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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dy Aug 17. 2021

<10년 후 세계사:두 번째 미래>

우리가 결정해야 할 11가지 거대한 이슈

***<10년 후 세계사:두 번째 미래>(구정은, 이지선 지음, 추수밭)


이 책의 제목은 이 책의 내용과 어쩌면 잘 들어맞지 않는다. 이 책은 '10년 후' 미래를 예측하지도 않고, 역사로서의 거창한 '세계사'를 톺아보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은 '현재'와 '지금'을 이야기하고, 소소하고 현실적인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짚어본다. 저자 중 한 명으로서 작업하면서 우리는 현재와 지금을 세세히 살펴보는 무엇보다 미래를 잘 보여주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현재도 과거의 언젠가의 시선에선 미래였을 테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을 읽으면 '10 ' '세계사'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플랫폼 노동, 자율 주행차, 기후 위기, 빈부 격차,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포퓰리즘을 비롯한 극단주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하나둘씩 쌓여 10  세계를 만들게  것이기 때문이다. 시사만화가 굽시니스트는 추천사에서 이같이 말했다.


"'10년 후'라는 제목과는 다르게 이 책은 예언서가 아니다. 현대 문명에 위태하게 걸친 삶을 꾸려가는 바로 우리,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그 이야기에는 거쳐 온 10년을 꿰뚫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앞으로 만들어갈 10년 후 삶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그래서 이 책은 10년 치의 현재와, 그 현재들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켜켜이 쌓아 만든 밀푀유 담론이다. 살짝 잔혹하게 느껴질 수 있는 풍미를 지니고 있지만, 그 깊은 맛은 통찰이라는 포만감을 줄 것이다."


<한겨레> 서평에도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전대미문에, 사상초유란 없다. 이미 예비되어온 일이다. 코로나 19만 해도 그렇지 않나. 이밖에도 인간 역사에는 인류를 몰살 직전까지 몰아붙인 질병과 전쟁, 참사가 허다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앞으로 올 역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10년 후 세계사 두 번째 미래>는 10년 뒤를 전망하는 책이 아니다. 10년 뒤 역사를 만들어가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오늘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또한, 과거를 살펴야 한다."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001869.html)


<10년 후 세계사>의 챕터는 아래와 같이 구성돼 있다. 책은 현재를 기계와 일, 사람과 지구, 자본과 정치 3부로 나눠 여러 측면에서 살펴본다. 제로 아워를 넘어서는 플랫폼 노동, 자율주행차, 로봇의 대신할 우리의 일은 어떻게 될지, 코로나19가 아니라 코로나27, 39가 나올지 모르는 미래의 불확실함과 유전자 변형, 기후 위기의 시대에 지구에 사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격차는 커지고 다름에 대한 배제가 깊어지는 사회에서 공존은 가능할지 등을 현재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임으로써 독자와 함께 고민해 보고 싶었다.


'남는 건 책밖에 없다'는 작가이자 브런치 인싸이신 우리의 마냐님이 써주신 추천사 일부를 적어본다.


"2015년에 출간된 《10년 후 세계사》는 '미래의 역사가 우리에게 달려있다'고 했다. 당시 ‘시대를 관통하는 글로벌 이슈’를 횡으로 종으로 그려냈다”고 감상을 남기기도 했다. 6년이 지나 후속작인 《10년 후 세계사, 두번째 미래》를 만났다. 운 좋게 원고를 먼저 받아들고 순식간에 갈증을 채웠다. 맞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술술 읽힌다는 점이다. 복잡한 세상사 정리가 깔끔하다. 작은 에피소드,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해 큰 그림으로 넘어가는 이음새가 끝내준다. 특수한 사례가 보편적 현상으로 연결되고, 먼 나라 이야기가 나의 현실로 훅 들어온다. 데이터는 촘촘하고 사례는 풍성하다. 이슈마다 책 몇 권씩 봐야 할 내용을 각각 한 챕터로 정리하다니 용하다." (마냐님의 브런치에서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manya/558)


'다음 ‘10년 후 세계사’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기를 바라며'라는 제목으로 닫는 글에 쓴 이야기들로 이 책의 이야기를 대신해 볼까 한다.


쓰는 동안 내내 답답했다. 어쩌면 이렇게 암울할까, 어쩌면 이렇게 한 치 앞을 모를 행동을 하는 것일까, 어쩌면 이렇게 무기력할까.


시베리아는 산불에 휩싸이고, 난민은 여전히 지구를 떠돌며, 민주주의는 시시때때로 위기에 처하고, 부자와 가난한 이들의 격차가 더 벌어지는 상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며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지만 기술의 이면에는 소외되는 무언가가 혹은 누군가가 존재한다. 팬데믹이 다시 인류를 찾아왔고, 감염을 막기 위해 인간이 사용한 수많은 일회용 마스크가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 쓰는 내내 10년 후 세계는 과연 ‘어찌 하오리까’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느다란 낙관이 가능했기에 숨통이 트였다. 그레타 툰베리가 세계에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키고 부자들은 세금을 더 내겠다고 손을 들며, 어떤 도시는 첨단 기술에서 환경과의 공존의 길을 찾고, 또 다른 도시는 첨단 기술보다는 공동체의 가치를 우선하는 소박한 삶의 전략을 취한다. 포퓰리즘과 전체주의에 대한 견제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고, 느리지만 기술을 뒤쫓아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이 마련되고 있다. 짙은 구름을 뚫고 나오는 강렬하게 밝은 한줄기 빛처럼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역사를 통틀어 낙관에 의지해 생존해왔는지도 모른다. 이성이 온통 비관적이라고 말해도 의지로 낙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세계는 의지로만 낙관하지 않고 이성으로도 낙관할 수 있는 곳이기를 바란다. 상상 가능한 뻔한 미래는 흥미롭지 않지만,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고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미래는 우리의 것이 아니었으면 한다. 다음번 ‘10년 후 세계사’에서는 그런 미래를 그릴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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