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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won Jan 23. 2018

'똥수저'적 흙수저


흙수저는 부모가 재산이 없거나 매우 적어서, 그들에게 별다른 지원을 기대하지 못하는 청년이 아니다. 부모를 일정 이상 “부양해야 하는” 청년이 흙수저다. 전자와 후자는 완전히 다르다. 자기계발서의 저자들은 전자에게 할 말이 많다. 60만 원만 들고 세계여행을 떠나보라거나, 나를 찾기 위해 1년쯤 휴학하고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해보라고 권할 수도 있다. 비록 가진 게 없지만 당신은 젊으니까 무엇에든 도전해도 된다는 말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조언은 후자의 흙수저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다. 나이가 들어가는, 특별한 노후대책이 없는 부모를 둔 수많은 청년들이 60만 원으로 해외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한국에서 최소 매월 150만 원을 벌어 부모를 부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후자를 ‘똥수저’라면서 흙수저와 구별 짓는다.


'똥수저적 흙수저'에게 유효한 국가나 사회의 지원은 청년들에게 ‘실패할 기회’를 주거나 창업지원을 하는 일이 아니라 그들 부모의 삶을 지탱해주는 것이다.  노인복지 정책이 늘어나는데 동의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있지만 흙수저들에게는 노인복지를 위한 모든 정책이 곧 자신들을 위한 정책이다. 노령연금을 부모가 수령하고, 지하철을 무료로 타고, 부양의무기준이 완화되어 나이 든 부모가 젊은 자녀의 존재에도 기초생활보장을 받을 수 있다면, 흙수저들도 60만 원만 들고 세계여행을 시도해볼 ‘여력’ 정도는 가질지 모른다. 1년이라도 빨리 취업하기 위해 휴학도 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며 미친 듯이 달리는 대신 1년 정도 휴업하고 이런저런 진로를 모색해볼 생각도 할 수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성공하기 전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부모가 평범한 직장인이라 부모에게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다면서, 대학시절 내내 등록금을 자기 손으로 벌었고 그러면서 매일 책을 한 권씩 읽어 몇 천권을 읽었더니 삶이 변했다거나, 땡전 한 푼 없이 무작정 해외로 떠나 엄청난 기회를 잡았다는 서사를 늘어놓는다. 나는 이들의 삶이 쉬웠다거나 가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들은 나름의 역경을 훌륭하고 지혜롭게 돌파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들이 '흙수저'들에게 하는 조언은 대개 비현실적이다. 흙수저들은 책을 3천 권 읽을 시간에 아프거나 빈곤한 가족을 돌봐야 한다. 무작정 해외로 떠나면 가족은 굶어야야 할지 모른다. 


지금의 장년층들은 과거 자신의 부모들이 훨씬 더 가난했지만 자신들은 그 역경조차 돌파했다고 말할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들과 현재의 흙수저들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50대 이상 세대들의 부모들은 물론 가난했지만 '도시빈민'이 아니라 농촌공동체에 속해 있었다. 경제 자본은 없어도 다 같이 빈곤한 가운데 사회적 유대는 어느 정도 보유했다는 의미다.  다른 한편, 이 가난한 부모를 두고 홀로 노력했다는 50대들은 대개 남성이며, 이렇게 성공한 남성들의 배경에는 부모나 다른 형제들을 부양한 '흙수저' 여성노동자 형제자매가 있었다. 비교를 위해서라면 바로 이 여성들의 삶을 가져와야 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어려움은 상대적인 것이고, 누가 더 어려운지를 경쟁하는 일은 의미가 없거나 괜한 사회갈등만 더 심화할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저 위대한 자기계발서의 저자들과 멘토링으로 먹고사는 이 시대의 '현인들'의 조언이 갖는 유효성,  국가정책 목표의 실효성을 반성하고 평가하기 위해 이 정도의 구분은 필요하지 않을까. 부모나 다른 형제 등을 부양해야 하는 '똥수저적 흙수저' 들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논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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