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화
1. 빗줄기가 쏟아지면 앞이 보이지 않는다.
창이 금세 흐려지고, 불빛은 퍼져버려 길이 사라진다.
그런데 와이퍼가 한 번 지나가면, 세상이 또렷해진다.
흐림과 맑음이 몇 초마다 교차한다.
금세 다시 가려지지만, 닦이고 나면 잠깐이나마 길이 열린다.
2. 살다 보면 마음도 그렇다.
앞이 안 보일 만큼 흐려질 때에도, 마음 어딘가에서 다시 닦이는 순간이 있다.
모두 사라지진 않아도, 잠깐의 틈이 다시 나를 움직이게 한다.
3. 와이퍼 소리는 마음을 스치는 리듬이 된다.
흐려졌다가 또렷해지는 그 박자 속에서, 마음은 묘하게 안도한다.
완전히 맑아지지 않아도, 다시 갈 길은 보이니까.
흐림 속에서도 길을 다시 찾게 하는 힘은 마음의 ‘회복탄력성(다시 일어서는 힘)’이다.
와이퍼 소리에 위로가 되는 건, 흔들리면서도 다시 나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어쩐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