상적인 활용도를 높였고, 탄탄한 제작 품질로 여전히 많은 사용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다른 비건 가죽 제품들과 비교했을 때도 뛰어난 내구성을 보여주며, 지속가능한 패션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고 평가할 수 있어요.
이후 에끌라토는 다양한 비건 가죽을 선도적으로 시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태리산 사과 가죽과 옥수수 가죽, 국내산 한지 가죽 하운지, 멕시코산 선인장 가죽 등이 그 사례죠.
비건 가죽이라고 하면 단순히 동물성 가죽을 쓰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저희가 생각하는 비건 가죽은 그 이상이에요. PVC나 PU 같은 합성 레자는 결국 플라스틱 덩어리라 환경에 더 해로울 수 있거든요. 그것이 우리가 식물성 가죽에 주목하게 된 이유예요.
- 윤지선 대표
에끌라토가 지금까지 시도해본 비건 가죽들의 특징을 하나씩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아요. 첫번째로 사과 가죽은 이태리의 과수 농가에서 나오는 사과 껍질과 과육 찌꺼기를 재활용해 만듭니다. 전체 소재의 25~30%가 사과 부산물로 이뤄져 있죠. 자연스러운 텍스처가 특징이고, 기존 가죽과 가장 유사한 촉감을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제는 국내에서도 생산하는 기업이 생겼지만, 에끌라토가 사용한 선인장 가죽은 멕시코의 선인장 농장에서 나오는 선인장 잎을 사용해서 만들어진 가죽입니다. 물 소비량이 적은 장점이 있고 내구성도 우수한 편이지만, 아직 대량 생산이 어려워 가격이 높은 편이죠.
선인장은 탄소를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 재배하는 것만으로도 탄소저감에 도움이 된대요. 그리고 동물성 가죽이나 100% 합성 가죽(PU) 대비 생산시의 물, 에너지 소비량이 적습니다. 유연하고 신축성이 좋다는 것도 장점이겠네요. 이제는 국내에서도 사과 가죽, 선인장 가죽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생기고 있기에, 비건 소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단가도 낮아질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 윤지선 대표
한지 가죽은 우리나라의 전통 소재를 현대화한 것으로, 특히 주목할 만한 소재입니다. 닥나무 섬유질로 만들어 놀랍도록 가벼우면서도 질긴 것이 특징이에요. 게다가 다른 비건 가죽들에 비해, 식물성 소재의 포션이 높은 편이죠.
옥수수 가죽은 옥수수의 식용 불가한 부분을 활용하여 환경친화적 공법으로 가공한 소재 입니다. 특유의 유연하고 부드러운 촉감이 특징입니다. 그 외에도 버섯 균사체를 배양해서 제조하는 버섯 가죽이나 파인애플 잎 섬유를 부직포화 시켜 만드는 파인애플 가죽 등 새로운 소재들이 계속 개발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지는 걸 보면 희망적이에요. 기술이 발전하면, 식물 소재 포션이 더 높으면서도 가죽의 텍스처와 내구성에 가까운 품질의 소재가 더 많아질거라 기대하게 돼요. 에끌라토가 이 여정의 한 발자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윤지선 대표
국제 개발 협력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엔컴페니언은 동남아시아의 친환경 분야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에코톤' 프로그램과 KOICA 귀국 봉사단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기업 창업을 지원하는 '리턴 프로그램' 등에 참여해 왔어요.
동남아 5개국의 친환경 분야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에코톤(Ecothon)'은 가장 최근에 진행한 프로그램이라고 합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캄보디아, 라오스의 청년 기업가들을 만나며 프로그램의 모더레이터와 멘토 역할을 맡았죠.
각 나라마다 환경 문제와 발전 정도가 달라서, 비즈니스 모델도 다 달랐어요. 오히려 제가 더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특히 현지 상황에 맞춰 다양한 솔루션을 만들어내는 청년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 윤지선 대표
한편, KOICA 봉사단 출신들의 창업을 돕는 일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개도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다시 돌아가려는 분들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 교육을 진행하고 있어요.
일반 창업도 쉽지 않은데, 개도국에서 소셜 비즈니스를 한다는 건 정말 큰 도전이에요. 그럼에도 열정을 가지고 다시 현지로 가서 변화를 만들어가는 분들을 보면서 저도 많은 자극을 받았어요.
- 윤지선 대표
이런 다양한 경험들이 윤 대표에게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어요. MYSC에서 소셜벤처들을 코칭하면서 디자인씽킹과 린스타트업 같은 실질적인 방법론을 익혔고, 무엇보다 비즈니스와 사회적 가치를 연결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배웠죠. 그때 배운 것들이 지금도 엔컴페니언의 성장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에끌라토는 B2B 시장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ESG 경영이 강조되면서 기업들의 기념품도 변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부터 몇몇 대기업과 협업을 시작했어요. 단순한 기념품이 아닌, 기업의 가치를 담은 실용적인 제품을 원하시더라고요. 웰컴키트나 기념품을 고를 때 조금 더 환경친화적 방법으로 만든 제품을 찾으시는 것 같아요. 하지만 B2B 사업에 집중하면서도 브랜드의 본질을 잃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여전히 매 시즌 새로운 소재를 연구하고, 더 나은 제품을 위해 고민하죠.
- 윤지선 대표
전시회에서 만난 잠재 고객들의 니즈를 반영하며 B2B 제품군도 자연스레 확장되고 있다고 합니다. 한지 가죽으로 만든 골프공 파우치와 골프 앨범, 명함지갑과 카드지갑 세트, 티코스터, 그리고 사과 가죽으로 만든 애플키링 등등 에끌라토는 지금 기업과 기관을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친환경 소재의 가치를 전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딧 에필로그
윤지선 대표님과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에끌라토의 제품들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펴보았어요. 비건 가죽에 대한 와우띵마켓의 철학과 교집합이 크기에 여전히 반가웠죠. 사과 가죽부터 한지 가죽까지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아마도 그런 자세가 있었기에, 소셜벤처로 시작한 에끌라토가 친환경 패션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나 봅니다.
에끌라토의 비건 가죽 제품들은 지금 와우띵마켓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