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원전 사고 7년 후, 모리마츠 씨 가족 이야기
우리는 모두 안전하고 평화로운 삶을 원합니다. 하지만 원전사고는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수많은 것들을 순식간에 앗아가 버립니다. 후쿠시마 사고 후 7년. 여전히 평범한 일상이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모리마츠 씨 가족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당시 갓 태어난 아기였던 모리마츠 씨의 큰딸은 이제 초등학생이 됐습니다. 이 아이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후쿠시마현을 떠나야 했고, 이후 7년 동안 아버지와 함께 산 적이 없었죠.
사고 당시 세 살이었던 아들은 아버지를 몹시나 좋아합니다. 하지만 사고 후 지금까지 이 가족은 피난 생활을 이어가야 했고, 아버지인 모리마츠 씨만 후쿠시마현에 남았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아버지는 가족을 만나러 왔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갈 때마다 가족들은 그리움과 불안감으로 눈물을 흘렸고, 이런 상황이 무려 7년이나 지속됐습니다.
모리마츠 씨 가족은 일본 정부가 소위 "자발적 피난민"이라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피난 지시 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곳에 살았던 이들은 정부로부터의 유일한 지원이었던 임시 거주 주택 지원마저 중단되자 더이상 월세를 낼 수 없게 됐습니다. 현재 일본에서는 자발적 피난민에 대한 퇴거소송까지 일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해 가을 그린피스는 후쿠시마 사고 피해자들이 계속해서 받고 있는 고통과 이들을 둘러싼 인권침해 실태를 유엔인권이사회 회원국에 알렸습니다. 국제사회에 현 상황을 알리는 이 일에 많은 시민들이 서명이나 기부를 통해 동참해 주셨습니다.
이후 유엔인권이사회 회원국인 독일, 오스트리아, 포르투갈, 멕시코가 일본 정부에 시정 권고를 보냈습니다. 그린피스는 일본 정부에 회원국들의 권고 사항을 수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8일 일본 정부는 일단 유엔인권이사회의 권고를 "받아들이겠다"는 공식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권고사항의 어떤 부분을 받아들이고 이행할 것인지는 다가오는 3월 16일, 제네바에서 표명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 현장에서 모리마츠 씨는 그린피스와 함께 각국 대표들에게 후쿠시마 사고 후의 실태와 인권침해에 관해 직접 증언할 예정입니다.
모리마츠 씨는 지진이 발생한 지 2개월 후 자발적 피난을 결정했습니다. 그때까지는 후쿠시마현 내에서 살아갈 방도를 찾고 있었죠.
당시 모리마츠 씨가 살고 있던 지역에는 피난 명령이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유치원에서는 원아들에게 일회용 마스크를 배포했고, 아이들은 긴 소매 옷과 긴 바지만 입으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근처 초중학교가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있었지만, 아이들의 통학은 차로 해야 했습니다. 또 불필요한 외출은 단 한 발짝도 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아이들은 유치원은 물론 집 주변 어디에서도 뛰어놀 수 없었습니다. 수돗물과 식재료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고, 빨래나 이불을 야외에서 말리는 것도 금지됐습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우선 "방사능이 아이들에게 미칠 수도 있는 영향"을 고려해야 했고, 아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됐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무엇이 정답인지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모리마츠 씨 가족은 이대로 그곳에서 살아도 괜찮은 것인지 명확히 알 길이 없어, 초조함을 느꼈고 불안했습니다. 정체 모를 공포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당시 모리마츠 씨 부부는 장기 휴가를 활용해 아이들과 살았던 거주 공간을 다시 정비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웃에서, 또 유치원에서 후쿠시마현을 떠나는 가족들이 계속해서 늘어나자, 결국 아버지인 모리마츠 씨가 학창 시절을 보낸 관서 지방으로 피난 갈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모리마츠 씨는 후쿠시마현 내에 있을 때는 전혀 보도되지 않았던 방사성 오염의 위험성을 폭로하는 뉴스를 보게 되었고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방사선에 더 취약한 아이들을 지키려면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후쿠시마현에서 계속 일할 수밖에 없었던 모리마츠 씨는 관서지방에 사는 친척들과 친구들의 강한 권유로 결국 부인과 아이들만 우선 피난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으로 모리마츠 씨 가족은 더 많은 경제적 부담을 지게 되었고, 이 외에도 많은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모리마츠 씨 가족이 살던 지역에는 사고 후 피난 명령이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모리마츠 씨는 지진으로 훼손된 집 대신 빌린 임대 주택에 대한 집세뿐 아니라 오사카에서 아이들과 아내가 살기 위해 빌린 집의 집세 및 공공요금까지 지급해야 했습니다.