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6화
1. 아침마다 같은 길을 걸었다.
슬리퍼 끄는 소리, 책가방에 부딪히는 지퍼, 덜 깬 마음을 안고 교문을 지난다.
나는 왜 그 길 위에서 같은 하늘을 바라보았을까.
2. 그 안의 하루는 늘 다르게 흘렀다.
친구의 웃음에 마음이 풀리기도 했고, 선생님의 한마디에 숨이 움츠러들기도 했다.
창가의 흐린 유리 너머로 혼자가 되는 법을 배우고, 종소리 사이사이에서 함께 웃는 법도 익혔다.
3. 칠판의 분필 가루는 사라졌는데, 내 안에는 아직 지워지지 않은 문장이 남아 있다.
그 미세한 가루들이 남긴 흔적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는지를 말해준다.
4. 학교는, 내가 좋아하고 미워하고 버티던 모든 시간이 모여 있던 자리였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그 복도 어딘가를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학교는 관계와 경험 속에서 나의 ‘정체성’이 서서히 빚어지는 무대다.
그 안의 웃음과 고독의 흔적은 성적보다 오래 남아, 지금도 내 안에서 나를 움직이게 한다.
어쩌면 우리는 여전히, 그 복도 어딘가를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