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화
1. 오타쿠를 보면 묘하게 마음이 놓일 때가 있다.
세상이 무너져도 자기 세계는 흔들리지 않는다.
남들이 뭐라 하든, 그들은 그 세계를 조용히 살아낸다.
그 표정을 보면, 이상할 만큼 편안해진다.
2. 우리는 종종 세상에 맞추느라, 자신을 조금씩 흩뜨린다.
좋아하는 걸 너무 좋아하면 안 될 것 같고, 무언가에 깊이 빠지면 현실을 잃을까 두렵다.
그래서 적당히 좋아하고, 적당히 거리를 둔다.
너무 가까이 가면 다칠 것 같고, 너무 멀어지면 사라질 것 같아서.
3. 하지만 그들은 달라 보인다.
타인의 시선보다 자기의 세계가 더 중요하다는 듯, 세상이 시끄러워도 그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 안엔 외로움이 자리할지 몰라도, 그보다 먼저 찾아오는 건 고요다.
4. 사람들은 말한다.
너무 빠져 사는 거 아니냐고, 현실을 좀 보라고.
하지만 묻고 싶다.
당신은 무언가에 미쳐본 적이 있는가.
세상이 뭐라 해도, 그 하나로 하루를 버텨본 적이 있는가.
그 마음이 때로 우리를 웃게 하고, 때로 우리를 견디게 한다.
사람은 세상의 소음에 휩쓸릴 때보다, 자신이 몰입할 수 있는 세계 안에서 가장 고요해진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말한 ‘몰입(flow)’은, 시간이 사라지고 자의식이 잠시 잊히는 상태를 뜻한다.
그건 어쩌면 오타쿠보다도 우리에게 더 결핍된 상태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