(*자발적 피난민에 대한 일본 정부의 주택 지원은 2017년 3월에 종료됐습니다. 모리마츠 씨는 사고 초기 잠시 거주했던 공영 주거 시설에서 나온 후, 주택 제공을 받지 못했고 사고 피난자로 분류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완전히 자력으로 피난 생활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린 자녀들을 만나러 한 달에 한 번 오는 데 드는 교통비도 만만치 않았고, 부담은 계속 늘어만 갔습니다. 모리마츠 씨 부부는 아버지를 거의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미칠 영향에 대해 걱정했지만 별다른 방도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귀여운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질 못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어땠을지는 말할 것도 없을 겁니다. 가족이 헤어지면서까지 피난을 떠난 것이 과연 정말 옳았는지에 대해 계속해서 물어야 했습니다.
모리마츠 씨처럼 피난 지시가 내려지지 않은 지역 주민이면서 피난을 떠난 이들은 원전 사고 전체 피해자 수에서 보면 소수입니다. 하물며 피난 명령이 내려진 지역의 피해자들에 대한 정부의 정책도 많은 문제가 있고 주민들과의 갈등이 심합니다. 사고가 아니었다면 그 누구도 내가 사는 터전과 지금의 생활을 버리고 피난을 떠나고 싶지는 않았을 겁니다.
모리마츠 씨 가족은 아이들이 아버지와 떨어져 지내고, 아내가 남편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상황을 감내하면서까지 피난을 떠났습니다. 모리마츠 씨 입장에서는 가족과 떨어져 후쿠시마현 내에서 일을 계속하는 선택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그 결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원전 사고의 피해자들은 최악의 상황에서의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고심 끝에 내린 피해자 각자의 결단은 그것이 무엇이든 존중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그 누구도 부정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사실상 ‘눈을 감고 입을 다문 채 사고에 대해 잊은 척할 것’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원전 사고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아이들입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7년이 흘렀지만, 방사선 피폭에 가장 취약한 아이들의 "건강할 권리"가 여전히 보장되고 있지 않습니다. 모리마츠 씨는 말합니다.
"나와 내 가족이 원하는 것은, 그저 가족이 평범하게 아이들과 함께 보통의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내 아이들이 살아가는 삶의 1분 1초가 모두 건강하기를 바라는 게 부모인 저의 마음입니다."
모든 부모가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원전 사고는 이들의 소망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사고 피해자들의 피난 갈 권리를 침해했고, 의료 지원이나 제대로 된 정보 제공도 없이 그나마 있던 주택 보조금까지 끊었습니다. 경제적 압박으로 피해자들은 귀환을 사실상 강요받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모리마츠 씨 일가를 비롯해 원전 사고 피해자에 대한 명백한 인권 침해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우린 어떻게 했을까요? 무엇을 지키기 위해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생명과 건강을 지킬 권리는 갓 태어난 아기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기본적 인권입니다.
지난해 새로 출범한 대한민국 정부는 단계적 탈원전을 포함한 에너지 전환을 국가 에너지 정책 방향으로 선언했습니다. 많은 시민과 시민사회단체의 오랜 요구와 활동에 응답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 사회에 주어진 과제는 시민, 정부, 산업계가 함께 참여하는 에너지 전환의 속도를 높여 탈원전의 시점을 앞당기는 것입니다. 일본, 한국, 그리고 지구 그 어디에서도 다시는 모리마츠 씨 가족과 같은 피해자가 발생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으로 더 빠르게 나아가야 합니다.